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한 줌의 재로, 이제야…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해 18일 오전 부산에 도착한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일본 홋

화이트보스 2015. 9. 21. 10:32

끌려간 길 되밟아…70년 만에 ‘귀향’

부산 |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ㆍ일제 강제 징용자 유골 115위
ㆍ홋카이도·도쿄 등 거쳐 고국에
ㆍ오늘 서울광장서 장례식 엄수

가깝고도 머나먼 나라,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차가운 땅에 버려진 조선인 115명의 유골이 광복 7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18일 오전 8시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유골을 실은 부관페리호가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해 대한해협을 건너 12시간 만에 도착했다. 이들은 일본 홋카이도 북부에 있는 슈마리나이 댐, 아사지노 일본육군비행장, 비바이 미쓰비시탄광 등에서 강제로 노동하다 가스 폭발 등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이다. 유골들은 1997년부터 18년 동안 한·일 양국의 민간 전문가와 종교인, 학생들이 홋카이도 각지에서 수습한 원혼이다.

한 줌의 재로, 이제야…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해 18일 오전 부산에 도착한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일본 홋카이도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115위의 위패와 유골을 들고 국제여객터미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유골은 지난 11일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의 귀국단 40여명과 함께 홋카이도를 출발해 약 4000㎞에 이르는 귀향길에 올랐다. 위패와 유골을 모신 귀국단은 도쿄와 히로시마 등을 거쳐 지난 17일 밤 시모노세키항에서 부산행 배를 탔다. 선상에서 멀어져가는 일본 땅을 바라보던 한 유족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고 선창했고, 귀국단원들은 70여년 전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을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아리랑을 구슬프게 불렀다.

부산항에 도착한 귀국단은 입국수속을 밟은 뒤 위패와 광목에 싸인 목관 21개를 들고 입국장에 들어섰다. 유족, 시민, 국내외 취재진 등 50여명이 한 많은 땅 일본에서 귀환한 유골을 숙연하게 맞았다. 유골 귀향을 추진한 일본의 민간단체 (사)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 대표는 “희생된 분들이 돌아오는 데 70여년이 걸렸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이번 봉환이 두 나라가 두 번 다시 전쟁이 없는 화해로 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유골을 맞은 서라예술단 공연단은 징과 꽹과리, 장구 장단에 맞춰 한풀이를 했다. 유골은운구차량 2대로 부산 중구 수미르공원으로 옮겨졌고,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 노제가 열렸다.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부관연락선이 일본으로 출발했던,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고국의 땅이다.

삼촌 김일중씨(1925년 전북 고창 출생)의 유골을 모신 유족 김경수씨(65)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일본이 납득할 수 있는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의 삼촌은 1942년 6월 17세 때 일본 경찰에 끌려 일본 홋카이도의 도로건설 현장에서 노동하다 2년 후인 1944년 4월 사고로 꽃다운 청춘을 마감했다. 19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유골 115위(位)의 장례식이 엄수된다. 유골은 20일 경기 파주 서울시립묘지 납골당에 안장돼 70년 만에 고국에서 영면한다.




한 줌의 재로, 이제야…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출발해 18일 오전 부산에 도착한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회원들이 일본 홋카이도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115위의 위패와 유골을 들고 국제여객터미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