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사장과 정 전 부회장 영장 청구의 주된 사유는 업무상 배임 혐의다. 하지만 법원이 사실상 배임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기업인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 형사처벌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실패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배임죄를 통해 물어온 만큼 법원의 영장 기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제민주화 흐름에 따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온 법원은 리스크가 수반되는 '경영 판단'에 대해서까지 배임죄를 적용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재계의 주장에 대해 재검토하는 분위기다.
◇ 기업 수사 난감하게 된 檢…"배임 행위 이익 개인 귀속 명확해야 처벌 가능"
검찰은 배임죄 관련 구속영장을 법원이 잇따라 기각시킨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검찰 관계자는 28일 "김신종 전 사장이나 정동화 전 부회장의 경우 경영상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에게 귀속된 이익이 분명히 있는데도 영장을 기각한 것은 잘못됐다"며 "법원의 이런 입장은 기업인들은 아예 처벌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두 사건은 박근혜 정부 첫 사정수사의 타깃이었던 포스코건설과 해외자원개발사업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 4개월간 진행된 수사의 동력이 거의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 소환 이후 정준양(67) 전 포스코 회장 등 이 사건의 정점에 있는 인사들을 불러 조사한 뒤 늦어도 9월 초께 사건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결국 기업인들의 경우 배임죄가 아닌 다른 구속요건을 가지고 의율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배임 행위의 이익이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명백한 증거 등이 있을 때에만 처벌가능한 추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업무상 배임은 자신의 업무에 어긋나는 행위로 본인이나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얻어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에 성립한다.
하지만 배임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기업인의 경우 사업을 추진할 당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반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김진태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를 중심으로 기업인들에게 배임죄를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 【서울=뉴시스】김동민 기자 = 포스코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15.07.27. life@newsis.com 2015-07-27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범죄 혐의가 같이 있어야 배임죄도 함께 영장이 발부되는 것"이라며 "포스코 건설 수사처럼 추가 수사로 배임 혐의를 끼워넣은 건 하나마나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배임죄 재검토 나선 法…CJ 이재현 회장 사건 바로미터 될 듯
법원은 기업인에게 배임죄를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현재 고민 중이다.
이재현(55·구속집행정지) CJ그룹 회장의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은 그 같은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9월 대법원에 상고된 이 회장 사건은 당초 대법관 4명이 심리하는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에 배당됐었지만, 일본 부동산 매입과 관련한 배임 혐의에 대해 일부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전원합의체에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 대형 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배임이라는 게 입증이 엄청 어려워서 오히려 너무 쉽게 형사처벌로 가면 검찰이 수사가 안되는 사건은 무조건 배임 혐의를 적용하도록 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며 "IMF 당시 대우그룹 부도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검찰이 엄청난 고민의 산물로 관련자들을 처음 배임죄로 기소했을 당시 그럴거라고 예상도 못했는데, 법원은 배임죄를 아주 쉽게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었고 그것이 판례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배임죄 규정 등 경제 관련 법률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징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토론회에서 "경제범죄에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도 부합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현상"이라며 "배임죄 규정 등은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외국에서 배임죄로 처벌 안한다는 건 재계에서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외국에도 배임죄와 비슷한 규정은 있는데 요건이 좀 더 엄격하지, 아예 처벌을 안 하거나 관련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그러니 배임죄의 경우 일반화 하면 안된다. 이재현 CJ 회장의 경우도 배임 혐의 중 한 둘 정도만 논란이 있는 거지 배임죄 전체가 애매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재현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어떤 증거를 갖고 혐의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느냐'라는 내용이 담길텐데, 그러면 해당 판례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단계나 일선 법원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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