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0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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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갑신정변의 주연 배우는 김옥균(金玉均·1851~1894)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원세개(袁世凱·1859~1916)와 일본공사였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1841~1917)의 '수읽기'가 있었다. 정변 당시 김옥균은 만으로 33세, 원세개는 25세, 다케조에는 43세였다. 원세개가 불과 25세의 나이였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고 한탄스럽기도 하다. 스물다섯 살 먹은 어린애(?)의 손에 조선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다케조에는 책상물림이었다. 원세개의 공격이 개시되자 겁을 먹고 창덕궁의 수비를피를 묻히며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난세에서는 중년의 신중함이 우유부단한 실기(失機)가 되어 버리고, 20대의 철없는 혈기가 오히려 과단성 있는 판단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43세의 다케조에는 정변의 지휘부를 수비하기가 좋은 경우궁(景祐宮)에서 수비하기 어려운 창덕궁으로 옮긴 판단 착오가 있었다. 10·26 직후 긴박한 상황에서 김재규가 남산 중앙정보부로 가지 않고 육군본부로 향했던 사례가 생각난다. 반면에 원세개는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전격적으로 병력을 동원하여 개화파의 창덕궁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원세개의 상관이었던 오조유(吳兆有)는 창덕궁 공격을 미적거렸다. 이홍장의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었지만 원세개는 '그러다가 세월 다 지나간다'며 기습 공격을 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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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갑신정변 진압한 원세개,
"사드 1시간내 폭격" 내뱉은 추궈홍
이거 쉬운 판단 아니다. 목숨 걸어야 한다. 담당하던 일본군 150명을 철수시켜 버렸다. 나중에 도쿄대 한학(漢學) 교수를 하면서 다케조에는 두고두고 곱씹었다. '새파란 어린애 원세개에게 당했다.' 원세개는 하남성 출신이다. 과거에 두 번이나 낙방하고 책을 읽는 일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러나 무재(武才)가 있었다. 그 무재는 갑신정변의 과단성으로 나타났다. 갑신정변 진압의 성공으로 이홍장의 신임을 얻었고 북양군의 총책임자가 된다. 나중에는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라간다. 조조와 같은 난세의 간웅 반열에 올랐다.
중국대사 추궈훙(邱國洪)이 사드 배치에 대해 '1시간이면 폭격할 수 있다'고 거침없이 내뱉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식자층은 원세개를 떠올렸다. 추궈훙도 앞으로 승진하는 것일까? 미국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