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16 03:00
![김성현 문화부 차장](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12/15/2015121503845_0.jpg)
대한민국의 출생증명서라도 다시 떼야 할 판이다.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찬반(贊反) 논란의 불길이 최근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졌다. 요컨대 '1919년 건국론' 대(對) '1948년 건국론'의 갈등이다.
'1919년 건국론'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하고'라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 근거를 둔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명시한 만큼, 1919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아야 옳다는 주장이다. 반면 '1948년 건국론'은 정부 수립 기념일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으로 본다. 두 주장은 제각기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단절이 아니라 계승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1919년 건국론'의 매력이다. 일제 침략이라는 '도전'에 맞서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응전'으로 훌륭하게 한국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1919년 건국론'은 '정치학의 ABC'와 어긋난다. 현대 정치학은 '국가의 3요소'가 영토·국민·주권이며 셋 중에 하나만 빠져도 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가르친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됐다고 보면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같은 일제강점기의 고난을 설명할 길이 묘연해진다. '대한민국의 탄생'이라는 사실판단(事實判斷)과 '임정 법통 계승'이라는 가치판단을 혼동한다는 비판을 면하기도 어렵다.
김구 주석의 임시정부도 1941년 '건국 강령'에서 '적의 통치 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중앙정부와 의회의 정식 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을 '건국의 제1기'라고 규정했다. 건국을 향후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면 역사는 판타지의 영역으로 퇴행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이라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1948년 건국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건국절(建國節)인데도 정부 수립 기념일로 격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1948년 건국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1948년 8월 15일 기념사와 충돌한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 수립 대통령 기념사'라는 제목의 당시 기념사는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대한민국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이는 다름 아니라 이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이 기념사에서 건국과 정부 수립을 대비시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병용하고 있다.
두 건국론이 모두 약점을 지니고 있는 건 사후적(事後的)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 약점에는 눈감고 남의 허물만 들추는 언쟁(言爭)을 계속하면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탓하는 경우'가 되기 쉽다. 재평가는 역사가의 몫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희망 사항까지 사실(史實)에 뒤섞을 권리는 역사가에게 없다.
'1919년 건국론'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하고'라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 근거를 둔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명시한 만큼, 1919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아야 옳다는 주장이다. 반면 '1948년 건국론'은 정부 수립 기념일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으로 본다. 두 주장은 제각기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단절이 아니라 계승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1919년 건국론'의 매력이다. 일제 침략이라는 '도전'에 맞서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응전'으로 훌륭하게 한국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1919년 건국론'은 '정치학의 ABC'와 어긋난다. 현대 정치학은 '국가의 3요소'가 영토·국민·주권이며 셋 중에 하나만 빠져도 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가르친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됐다고 보면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같은 일제강점기의 고난을 설명할 길이 묘연해진다. '대한민국의 탄생'이라는 사실판단(事實判斷)과 '임정 법통 계승'이라는 가치판단을 혼동한다는 비판을 면하기도 어렵다.
김구 주석의 임시정부도 1941년 '건국 강령'에서 '적의 통치 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중앙정부와 의회의 정식 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을 '건국의 제1기'라고 규정했다. 건국을 향후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면 역사는 판타지의 영역으로 퇴행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이라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1948년 건국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건국절(建國節)인데도 정부 수립 기념일로 격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1948년 건국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1948년 8월 15일 기념사와 충돌한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 수립 대통령 기념사'라는 제목의 당시 기념사는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대한민국은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이는 다름 아니라 이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이 기념사에서 건국과 정부 수립을 대비시키기보다는
두 건국론이 모두 약점을 지니고 있는 건 사후적(事後的)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 약점에는 눈감고 남의 허물만 들추는 언쟁(言爭)을 계속하면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탓하는 경우'가 되기 쉽다. 재평가는 역사가의 몫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희망 사항까지 사실(史實)에 뒤섞을 권리는 역사가에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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