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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도 소용없는 공무원 복지부동 3.0

화이트보스 2015. 11. 3. 11:31

채찍도 소용없는 공무원 복지부동 3.0

입력 : 2015.11.03 03:00

김태근 논설위원 사진
김태근 논설위원
지난달 12일 황우여 사회부총리의 교과서 국정화 방침 발표를 앞두고 청와대에선 1주일 전부터 매일 비공개 대책회의가 열렸다. 교육부 공무원들도 당연히 참석했다. 발표 며칠 전 교육부에서 '국정화 발표 이후 홍보전략'을 만들었다며 들고 왔다. 부총리 발표와 방송 3사 토론 프로그램 출연이 내용의 전부였다. 국정화 논리를 뒷받침할 자료도 없었다. 기가 막힌 회의 참석자들이 물었다. "방송시간과 토론자는 정했나요?" 교육부 담당자는 이렇게 답했다. "아직 못 했는데…. 혹시 방송사 담당자 전화번호 아시나요?"

그 회의에 매일 들어간 사람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얘기다. 그는 "지금 공직사회가 얼마나 한심한지 꼭 알려달라"고 했다. 교육부 소속은 아니지만 그도 공무원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이런 말을 했을까.

공무원들 복지부동이 위험수위다. 정권이 반환점을 돌았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랬다. 교과서 국정화 발표를 하면서 참고자료도 제대로 안 챙긴 교육부의 초기 대처는 아무리 봐도 심했다. KFX 사업을 둘러싼 말 바꾸기, 가라앉을 기미가 없는 전세난 등에도 실무를 맡은 담당 부처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사안은 우선 지도층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뒷받침할 실무자들이 움직이지 않아선 동력을 받기 힘들다.

'복지부동 3.0'이라는 말이 요즘 관가에 돈다. 행정자치부가 정부 경쟁력을 높인다며 추진하는 '정부 3.0'을 비꼰 것이다.

개발 연대의 공무원 복지부동(1.0)은 그냥 게으름이었다. 몇몇 엘리트 관료를 빼면 대부분 공무원들이 일하기를 싫어했고, 일을 제대로 할 방법도 몰랐다. 2000년대 중반 흐름이 바뀌었다. 2006년 외환은행 매각을 진두지휘했던 재경부 관료가 은행을 헐값에 팔았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검찰에 구속됐다. 4년 소송 끝에 무죄판결이 났지만, 이때부터 엘리트 관료들도 "소신껏 일했다간 저 꼴 난다"며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민감한 현안을 뒤로 미루는 못된 버릇이 이때 확 퍼졌다. 복지부동 2.0이다. 그래도 이때는 관료들이 "이건 꼭 해야 하는데…"라는 죄책감은 가졌다.

복지부동 3.0은 현 정부 작품이다. 세종시 이전(2012년), 관피아 척결 조치로 공직자의 산하기관 재취업 금지(2014년), 공무원연금 혜택 축소(2015년 5월) 이후 공직사회는 유례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 일을 안 하고도 부끄러운 기색조차 없으니 더 심각하다. 경제부처에서 20년 넘게 일한 국장급 인사는 "가족과 떨어진 지방살이가 3년이 넘었다. 퇴직 후도 막막하다"며 "정치권이 뒤로는 온갖 민원을 하면서 일만 터지면 우리만 잡으니 욕먹어도 가만히 있는 게 편하다"고 했다. 간부들이 이러니 30~40대 전도유망한 공직자 가운데 이탈자도 속출한다. "누가 삼성에 갔다" "누구는 사모펀드에 취직해 연봉이 2억원"이라는 소식이 세종 시 술집 단골 안주다.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란 말조차 이젠 민망하다. 그사이 혈세(血稅)는 날아가고, 일 못하는 정부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는다. 현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채찍은 충분히 휘두른 것 같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채찍을 견디며 멈춰서기를 택했다. 채찍 대신 당근을 흔들 수 없다면, 민간 전문가라도 확 늘려 공직사회 분위기를 쇄신할 때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