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을 마무리하는 참전국 간의 평화협정 체결은 이론상으로 제네바회담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네바회담은 한국 및 유엔군참여국가 15개국(남아프리카공화국 제외)과 공산 측에서 소련 중국 북한 3개국, 모두 19개국이 참가했다. 하지만 양측의 견해차가 워낙 커 2개월 만에 결렬됐다. 참전국 대부분의 참석 아래 개최한 6·25전쟁 평화회담을 북한은 지금 북-미 두 나라만으로 개최하자는 것이다.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다음 달인 8월 28일 유엔총회는 한반도에 독립된 통일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 유엔의 목표임을 재확인하면서 휴전협정을 승인하고, 협정에 규정된 고위정치회담의 실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하지만 양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로 인해 회담은 결렬됐다. 그러자 유엔 참전 16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공산 측의 제안이 유엔의 헌장과 원칙을 백지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장차 한국 문제의 해결은 유엔의 원칙과 결의에 바탕을 두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평화협정의 원래 취지는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으로 정전 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교전 당사국 간에 평화체제를 보장하자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평화협정(또는 강화조약) 체결 없이 바로 국교를 정상화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평화협정 공세를 벌이기 시작한 것은 냉전시기인 1970년대 초였다. 주한미군 철수가 최대 목표였다. 북한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전략을 쓰려 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이런 냉전전략에 동조하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그들이 6·25전쟁을 도발하고 지원한 데 원인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