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 사회부 차장
“저 같은 검사가 서울고검장이 된 걸 보면 우리나라가 그렇게 형편없는 나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검찰을 떠난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서울고검장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 2012년 11월 법조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한 말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재직 시절 김현철·김홍걸 비리를 수사했던 그는 서울고검장까지 하게 될 줄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의 노골적인, 때로는 은근한 압력을 뚫고 현직 대통령의 자식을 기소하면서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났고, 이후 정권이 바뀌어도 ‘말 안 듣는 위험한 검사’로 낙인 찍혀 “인사 때마다 동해안에서 서해안, 남해안으로 떠돌아다녔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수남 검찰총장 취임 후 지난 21일 이뤄진 첫 검사장급 이상 간부 인사를 보면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등에서 지극히 취약한 조직이며, 그 이유는 승진에 목숨이 걸린 검찰 특유의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김진태 전 총장의 3년 전 발언이 떠올랐다. 고검장 6명과 검사장 11명의 승진을 포함한 43명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를 온전히 법무부가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청와대의 입김 또는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김 총장과 동기인 사법연수원 16기가 앞서 검찰을 떠난 뒤 17기인 김경수 대구고검장과 조성욱 대전고검장, 18기의 강찬우 수원지검장, 정인창 부산지검장, 변찬우 대검 강력부장, 김영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오광수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이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김 장관은 직접 전화해 “승진이 어렵다”며 사실상 용퇴를 강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총장직을 경합하거나, ‘검찰 넘버 2’라는 서울중앙지검장에 거론될 만큼 경력관리가 잘된 인사들이 전화 한 통 받고 20∼30년 정들었던 검찰을 떠나야 하는 조건에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명백한 결격 사유나 잘못이 없는데도 강제 퇴출당할 수 있는 구조하에선 검사들이 청와대 하명(下命) 사건이나 권력형 비리 사건 등에서 소신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윗선에 찍히지 않기 위해 알아서 기는 수밖에 없다.
인사 때마다 승진하는 동기나 후배를 위해 옷을 벗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검찰의 연소화도 문제가 된다. 20년 이상 수사 현장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베테랑들이 연례행사처럼 대거 빠져나가 현재 지검장은 지방법원장에 비해 연수원 기수가 5∼6년 어리다. 그만큼 법원과 비교해 중량감에서 밀리게 된다. 검찰의 실력 저하 문제도 검찰 간부의 연소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검찰 간부들이 인사에 목숨을 거는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는 요원하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 외부인이 참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검찰 간부 인사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빨리 고민돼야 한다. 또 검찰총장을 현직이 아닌 퇴임한 지 일정 기간이 지난 변호사 중에서 지명하게 하는 것도 검찰의 조로화를 방지하고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막을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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