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18 16:31
[日 '잃어버린 20년' 연구한 송현부 일본도시경제연구소장]
"집값이 안정되지 않으면 한국의 위기는 2030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송현부 일본도시경제연구소장은 한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예상보다 길어질지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책 변화, 집에 대한 인식 변화 등 전격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말이다. 송 소장은 3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부동산 시장을 연구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다. 일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연구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도쿄공업대 대학원에서 도시경제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부동산 맹신론이 팽배했던 시기부터 부동산 버블의 위기를 경고했다. 2011년에는 저서 <부동산 불패신화는 더 이상 없다>를 통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송 소장은 “일본 지가의 거품형성 과정과 한국의 사정을 비교하면, 경제 성장 등에 따른 지가 상승 배경은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1966~75년대 일본에서는 전후 집 없는 세대가 고도성장 속에서 마이카·마이홈 열풍에 빠졌고, 주택지를 중심으로 지가가 상승했습니다. 일종의 국토균형개발정책인 일본열도개조론은 토지 투기를 불러일으켜 땅값 폭등의 계기가 됐고요. 거품 경제기인 1986~90년에는 국제화에 따른 도쿄 집중현상으로 오피스 수요가 많아지면서 상업 업무용지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도심의 상업지 땅값이 폭등하면서 대부분 도심부의 주택지가 상업지로 바뀌었어요. 한국도 전후 1965년부터 1970년까지 10%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공업지를 중심으로 지가가 상승했습니다. 1972년부터 도시인구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 강남을 비롯해 전국에 신시가지를 만들었고, 전국에 아파트단지가 증가하며 주택지를 중심으로 지가가 상승했죠. 1985~98년에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강남의 복부인들을 양산했고, 전국의 땅값이 폭등하면서 전세대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세금 폭등으로 자살자가 나오는 사회적 문제도 그때 발생했어요.”
출생률 감소, 고령화도 일본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인구는 2015년 현재 약 5150만명 수준이지만 1970년을 전환점으로 해 2% 미만으로 인구증가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고령화 시대의 중심세대이면서 부동산 시장의 주체이기도 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이후 노후 생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하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큰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5%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대부분이 부동산 중심의 자산을 갖고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193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1991년 이후 은퇴하면서 이후 15년간 부동산 가격이 80% 넘게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신규 부동산 시장은 있지만
중고 부동산 시장은 없어
'내 집값' 不落 기대심리 작용
한국의 ‘내리지 않는 땅값’ 위험 수준
송 소장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부동산 시장이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했다.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에서 부동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일본은 12.2%대, 우리나라는 6.7%대입니다. 일본과 유사하게 우리나라 국부에서 토지(부동산 부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큽니다. 일본은 거품 붕괴를 통해 토지 자산의 버블이 조정됐다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은 아닙니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어요.”
한국은 1972년 12월 국토이용관리법을 제정해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토지평가사(현 감정평가사)가 기준지가(현 공시지가)를 평가하고 있다. 첫 고시가 시작된 1974년을 100으로 봤을 때, 40년이 지난 2014년 경제성장률은 16배로 상승했고, 소비자물가지수는 11배 올랐다. 전국 지가는 23배로 상승했고 대도시 지가는 40배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3배, 소비자물가지수는 3.1배, 전국 지가는 2.5배, 대도시 지가는 3.1배로 증가했다. 송 소장은 “한국에는 신규 부동산 시장은 있는데 중고시장은 없다”면서 “부동산 거래가 일어나면 해당 부동산은 ‘중고’가 되는 게 맞지만 중고시장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 것은 ‘내 집값’은 절대 떨어질 리가 없다는 한국인의 끝없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의 토지자산 가격 관련 보도에 대해 언급하며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한국은행 국민계정부가 약 50년 새 우리나라 토지자산이 3030배 증가했다는 분석 자료를 발표했어요. 우리나라 명목 토지자산 가격 총액이 1조9300억원에서 2013년 5848조원으로 증가했다는 것인데, 이게 의미가 있는 발표일까요? 토지자산은 잔뜩 커지고 임대나 매매 등 거래는 거의 안 이뤄지고 있다는 게 현실입니다. 토지자산을 분모로 놓고 분자에 임대료 등을 두고 수익률을 계산하는데, 분모만 잔뜩 커지고 분자는 변화가 없으니 국부의 운용 수익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거죠.”
한국 부동산 시장은 서서히 일본의 거품 붕괴 시기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마치 끓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다는 지적이다. 한국 역시 리먼 사태와 세계적 금융 위기로 집값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지만, 일본 만큼 큰 폭락으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게 송 소장의 설명이다. 같은 위기가 왔을 때,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일본은 거품 붕괴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지금도 주택 때문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세수가 세출을 감당하지 못해 매년 추경예산으로 국채를 발행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 국채를 은행이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채는 다른 나라가 사가죠? 일본의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두 배인 1000조엔에 달한다고 하지만, 일본의 가계자산은 1800조엔 수준입니다. 경제가 흔들리고 디플레이션이 와도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이 견딜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외국 돈을 빌려 쓰고 외환보유고도 일본의 3분의 1이 안 되는 우리나라가 남 걱정을 할 때는 아니라는 거죠.”
일본의 거품기와 유사한 상태인 한국의 부동산 자산구성도 위험 요인이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연도별 가계 자산구성에서 부동산이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85.2%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송 소장은 “토지를 이용해 재산을 늘리는 것에 대해 한국인의 49.9%가 우호적이라는 의견을 보였다”며 “이런 인식은 일본 부동산 거품 형성기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가계자산은 1990년에는 부동산 자산이 70%를 차지했지만, 2007년부터 금융자산이 부동산 자산보다 높은 구조로 변화됐다.

신도시·택지 개발은 이제 그만,
낙후된 도시 개발이 관건
구시가지 중심 재개발·재건축 추진해야
그렇다면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송 소장은 “지금이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는 저출산, 고령화, 고용불안, 금리 인상 등 여러 가지 변수로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구입만 하면 집값이 상승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동산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이용’의 개념으로 봐야 해요. 집값이 올랐다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계속 쥐고 있지 말고, 얼른 집을 팔고 다른 자산으로 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송 소장은 부동산 개발에 있어서는 구시가지 개발을 통해 제 2의 새마을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신도시나 택지 개발을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도시가 오랜 시간을 거쳐 낙후되면 리노베이션을 해야 하잖아요. 1970년대 개발된 강남권을 손댈 게 아니라 60년도 더 된 낙후지역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북에 도시정비지역으로 지정해 놓은 곳들이 있잖아요. 가령 서울 안암동에 위치한 고려대 일대는 조선시가지계획령(1934년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위해 마련된 최초의 법적 근거)에 의한 주거지역입니다. 열악한 단독주택이 많고 주변 분위기가 험악해요. 고려대와 서울시가 손잡고 일대의 소유주들에게 땅에 대한 권리를 사서 주택을 재개발하고 기숙사로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 근방이 아니더라도 지하철이 직통으로 연결되는 지역을 개발하면 강북의 재개발지역 문제가 해소되고, 대학생들에게도 안전한 주거공간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일본대학 내에는 기숙사가 없어요. 민간 사업자와 연계해 외부에 주거 공간을 마련하는 사업이 활발합니다.”
송 소장은 “부동산 정책만큼은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시장의 논리대로 돌아가도록 풀어줘야 한다”며 “재개발 사업 시 부과되는 세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주거의 질을 높이고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동산 연구 日 보다 앞서지만
정책연결은 미흡해,
근거없는 전망보다
분석통한 정보를 이용했으면
각종 정책보고서·연구자료 정책 입안에 활용해야
송 소장은 “일본이 부동산 정책 입안 시 정책 연구소 등 각종 연구기관의 연구자료를 종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라고 했다.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의 부동산 연구 집단이 부족한 점이 없습니다.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일본보다도 많고, 연구인력 역시 우수해요. 그런데 일본은 정책 연구소의 연구자료를 잘 적용해 정책을 만드는 데 상대적으로 한국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언론과 그쪽 업계의 흐름에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어요.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근거 없는 전망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나온 연구소의 정책보고서를 정책 입안에 많이 활용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의 지적처럼 한국에는 국토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부동산연구원뿐 아니라 각종 경제정책 연구소 등 부동산 연구기관이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습니다. 토지대장을 떼면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데이터가 나오고, 감정평가협회에서는 임대료에 대한 조사도 하고 있어요. 국토교통부에서 거래에 대한 각종 통계도 내고 있죠.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는 데 활용할 데이터가 많은데, 실질적으로 반영된 정책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보다 발전한 IT시스템을 통해 풍부한 데이터를 활용해야 합니다.”
송 소장은 또 “부동산 등락에 따라 부동산 정책 변화가 빠른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조치를 취하는 점은 우리나라의 장점이라고 봅니다. 일본은 정책 대응이나 적용이 너무 늦어서 탈이죠. 근데 반대로 너무 빠르다는 게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정책을 수시로 바꾸는 게 적시에 맞을 때가 있고 안 맞을 때가 있는 거죠. 시장 정상화 조치를 위한 연구는 활발히 하되 시장의 흐름을 좀더 지켜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1970년 강남(영동지구) 개발을 위해 서울시장이 발표한 ‘남서울개발계획’으로 강남 지역의 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기회가 있다면 부동산 투자를 재산 증식에 이용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송 소장은 “시대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돈을 억지로 빌려서까지 토지에 투자하고 땅값이 계속해서 올라 떼돈을 버는 ‘부동산 불패신화 시대’는 갔습니다. 집을 살 때 지금 집을 사려는 이유가 ‘우리 가족의 화목과 행복, 거주의 질을 누리기 위함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물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