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18 05:48

北에 대한 오판은 무지에서 비롯
'합의하면 지켜진다' 이상론은
'정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北 전제주의 정치에 적용 안 돼
"그것 봐요. 제가 말했잖아요 (I told you)." 옳은 지적을 해도 이를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아 일을 그르치게 되었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인 관계를 조언하는 상담가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이 말을 되도록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미 일어난 결과를 되돌릴 수 없게 된 마당에 상대방의 자존감만 건드리고 대인 관계는 악화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사로운 인간관계 차원이 아니라 나라의 안위가 걸린 북한 핵 문제에 관해서만은 과거의 잘잘못을 거론해야 할 듯싶다.
1992년 북한의 초기 핵 프로그램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당시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 시설 타격까지 검토하면서 초장에 북핵 폐기를 관철하려 했다. 그러자 김영삼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겁을 먹고 이를 뜯어말렸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엄포에 누구보다도 겁을 먹었던 쪽은 북한의 김일성이었다.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 나온 미국이 엄중한 압박 카드를 단념한 것을 알게 된 북한은 17개월에 걸친 지루한 공방을 거쳐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다. 많은 사람이 북한의 핵 동결 약속에 환호했지만 한국이 13조 비용의 대부분을 대서 경수로를 짓고 미국이 연간 50만t의 기름을 지원하는 동안 북한은 오히려 핵개발을 가속화했다. 남북정상회담에 공을 들이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제공한 대북 현찰, 쌀 지원은 북한 정권의 무기 개발과 엘리트 통치 비용에 활용되었다.

갖가지 무사안일주의 대북정책이
시대 거스르는 北 퇴행 불러
탄도미사일은 핵탄두를 실어 나른다는 점에서 핵과 미사일은 동전의 앞뒤 관계다. 1998년 이후 이제까지 북한은 핵실험을 네 차례,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다섯 차례 실시했다. 이 중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이루어진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가 각 두 차례임을 감안하면 3대에 걸친 북한 지도부의 핵 고집은 요지부동인 듯하다. 북한에 대한 오판은 북한 정권의 생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주면 되돌려받고, 합의하면 지켜진다는 이상론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정권만 유지하면 된다는 북한 특유의 전제주의 정치에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북한 대남 정책의 본질을 알고도 이에 호응한다면 단기적인 '남북 관계 개선'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흥행에 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주변국들이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국익에 충실한 한반도 전략을 구사할 뿐이다. 1989년 냉전 체제가 해체된 이후 북한만이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는 퇴행적 행태를 거듭한 것은 갖가지의 무사 안일주의가 빚어낸 한국 자신의 오합지졸 대북 정책의 탓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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