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 / 세종연구소 소장누구나 새해에는 올해보다 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국제정치 관계자들의 소망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호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미국·중국·일본 세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국은 특히 향후 정세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에 정확히 대응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내년 동북아 질서에 영향을 줄 국제적인 변수로는 우선 미국의 대선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이 본격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 쉽지 않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자신의 업적을
유지하되 새로운 외교정책을 추진할 동력은 줄어든다. 특히, 오바마 정부는 대선 외에도 테러 문제 및 그와 연관된 중동정책,
러시아에 대한 견제 유지 등이 주요 관심사로 동북아 정책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안보보다는 경제 문제에 집중하고, 군사적 대치나 갈등보다는 외교적 협력을 유지하면서 관리 모드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은 대중(對中) 전략을 전체적인 큰 구도 속에서 재조정하고 있고, 점차 대중 강경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국은
선거 국면에서 중국 문제에 민감해질 수 있기 때문에 남중국해에서의 미국 주장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미국의 정책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책을 선호하기보다는 당분간 중국과 타협을 통해 현 상황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동향에 대한 중국의 반응도 내년도 동북아 질서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경제적 도전이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내년은 중국이 생각했던 것보다 경제 문제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다. 중국의 13차 5개년 계획을 보면 2016∼2020년 중 평균 경제성장률을 6.5%로 잡고 있다. 그러나 이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따라서 중국은 시진핑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경제정책을 우선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중국은 민감한 안보 문제보다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의 경제정책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생각이 강할 것이다.
다만, 시진핑 정부가 중국 내 내셔널리즘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의 국내 정치 갈등이 증폭되지 않는 한 시진핑 정부는 미국 대선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남중국해 문제에서 더는 미국과의 대립각을 세우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 대선에서 대중 강경론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주변국들의 마음을 사는 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 예로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남중국해의 5대 제안을 보더라도 중국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미국과의 타협 여지를 남겨둔 것을 들 수있다.
이러한 미·중 관계의 흐름은 일본의 정책에도 영향을 준다.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동북아 질서의 안정을 원할 수 있다. 즉, 중·일 관계의 안정화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외교적인 득점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아베 총리는 당장 중·일과의 힘겨루기를 통해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미·일 군사 관계의 일체화를 통해 국내 안보
시스템의 정비에 역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내년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경제 상황은 저성장 기조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국은 대외정책에 변화를 두기보다는 국내 경제에 집중하려는 동인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외교정책도 동북아 질서의 복합성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내년도 동북아 질서를 보더라도 안정과 불안정,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면서 현상 유지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는 동북아 질서의 양면성을 보면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게 됐다. 자유적인 시각에서 보면 동북아 각국의 경제 협력이 증대되면 안보 상황도 호전돼야 한다. 그러나 동북아 국가의 현실은 경제 협력이 필요함에도 안보의 불안정성이 유지되면서 서로에 대한 경쟁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한국 외교는 앞으로 동북아 질서의 불안정성을 제거해 나가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