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서에 대한 비판과 국정화에 대한 나의 입장
지난 10월 23일 본교 홈페이지(www.puts.ac.kr) 일반게시판에 본교 역사신학교수 7분 공동의 이름으로(임희국, 서원모, 박경수, 안교성, 이치만, 김석주, 손은실) 작성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이 성명서에서 자신을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역사신학교수로 소개하면서 “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거나 미화하거나 왜곡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고,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으로 이 성명서를 마무리하였다.
이 성명서를 읽은 후 국정화에 찬성하고 있던 나는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성명서에 의하면 나는 “역사를 독점하고,” “미화하고,” “왜곡하는” 시도에 동조하는 공범(共犯)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는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는 장로교 소속 교단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찬성하는 나는 신앙도 없고 양심의 자유도 없는 교수인 셈이다.
더욱 큰 고민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이다. 선언문 말미의 이 성경인용문을 놓고 추론하건데 역사신학교수들은 진리를 인식하고 있고 진리로 자유롭게 된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진리에 무지하고 그리스도의 자유가 없는 사람인 건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느냐 아니면 마느냐의 문제가 “진리의 문제”고 정말 어느 한쪽의 입장은 “진리,” 반대편의 입장은 “거짓”인가?
나는 이 성명서에 역사신학교수들이 갖고 있는 독단적인 입장, 즉 ‘나의 입장’은 옳고 ‘너의 입장’은 틀렸고 ‘나의 입장’은 진리고, ‘너의 입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는 독단적인 입장,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독단적인 입장이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의 독단적인 태도는 “우리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바로잡는 일임을 깊이 인식한다”는 말에서 그 절정(climax)에 도달한다. 마치 한 장의 성명서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런 환상을 본교 역사신학교수님들만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 장신대 교수회가 성명서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해온 선례가 지난 “세월호 성명서”와 “광복 70주년 신학성명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성명서들이 지금 우리 교단 안에서 얼마나 “사태”를 바로 잡고 있고, “개혁을 이루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이들은 “일방적인 진리주장이 얼마나 위험하며 자기혁신에 무능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금 그 위험한 “일방적인 진리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 이 성명서가 더욱 더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이유는 성경말씀을 자신들의 주장을 위한 치장물(embellishment)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말씀으로 자신들의 주장에 세례를 행하고(baptize) 자신들의 주장을 거룩한 진리(sanctified truth)의 수준으로 고양시킴으로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를 진리의 문제로 둔갑시켰다. 나는 성서신학교수로서 이 구절을 아무리 읽고 주석을 참고하여 보아도 왜 이 대목에서 이 성경구절이 등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 구절이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어떤 구체적 관련이 있는지 나의 무지(無知)를 깨우쳐줄 역사신학교수님들의 친절한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는 이와 유사한 성명서를 기독공보에서 읽었다. 본교단 총회장이 발표하여 기독공보에 게제된 성명서, “역사교과서 논의에 대한 본 교단의 입장: 역사 해석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제한”은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다.
내가 총회 사무총장실에 직접 전화하여 총회장(채영남 목사)이 어떤 경로로 총회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 성명서를 발표했는지를 문의하였더니 임원회에서 논의하여 발표하였다고 한다.
우리 교단 내에 이 문제에 관하여 성도들 사이에도 의견이 다르고, 목회자들도 마찬가지고, 신학교 교수인 나부터 총회장과 의견이 다르다. 임원회는 어떻게 본교단의 입장을 수렴했는지 묻고 싶다. 총회장은 개인이 아니라 교단을 대표한다. 공인이다. 공인은 자신의 사견(私見)이 과연 자신이 대표하는 전체의 의견인지 분간하여야 한다. 임원회의 결의로 “본교단의 입장”을 발표하였다면 총회장과 임원회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 아닌가? 그 성명서는 총회장이란 직함을 빼고 차라리 “역사교과서 논의에 대한 나의 입장”으로 혹은 “역사교과서 논의에 대한 본교단 임원회의 입장”으로 발표했어야 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한 쪽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논쟁적 주제(controversial issue)에 관해 총회장이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이렇게 간단히 임원회의 결정만으로 교단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월권(越權)이다. 왜 자신들의 사견이 교단의 입장인가?
역사신학교수들의 독단적인 주장은 반대의견과의 의미 있는 토론을 처음부터 봉쇄한다. 원래 성명서가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지만, 지금 이 성명서는 그 도가 지나치다. 이 성명서는 처음부터 교조적인 태도로 독자의 투항과 복종을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리를 모르는 자”로 깔끔하게 분류해버린다. 특이한 점은 역사신학교수답지 않게 이 성명서 안에는 역사교과서 문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진행되었고 현재 무엇이 문제인가에 관한 분석과 구체적인 문제 지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총회장의 성명서는 역사신학교수들의 성명서보다 훨씬 더 실증적(實證的)이다. 총회장의 성명서는 그런 문제에 관해 양질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고, 왜 본인이 개인적으로 국정화에 반대하는지 독자의 이해를 돕는 설명도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같은 학교의 교수로서 이 성명서가 더욱 더 부끄럽다.
그렇다면 내가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교 역사신학교수들의 언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현재 사용중인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부분이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가진 저자들의 견해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고, 전체주의적 “사고의 획일화를 초래할 전근대적인” 내용이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깨어져 있고, 어린 학생들의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국민통합과 창조성을 실현하는 일에” 역행하는 시민들을 이미 양산(量産)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양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절실한 이유는 나는 “한국 학계의 문제해결 능력 및 자정능력을 불신하는 입장”이기 때문이고, 내가 이미 본교에서 교수 집단이 얼마나 “자기혁신에 무능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였”기 때문이고, “역사가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임을 이미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들을 통해 똑똑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사용 중인 검인정 교과서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을 최근에 보고 사실 교과서 내용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었다.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누락되고 없다든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든지, 이런 문제 지적들이었다. 혹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타종교에 관한 서술이 많고 기독교에 관한 서술이 적다는 문제 지적이었다.
나는 정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전 중고등학교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구입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아쉽게도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출판사에서 다 회수해 가고 없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엔 출판사에서 간행한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대표저자 한철호)와 비상 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사: 완벽한 자율학습을 위한 완벽한 자율학습서』(저자: 이건홍 외 4인 공저)였다(물론 다른 것들도 있었지만 비싸서 모두 다 구입할 수 없었다).
이 책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의 내용을 잘 요약, 분석하고 있고,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추가되어 있어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보다 저자의 의도를 더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학습진단평가를 위해 문제풀이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그 중 책이 많이 사용된다는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을 그 밤 새벽까지 직접 읽었다. 다 읽고 난 뒤의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 ‘놀라움’이었다.
나는 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하였다. 3학년 때인 83년 8월에 일종의 강제징집제도인 지도휴학을 받고 군대에 갔고, 85년 제대하고 다시 복학하여 88년에 졸업했다. 사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학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읽던 각종 이념서적들을 읽었다.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의 저작들은 물론 러시아, 중국, 베트남, 쿠바혁명사, 마르크스-레닌주의 유물론 철학, 경제사(經濟史), 경제이론인 정치경제학, 종속이론, 사회주의 사상사, 사회주의 예술론, 한국근현대사, 반봉건식민지론,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 사회구성체론 논쟁, 등 오늘 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무식한(?) 좌파들이 읽지 않는 다양한 좌파 이론들을 공부한 적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나에게 성경보다 더 중요한 책이었다. 수 백 페이지에 걸쳐 작은 글씨로 프린트 된 영어로 번역된 자본론을 두 번 통독하면서 나는 영어를 깨우쳤다.
제대한 뒤에 나는 더욱 더 이념서적에 심취했고, 어느 날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나는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내가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지금 되돌아보면) 그 길에서 다시 돌아왔고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신학교 시절에도 나는 이념의 문제와 신앙의 문제를 안고 많은 고민을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좌파 이념을 버리게 된 것은 미국에 유학 가서 바울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다. 바울의 복음은 나를 완전히 사상적으로 전향하게 했고, 복음의 세계관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나의 전기(autobiography)를 말하는 것은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을 읽은 뒤의 나의 소감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하게 하려는 의도이며 다른 뜻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