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직후인 지난 18일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한 인물을 접견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드의 리더 칼레드 마살이었다. 사우디 왕실이 여태껏 체제 위협세력으로 경계했던 조직의 지도자를 영접한 것이다. 미국 경제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사우디가 미국·이란의 핵협상 타결에 대비해 반(反)이란 연합전선을 확대하고 있다”고 20일(현지시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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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와 이란은 이슬람 세계 패권을 놓고 오랜 라이벌 관계다. 올 들어 두 나라는 예멘·이라크·시리아 등에서 사실상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갈등이 정치·군사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원유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사상 최대 수준까지 늘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사우디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000만 배럴을 웃돌고 있다. 2차 오일쇼크 절정기인 1980년에도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1000만 배럴을 넘지 않았다. WSJ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라고 했다. 시장 선점 전략이다.
사우디는 원유를 장기 계약을 통해 수출한다. 이란이 원유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리기 전에 사우디가 고객 확보에 나서면서 원유 채굴량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질세라 이란도 잰걸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럽의 비톨과 같은 에너지 트레이딩 업체뿐 아니라 로열더치셸·토탈·에니 등 에너지 기업과 접촉 중이다. 아시아의 기존 고객을 상대로도 원유 수출 및 유전 투자 확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란 석유부 만수르 모아자미 차관은 WSJ 등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활주로에서 이륙을 기다리는 조종사와 같다”며 “일단 경제 제재가 풀리면 원유 수출량을 현재의 하루 120만 배럴에서 230만 배럴로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세계 원유 매장량의 9%를 차지하고 있다. 사우디·베네수엘라·캐나다에 이어 넷째다. 핵 개발 때문에 서방 제재가 시작된 2002년 이전엔 하루 400만 배럴을 생산했다. 모아자미 차관이 큰소리칠 만하다.
다만 제재기간 동안 가동을 안 했던 원유 생산시설을 복구하거나 교체해야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들이 보기에 복구하는 데 6개월~1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보도했다. 짧으면 6개월 뒤 이란이 추가로 생산해 수출 가능한 원유 100만 배럴 이상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원유시장은 이미 공급 초과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하루 3130만 배럴씩 생산하고 있다. 세계 하루 소비량의 33% 정도다. 그중 3010만 배럴만 소비된다. OPEC의 과잉 생산량만 하루 120만 배럴에 이른다.
OPEC 회원국만이 과잉 생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에너지 정보분석 회사인 플래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요즘 글로벌 원유시장에선 하루 200만 배럴 정도가 남아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하루 생산량은 대략 9500만 배럴인데 소비량은 9300만 배럴에 그친다. 미국·이란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머지않아 원유 공급이 100만 배럴 정도 더 늘어날 판이다. 전체 공급 과잉분이 300만 배럴까지 늘 수 있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톰슨로이터는 “헤지펀드들이 서둘러 원유 계약을 처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올 1월과 3월에 이어 다시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진 까닭이다.
사우디 등 산유국이 기대할 게 없는 건 아니다. 세계 경제 회복이다. 특히 산업시설의 에너지 효율이 낮은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는 게 중요하다. 중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원유 소비가 미국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나라보다 더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어서다. 중국 원유 소비가 급증한 2005년 전후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전문가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내년에 7%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이란이 증산한 원유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원유 소비가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원유가격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공급 과잉이 계속되면서 당분간 원유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사우디와 이란은 이슬람 세계 패권을 놓고 오랜 라이벌 관계다. 올 들어 두 나라는 예멘·이라크·시리아 등에서 사실상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갈등이 정치·군사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원유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사상 최대 수준까지 늘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사우디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000만 배럴을 웃돌고 있다. 2차 오일쇼크 절정기인 1980년에도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1000만 배럴을 넘지 않았다. WSJ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라고 했다. 시장 선점 전략이다.
사우디는 원유를 장기 계약을 통해 수출한다. 이란이 원유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리기 전에 사우디가 고객 확보에 나서면서 원유 채굴량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질세라 이란도 잰걸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란 석유부 만수르 모아자미 차관은 WSJ 등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활주로에서 이륙을 기다리는 조종사와 같다”며 “일단 경제 제재가 풀리면 원유 수출량을 현재의 하루 120만 배럴에서 230만 배럴로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세계 원유 매장량의 9%를 차지하고 있다. 사우디·베네수엘라·캐나다에 이어 넷째다. 핵 개발 때문에 서방 제재가 시작된 2002년 이전엔 하루 400만 배럴을 생산했다. 모아자미 차관이 큰소리칠 만하다.
다만 제재기간 동안 가동을 안 했던 원유 생산시설을 복구하거나 교체해야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들이 보기에 복구하는 데 6개월~1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보도했다. 짧으면 6개월 뒤 이란이 추가로 생산해 수출 가능한 원유 100만 배럴 이상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원유시장은 이미 공급 초과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하루 3130만 배럴씩 생산하고 있다. 세계 하루 소비량의 33% 정도다. 그중 3010만 배럴만 소비된다. OPEC의 과잉 생산량만 하루 120만 배럴에 이른다.
OPEC 회원국만이 과잉 생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에너지 정보분석 회사인 플래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요즘 글로벌 원유시장에선 하루 200만 배럴 정도가 남아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하루 생산량은 대략 9500만 배럴인데 소비량은 9300만 배럴에 그친다. 미국·이란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머지않아 원유 공급이 100만 배럴 정도 더 늘어날 판이다. 전체 공급 과잉분이 300만 배럴까지 늘 수 있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톰슨로이터는 “헤지펀드들이 서둘러 원유 계약을 처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올 1월과 3월에 이어 다시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진 까닭이다.
사우디 등 산유국이 기대할 게 없는 건 아니다. 세계 경제 회복이다. 특히 산업시설의 에너지 효율이 낮은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는 게 중요하다. 중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원유 소비가 미국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나라보다 더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어서다. 중국 원유 소비가 급증한 2005년 전후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전문가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내년에 7%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이란이 증산한 원유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원유 소비가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원유가격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공급 과잉이 계속되면서 당분간 원유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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