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주년...숨겨진 이야기들

화이트보스 2015. 8. 6. 16:06

히로시마 원폭 투하 70주년...숨겨진 이야기들

원폭으로 히로시마 대신 후지산 정상 날려버릴 계획도

글 |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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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

 
오늘 8월6일은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70년전 히로시마에 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폭파시킨 날이다. 이날 원폭 투하로.  약 13만 5천명이 즉사 또는 후유증으로 죽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보다 11일 전인 7월26일 패전독일 땅 포츠담 (베를린 외곽)에 모인 미국, 영국, 쏘련 등 연합국 정상들은 일본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촉구했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이 즉시 항복하지 않으면 인류가 일찌기 보지 못한 가공할 무기가  하늘로부터 일본땅에  쏟아져 내릴거라고 경고했다. 그 때까지는 "원자탄"이란  단어조차 없었던 때라 일본당국은 막연한 공갈 협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가공할 위력을 보고도  일본의 항복이 없자 미국은 사흘 후인 8월9일 나가사키에 또 원폭을 투하한다. (원래 목표는 고쿠라였으나 날씨 때문에 나가사키로 바뀜) 그리고 일본은 8월15일 무조건 항복한다. 
 
그런데 미국은 엄청난 민간인 희생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꼭 대도시에 원폭을 투하했어야만 했나. 차라리 동경이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 앞 바다에 원폭을 투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하늘높이 솓아오르게 하여 원폭의 위력만 보여줘도 충분히 일본에 겁을 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고,  미국정부도 그런 생각을 실제로 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한다.  또 토쿄(동경)에서 가까운 일본의 상징 후지산의 꼭대기를 원폭으로 날려버릴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원폭이 딱 2개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본에 결정적안 충격효과를 주지 못할지도 모르는 곳에 원폭을 낭비할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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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히로시마 시내


그래서 미국은 2개의  원폭 전부를 대도시 파괴에 사용하기로 최종 결정한다. 원폭이 없었으면 미국은 일본본토에 군대를 상륙시킬수 밖에 없고 그러면 최소한 미군 사망 4만, 부상 15만 희생을 예상했어야 했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인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하고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학자 하세가와 츠요시는 당시 정부 기록을 찾아본 결과 일본으로 하여금 8월15일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한것은 원폭보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전날 소련이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과 바로 이웃한 소련 군대가 북쪽에서 홋카이도로 밀고 내려오는 것을 남쪽으로부터의 미군 상륙보다 일본이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한다.  당시 일본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던 터라 소련의 참전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소련을 통해 미국과 종전 협상을 하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소련이 선전을 포고하자 항복울 결심했고 다음날 8월 9일 나가사키에 또 원폭이 투하되자 6일후 히로히토 천황이 직접 항복 방송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투하 70주년을 맞아
워싱턴에서
조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