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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7월 정계은퇴 선언을 한 뒤 국회를 떠나고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photo 연합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초계파 혁신기구 카드 구상이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혁신위원장 제안을 거절하였고, 김한길 의원 등 당내 대표적 비노(非盧·비노무현)계 수장들은 혁신기구 출범이 해결책이 아니라며 계속해서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내우외환이라던가. 야권 내 부동의 1위였던 문재인 대표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역시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역전당하고 말았다. 특히 호남에서의 지지율 하락은 눈에 띈다. 지난 5월 17일 리얼미터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대표는 호남에서의 지지율(19.4%)이 3위에 그쳤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22.4%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이 발생했고, 2위는 20.5%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차지했다.
호남 민심은 전략적이다. 가능성 있는 대권주자에게 힘을 몰아주지만, 가능성이 낮아지면 외면해 버린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실시된 인구센서스에서 영남 인구 비중은 31.4%, 호남은 25.2%였다. 이농(離農) 때문에 현재 호남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 남짓이지만 원적지로는 여전히 유권자의 25%가량이다. 호남만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지만, 호남의 도움 없이는 정권에 다가설 수 없는 것이 야당의 현실이다.
특히 ‘버리는 리더십’이 먹히는 곳이 호남이다.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DJP(DJ+JP·DJ는 김대중, JP는 김종필)연대라는 ‘버리는 리더십’이 기막힌 한 수였다. 당시 DJ와 30~40년씩 함께 고생한 동교동계 가신들은 임명직 공직 진출 포기까지 선언했다. 국내 정당 사상 최초로 국민경선에 의해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도 많은 사람이 만류했지만 “한나라당 정권 불가”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재벌 2세인 정몽준 후보와의 여론조사 승부수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그의 진심은 통했고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낚았다.
반대로 ‘버티는 리더십’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지난 18대 대선 당시 적지 않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를 건의했다. 그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다. 김대중 캠프의 예에 따라 친노 측근들의 기득권 포기 선언에 대한 요구도 잇따랐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는 3.5%포인트 차 패배.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뼈아프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호남권에서 약 250만표를 승리했다. 직접 비교되는 16대 노무현 후보는 약 260만표를 승리했다. 외형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난다. 우선 유권자가 21만명가량 늘었다. 노 후보는 3자구도였고 문 후보는 양자구도였다. 결과적으로 호남권 득표율은 노 후보 93.2%에서 문 후보 88.96%로 4%포인트 이상 낮아졌으며, 사상 최초의 야권 단일후보 출현에 따라 5%가량 더 높아진 투표율을 감안하면 최소 20만~30만표를 허공에 날린 셈이다. 거기다가 박근혜 후보에게 ‘13대 이후 역대 보수정당 후보로는 최초의 호남 두 자릿수 득표율(10.52%)’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수도권에서는 5만표 정도를 패배했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수도권에서만 43만표, 노무현 후보는 72만표를 승리했다. 수도권은 유권자의 49.4%(18대 대선 기준)가 거주하는 전략 지역이다. 또 출향 호남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호남 민심이 전달되는 특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미세하지만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하락, 상대 박근혜 후보의 두 자릿수 지지율 허용 등의 현상이 수도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3.5%포인트 패배의 주된 요인이 ‘호남발 수도권 패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문재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빠지는 것이 야권의 유력주자로서는 엄청나게 심각한 사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표는 여전히 진지한 반성이 부족하다. ‘버리는 리더십’의 노무현을 선택했던 호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현재 공천 룰을 정하는 혁신위원장 인선과정은 그런 의미에서 음미해볼 만하다. 민주당 역사를 보면 혁신위원장을 비주류 쪽 인사로 정해 탕평하는 것이 관례였다. 2001년 하반기 재보선에 완패한 새천년민주당은 당쇄신특대위원회를 띄워 비주류 조세형 고문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특대위는 국민경선제를 제안, ‘노풍’을 발화시켰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2010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손학규 대표는 개혁특위위원장에 역시 비주류인 천정배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천정배 개혁특위’는 국민참여경선(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과 국민경선(대통령 후보)의 대원칙을 마련했고 지금도 당의 표준 룰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취임 직후 공천혁신단장에 범친노계 원혜영 의원을 임명함으로써 초기부터 혁신의지를 의심케 했다. 공천혁신단은 한 달 만에 초안을 확정하여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하였는데 일부 비율만 조정하였을 뿐 19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호남 민심은 전략적이다. 가능성 있는 대권주자에게 힘을 몰아주지만, 가능성이 낮아지면 외면해 버린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실시된 인구센서스에서 영남 인구 비중은 31.4%, 호남은 25.2%였다. 이농(離農) 때문에 현재 호남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 남짓이지만 원적지로는 여전히 유권자의 25%가량이다. 호남만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지만, 호남의 도움 없이는 정권에 다가설 수 없는 것이 야당의 현실이다.
특히 ‘버리는 리더십’이 먹히는 곳이 호남이다.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DJP(DJ+JP·DJ는 김대중, JP는 김종필)연대라는 ‘버리는 리더십’이 기막힌 한 수였다. 당시 DJ와 30~40년씩 함께 고생한 동교동계 가신들은 임명직 공직 진출 포기까지 선언했다. 국내 정당 사상 최초로 국민경선에 의해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도 많은 사람이 만류했지만 “한나라당 정권 불가”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재벌 2세인 정몽준 후보와의 여론조사 승부수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그의 진심은 통했고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낚았다.
반대로 ‘버티는 리더십’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지난 18대 대선 당시 적지 않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를 건의했다. 그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다. 김대중 캠프의 예에 따라 친노 측근들의 기득권 포기 선언에 대한 요구도 잇따랐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는 3.5%포인트 차 패배.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뼈아프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호남권에서 약 250만표를 승리했다. 직접 비교되는 16대 노무현 후보는 약 260만표를 승리했다. 외형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난다. 우선 유권자가 21만명가량 늘었다. 노 후보는 3자구도였고 문 후보는 양자구도였다. 결과적으로 호남권 득표율은 노 후보 93.2%에서 문 후보 88.96%로 4%포인트 이상 낮아졌으며, 사상 최초의 야권 단일후보 출현에 따라 5%가량 더 높아진 투표율을 감안하면 최소 20만~30만표를 허공에 날린 셈이다. 거기다가 박근혜 후보에게 ‘13대 이후 역대 보수정당 후보로는 최초의 호남 두 자릿수 득표율(10.52%)’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수도권에서는 5만표 정도를 패배했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수도권에서만 43만표, 노무현 후보는 72만표를 승리했다. 수도권은 유권자의 49.4%(18대 대선 기준)가 거주하는 전략 지역이다. 또 출향 호남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호남 민심이 전달되는 특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미세하지만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하락, 상대 박근혜 후보의 두 자릿수 지지율 허용 등의 현상이 수도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3.5%포인트 패배의 주된 요인이 ‘호남발 수도권 패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문재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빠지는 것이 야권의 유력주자로서는 엄청나게 심각한 사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표는 여전히 진지한 반성이 부족하다. ‘버리는 리더십’의 노무현을 선택했던 호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현재 공천 룰을 정하는 혁신위원장 인선과정은 그런 의미에서 음미해볼 만하다. 민주당 역사를 보면 혁신위원장을 비주류 쪽 인사로 정해 탕평하는 것이 관례였다. 2001년 하반기 재보선에 완패한 새천년민주당은 당쇄신특대위원회를 띄워 비주류 조세형 고문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특대위는 국민경선제를 제안, ‘노풍’을 발화시켰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2010년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손학규 대표는 개혁특위위원장에 역시 비주류인 천정배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천정배 개혁특위’는 국민참여경선(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과 국민경선(대통령 후보)의 대원칙을 마련했고 지금도 당의 표준 룰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취임 직후 공천혁신단장에 범친노계 원혜영 의원을 임명함으로써 초기부터 혁신의지를 의심케 했다. 공천혁신단은 한 달 만에 초안을 확정하여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하였는데 일부 비율만 조정하였을 뿐 19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초안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천심사위를 존치시키고 예비후보가 다수면 2~3배수로 압축한다는 것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계파주의이며 본선 경쟁력이 뛰어난 사람도 계파가 없으면 공천심사위에서 배제되는 게 현실이다. 이 배수 압축방식은 악법 중 악법으로 가장 큰 계파인 친노가 그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고, 오히려 계파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리게 된다.
둘째, 지난 총선 당시 100곳 이상에서 자행된 단수공천을 엄격하게 제한할 방안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이처럼 40%에 육박하는 단수공천은 당권파의 전횡일 뿐이다. 방지책이 없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다.
셋째, 경선 방법으로 기존 국민 50% 비율이 60%로 확대되었는데 여론조사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여론조사 금지를 명시적으로 못 박지 않는다면 기득권을 가진 현역 지역위원장에게 더 유리한 개악(改惡)이다. 지금 현역 지역위원장 다수는 친노 계파에 속해 있다. 이상은 ‘원혜영 공천혁신단’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혁신기구가 출범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문재인 대세 하락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지도자가 있으니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이다. 그는 대선 본선에는 진출도 못해 봤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이 가졌던 ‘버리는 리더십’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호남 민심이 그를 부르고 있지만, 이미 정계를 은퇴한 그가 쉽사리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이 명명한 ‘손학규 현상’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의 민주당을 구한 건 손학규였다. 그는 당대표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천 특검’ 박재승 변호사를 영입, 전권을 맡겼다. 그리고 본인은 지역구를 옮겨 종로 출마를 결행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 치러지는 선거인 데다 ‘뉴타운 광풍’ 때문에 전문가들은 다들 민주당이 50석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수도권 전패의 위기를 넘기고 81석을 확보, 원내투쟁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11년 4·27 보궐선거 때는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천당 밑의 분당’이라고 불리는 성남분당(을) 출마를 강행했다. 당시 경기지사 출신 손학규가 피해가기 힘들었지만 그는 독배가 될 줄 알면서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고 끝내 당선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주변 참모들이 “결국 통합의 과실은 친노들의 것이 될 것”이라며 적극 만류했지만 그는 친노계가 이끄는 ‘혁신과 통합’(당시 상임공동대표 문재인)과의 야권통합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당시 그는 “정치는 대의명분”이라며 중앙위원회의, 지역위원장회의, 당무위원회의, 의원총회 등 공식기구를 연거푸 가동하며 당의 총의를 모아냈고 끝내 통합을 완성했다. 이상을 살펴보면, 손학규라는 인물은 전략적 사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호남 민심과 썩 맞아떨어지는 야당의 중요한 인적자원 같다. 물론 그의 정계 복귀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다. 버리면 산다. 그러나 버티면 죽는다. 지금 문재인 대표가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아닌가.
문재인 대세 하락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지도자가 있으니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이다. 그는 대선 본선에는 진출도 못해 봤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이 가졌던 ‘버리는 리더십’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호남 민심이 그를 부르고 있지만, 이미 정계를 은퇴한 그가 쉽사리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이 명명한 ‘손학규 현상’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의 민주당을 구한 건 손학규였다. 그는 당대표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천 특검’ 박재승 변호사를 영입, 전권을 맡겼다. 그리고 본인은 지역구를 옮겨 종로 출마를 결행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 치러지는 선거인 데다 ‘뉴타운 광풍’ 때문에 전문가들은 다들 민주당이 50석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는 수도권 전패의 위기를 넘기고 81석을 확보, 원내투쟁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11년 4·27 보궐선거 때는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천당 밑의 분당’이라고 불리는 성남분당(을) 출마를 강행했다. 당시 경기지사 출신 손학규가 피해가기 힘들었지만 그는 독배가 될 줄 알면서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고 끝내 당선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주변 참모들이 “결국 통합의 과실은 친노들의 것이 될 것”이라며 적극 만류했지만 그는 친노계가 이끄는 ‘혁신과 통합’(당시 상임공동대표 문재인)과의 야권통합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당시 그는 “정치는 대의명분”이라며 중앙위원회의, 지역위원장회의, 당무위원회의, 의원총회 등 공식기구를 연거푸 가동하며 당의 총의를 모아냈고 끝내 통합을 완성했다. 이상을 살펴보면, 손학규라는 인물은 전략적 사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호남 민심과 썩 맞아떨어지는 야당의 중요한 인적자원 같다. 물론 그의 정계 복귀 여부와는 별개로 말이다. 버리면 산다. 그러나 버티면 죽는다. 지금 문재인 대표가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