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지방자치 20년의 성적표를 바로 보자

화이트보스 2015. 8. 12. 10:42

지방자치 20년의 성적표를 바로 보자

  •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 2015.08.12 03:00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임명제 관선(官選) 도지사 시절 충북도청에서 지역경제 대책회의가 끝난 직후 도지사로부터 지역경제연구소 소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정중히 사양하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조간신문을 펼쳐드는 순간 나는 그냥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사 경질, 새 지사에 △△△씨 임용.'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다른 관선 도지사로부터 "만나서 상의할 것이 있다. 장소는 다시 연락하겠으니 오후 3시경에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그런데 6시가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푹 가라앉은 도지사의 전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정이 급변하여 연락이 늦었습니다. 지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관내 행사에서 연설하는 도중 경질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대학에 재직하던 무렵 필자에게 어느 한국 군수로부터 "일본 산촌을 방문하여 벤치마킹하게 해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그 지방의회가 제시했다는 요구 조건은 까다로웠다.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시설원예 등을 경영하는 농민을 각각 같은 농사를 짓는 일본 농가에 민박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친분이 있던 일본 농촌마을의 촌장(村長)에게 부탁했고, 며칠 후 준비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의 여섯 농가는 '농가 방문단 접객 회의'를 개최하고, 김치 담그는 방법과 한국어로 인사하는 법도 배웠다. 한국 방문단이 오기 하루 전날, 두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임에도 그 마을 담당 공무원이 준비 상황을 브리핑하겠다며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런데 공무원 일행이 다녀가고 두 시간 정도 지나 국제전화가 왔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내일 일본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내무부에서 아직 해외여행 결재를 못 받았습니다." 나는 한국 내무부 장관의 허락을 받지 못해 군수 일행이 오지 못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민선(民選)으로 선출한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려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나라들과도 비교해보고,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과 현실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 20년을 평가하는 사람 중에는 우리의 '과거'를 깡그리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

천연자원·산업자원·관광자원이라고는 없는 '3무(三無)의 고장'에서 고유한 지역 브랜드를 만든 함평, 쓰레기 더미로 몸살을 앓던 습지를 관광 명소로 만든 순천, 마을 기업 100개를 일구고 있는 완주….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단적으로 비교해 보자. 1995년 이전의 20년 동안 함평·순천·완주의 관선 단체장은 각각 15·14·18명이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20년간의 민선 단체장은 각각 3·4·4명이다.

종이 한 장으로 임명돼 1년 남짓 머물다가 떠나는 관선 단체장이 장기 계획을 세우거나 고유한 정책을 강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지시·명령·통첩·훈령·시달이 전부였다. 이제는 지방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이 3개 자치단체의 성적표를 놓고 볼 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지역 공동체 스스로가 자율에 기반을 두고 각자의 책임을 완수할 때 지방자치의 가치가 확대됨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