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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데스크칼럼 |
남도일보 최혁 주필의 무등을 바라보며딸, 찬송이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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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찬송이의 결혼식 최혁<주필>
딸이 지난 토요일에 결혼했다. 결혼식은 조촐했다. 결혼식장은 미국 유타주에 있는 조그만 루터른(Lutheran) 교회였다. 하객도 100여명 정도였다. 그렇지만 결혼식은 경건했다. 주례를 맡은 미국 목사님은 결혼 식 전날 신랑·신부 가족과 들러리, 반주자, 축송(祝頌)을 부를 이, 음향기기를 다룰 사람 등 20여명을 모아놓고 2시간 정도 예행연습을 했다. 그랬던 만큼, 식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편안했던 결혼식이었다.
존(John) 목사님은 리허설 때도 그러했지만, 결혼식 전에 신랑·신부와 가족, 들러리들을 따로 만나 기도를 나눴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진심을 담아 짧게 기도를 하는, 그런 형식이었다. 결혼식은 전체적으로 진지했다. 그렇지만 흥겨웠다. 피로연에서는 신랑과 신부를 앞에 불러놓고 게임을 즐겼다. 짓궂은 농담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신랑·신부와 가족, 친구들이 모두 흥겨운 댄스를 즐겼다. 축복과 격려, 이해와 나눔이 가득했다.
지난번 칼럼에서 잠간 밝혔지만 사위는 페루남자(페루비안:Peruvian)다. 이름은 Josue이다.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호슈에’이고 우리말 성경 표현으로는 ‘여호수아’다. 딸 찬송이를 빼앗아간 그 ‘도둑’은 ‘순둥이’ 인 듯싶었다. 기자는 결혼식 일주일 전에 미국에 도착해서 녀석과 매일 점심을 같이하며 ‘딸 도둑’에 대한 탐색전을 벌였다. 얼굴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승낙을 해버려 이미 ‘물은 엎질러 진 상태’지만 과연 어떤 녀석인지 몹시 궁금해서였다.
기자는 몇 달 전, 찬송이가 결혼승낙을 받으러 한국에 왔을 때 딸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선뜻 그리 하도록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미국에서 6년 동안 찬송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보살폈던 아들 찬우가 “교회 청년회에서 1년 정도 같이 생활하며 지켜보니 괜찮은 녀석인 것 같다”고 말한 것도 그리 쉽게 일을 저질러 버린 이유이기도 했다. 주위에서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느냐?”고 혀를 찬 분이 많았지만 딸과 아들을 믿었기에 그리 한 것이었다.
설령 기자가 반대한다하더라도 이미 사랑에 빠져 ‘눈이 멀어버린’ 딸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는가? 딸의 선택을 믿고 축복해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리해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결혼이었다. 결혼식 비용은 모두 1만3천 달러(1천400만원)정도가 들어갔다. 열흘 일정의 신혼여행비가 포함된 것이니 아주 적게 들어간 셈이다. 신부 측이 반 정도를 부담했는데 아들 찬우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딸은 아버지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제 스스로 결혼준비를 했다. 틈틈이 발품을 팔아 물건을 싸게 파는 가게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시시때때로 딸은 전화를 걸어와 엄마에게 결혼준비 상황을 이야기하곤 했다. 하루는 펄쩍 뛰는 목소리로 마침 캘리포니아로 시집가는 친구가 있는데 책장과 의자, 전기밥솥 등을 몽땅 건네주고 갔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방과 욕실, 거실이 각각 하나씩인 아파트도 관리비를 포함해 월 900달러에 구했다고 좋아했다.
기자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딸에게 많이 미안했다. 시집가는 딸이 돈을 아끼기위해 애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형편대로 하는 것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렇게만 말했다. 미국에 도착한 뒤 기자는 딸과 함께 돌아다니며 이불 등 몇 가지를 새 것으로 사주었다. 딸은 몹시 고마워했다.
사실 딸은 기자를 그리 살갑게 대하는 아이가 아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빠 품을 파고들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아빠 말에 순종하는 착한 딸이었지만,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찬바람이 일 정도로 손을 빼며 매몰차게 굴었다. 기자는 그게 섭섭했다. 그래서 “다른 집 딸들은 그렇지 않던데 너는 왜 그리 야박하게 구냐?”고 불만스러워 했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입만 삐쭉댈 뿐이었다.
그러던 찬송이는 결혼식 피로연때 아빠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냈다. 피로연 순서에 따라 아빠와 춤을 추면서였다. 찬송이는 “아빠, 고마워요”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딸아이 결혼식 때 절대 울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그때 하마터면 기자도 울 뻔 했다. 결혼식은 잘 마쳐졌다. 지금 기자는 신혼여행을 가고 없는 딸아이의 집에 머물며 짐 정리를 해주고 있다.
짐을 풀다보니 곳곳에 딸아이 녀석의 사진이다. 딸은 아빠와 같이 찍은 사진에서보다 여호수아와 같이 찍은 사진에서 더 행복해 보인다. 둘이 키스를 하고 있는 사진에서는 절로 질투가 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빼앗겨 버린 딸인데… 둘이만 잘 살아준다면, 그 이상 바람이 없을 것 같다. 마침 하와이에 도착한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너무 좋단다. 딸이 전화를 끊으며 보통 때 하지 않은 말을 했다. “아빠, 사랑해요…” 전화를 끊은 뒤 기자는 뿌연 눈으로 딸아이의 사진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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