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여대 교수
불야성을 이룬 중국 국경도시 단둥의 밤이 더 환한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강 저편의 칠흑 같은 어둠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자괴감과 허탈감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백두산 천지에 올라 그 태고적 장엄함에 숙연해 졌지만, 장백산에서 천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그 허탈감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더 세월이 흘러 통일이 도둑같이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제까지 이럴 수 없다는 것이다. 통일에만 매몰돼 통합을 고민하지 못하면 통일은 고통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남북전쟁을 거쳐 통일된 국가를 건설한 미국을 보라. 남북전쟁이 끝난 지 한 세기 반이 흘렀지만 아직도 심각한 인종 갈등을 겪고 있다.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독일의 통일 역시 동독과 서독의 사회통합은 결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남북 경제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성공단을 국제화하고, 남북 FTA를 추진해 보자.
개성공단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지만 북한 주민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시장경제를 알게 해주는 것도 없으리라. 개성공단 근로자 5만 명이면 북한 주민 20만 명이 시장경제권에 들어온 셈이다. 남북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북한 정권은 개성공단을 인질로 삼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지만, 자기 살점을 잘라내는 자충수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이 윈윈하는 방법은 북한 스스로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 개성공단을 남북 프로젝트가 아닌 국제 프로젝트로 하여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독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변모시키면 된다. 국제투자지역이 되면 북한의 일방적인 손바닥 뒤집기는 더 어려워진다. 개성공단은 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남북 FTA는 남쪽의 자원과 기술, 경제개발 경험을 북한의 인적·지리적 자원에 접목하는 포괄적 경제협력 협정을 목표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압록강은 서해로 흐르고 두만강은 동해로 흐르지만, 내내 한 방향으로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 강은 남으로, 북으로, 때로는 정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험한 계곡을 돌고, 절벽에 부딪치고 거센 돌부리에 속도가 느려지지만 기어코 바다로 도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지 않으면 북한이 한국을 빼고 다른 국가들에 기회를 주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남북 경제 격차 해소를 위한 한국의 적극적 행보는 북한과 국제사회에 통합과 통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단단한 빗장이 한 번 제의에 쉽게 열리지는 않겠지만, 의지와 전략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오히려 후퇴임을 명심해야 한다. 분단 70년, 언제까지 섬으로만 살 순 없지 않은가.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