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 논설위원‘웨이터 룰’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최고경영자(CEO)들이
사업 파트너를 택하거나 인재를 뽑을 때 흔히 금과옥조로 삼는 준칙(準則)을 말한다. 평판이나 이력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울 경우 그 사람과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면서 웨이터나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찬찬히 살펴본 뒤 판단하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함부로 하면 ‘부적격’ 판정이 내려짐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는 ‘캐디 룰’이 있다. 경영자들이 골프장에서 동반 라운드를 하면서 상대방이 캐디를 어떻게 대하느냐를 뜯어 보며 생각을 다듬는 방법이다. 이 룰을 애용하는 CEO들은,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마다 캐디에게 괜스레 화를 내는 사람은 매사 즉흥적·감정적이고 인내심이 없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여긴다. 캐디에게 치근대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경망스럽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망신당한 유명 인사도 있다.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얼마 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감정노동자가 대상인 이들 두 법칙에 깔린 함의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는 점이다. 자신이 갑 위치에 있을 때 을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어떤 일을 같이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다는 게 이들 룰의 ‘이론적’(?) 토대다.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의 한 길 마음속 끄트머리 하나라도 잡아보려는 우회적 ‘사람 감별법’인 셈이다.
32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제주공항에 사흘간 갇혀 있던 10만 명 가까운 관광객들이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 ‘제주 엑소더스’ 관전평은 두 갈래다. 하나는 ‘공항공사 측과 지방자치단체의 한심한 대응과 저가 항공사의 저질 서비스가 화를 더 키웠다’, 또 하나는 ‘중국 관광객과 달리 우리 시민의식은 무난했다’이다. 하지만 지인들의 현장 목격담을 들어 보면 옥에 ‘비교적 큰’ 티가 있었다. 분통이 치민 나머지 항공사 카운터 앞에서 직원들에게 욕설을 쏟아내며 거칠게 항의하는 ‘진상
고객’이 제법 있었다. 불가항력적 천재지변인데도 피해를 보상해 달라고 떼쓰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항공기가 결항했거나 출발이 지연됐을 때 해외나 국내 어느 공항에서도 볼 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러다간 ‘에어포트 룰’(airport rul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