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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일까

화이트보스 2015. 8. 11. 16:30

김광진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일까[중앙일보] 입력 2015.08.11 00:06 / 수정 2015.08.11 00:24

이철호
논설실장
어제 국방부가 공개한 비무장지대(DMZ) 지뢰 사건은 비극이다. 장병들이 부상당한 동료들을 끌고 둔덕 뒤로 대피하는 장면이 열상감시장비(TOD)에 또렷이 잡혔다. 그 전우애가 눈물겹고, 꽃다운 나이에 다리를 잃은 두 하사관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제의 목함지뢰는 유실된 게 아니라 북한군이 몰래 침투해 의도적으로 매설한 게 분명해 보인다. 사건 현장은 남쪽이 높아 북한 지뢰가 떠내려올 일이 없고 새로 만든 목함에서 송진 냄새까지 났다고 한다. 물론 북한군 잠입을 차단하지 못한 경계 실패는 뼈아프다. 하지만 북한의 비열한 도발 책임부터 따져 묻는 게 우선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9일 오후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어떻게 우리 측 수색로에 북측 지뢰가 매설될 수 있었는지… 경계가 완전히 뚤(‘뚫’의 오기)려 있는 상황이란 것인데…”라는 트위터 글을 올려 처음 공개했다. 그 직후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가 이를 인용해 ‘DMZ 또 뚫렸나… 터진 지뢰는 북한제’라고 보도했다. 북한보다 우리 측 잘못부터 꼬집었다. 반면 모든 언론들은 모두 14시간을 침묵했다. 왜 그랬을까.

 국방부는 사건 하루 뒤인 5일부터 북한 소행으로 강하게 의심했다. 6일에는 출입기자단에 “북한제 목함지뢰가 폭발한 것 같다”고 공개하며 정밀조사가 끝나는 10일 오전 10시 반까지 엠바고(보도 제한)를 요청했다. 국방부는 9일 상세한 브리핑과 함께 오후 2시에는 10명이 넘는 기자들을 데리고 사건 현장까지 확인시켰다. 바로 그 시간에 김 의원이 마치 혼자 아는 듯 트위터 글을 올린 것이다. 그는 ‘확인한 제보에 따르면’이란 표현을 썼다. 하지만 그는 전화 한 통으로 국방부에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국회 국방위원이다.

 정치권과 언론이 첨예한 안보사안을 어디까지 공개할지는 정답이 없다. 여기에는 2010년 ‘신동아’ 6월호의 조종혁 외국어대 교수 기고문이 참고할 만하다. 그는 미국 국방부와 정치권·언론 사이의 모범 사례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꼽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AP통신의 브라이언 프라이스 사장을 직원 1만4000여 명의 검열청 소장에 앉혀 정보 공개의 전권을 맡겼다. 미 의원들과 언론은 첫 원폭 실험은 물론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계획까지 사전에 알았으나 전혀 공개하거나 보도하지 않았다. 국익과 생명이 걸린 중대 사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표적 실패 사례는 한국전쟁이다. 당시 AP통신 기자는 사전에 무분별하게 인천상륙작전을 본사에 타전했으며, 급기야 뉴욕헤럴드트리뷴 기자는 그 엠바고까지 깨고 말았다. 미 사회는 장병의 생명이 적에게 노출되는 위기에 분노했다. 그 역풍으로 한국전쟁은 깜깜이 전쟁이 되고 말았다. 노근리 양민 학살은 당시 CBS 기자가 취재했으나 묻혔다. 지나친 보도 통제로 1·4후퇴 때는 ‘후퇴’ 대신 ‘다른 방향으로의 진격’이란 엉뚱한 표현을 써야 할 정도였다.

 김광진 의원이 국방부에 확인하기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폭로 글부터 올린 게 지역구 공천을 노린 돌출행동이라 믿고 싶지 않다. 오마이뉴스가 그 트위터를 인용해 장문의 기사를 내보낸 것도 ‘사전 김빼기’라 의심하고 싶지 않다. 다만 천안함 사건도 기억했으면 한다. 당시 적재무기와 유효사거리, 적 잠수함 위치추적 및 감청능력, 전투 시 함장과 사격통제실의 위치 등 14건의 군사비밀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금도 천안함과 똑같은 20여 척의 초계함이 우리 바다를 지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군사독재 시절의 ‘보도지침’은 정말 나쁜 제도였다. 그렇다고 그 관성 때문에 군사비밀까지 함부로 공개하는 게 ‘표현의 자유’는 아니다. ‘알 권리’를 비롯한 모든 민주주의 가치는 탄탄한 국가 안보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이 안보 쪽에서 자꾸 튀는 느낌이다. 그가 과연 대한민국 국회의원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보 문제에 관한 한 정부와 정치권·언론은 서로 정중한 거리를 유지하며 신중히 접근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침묵도 중요하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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