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대통령에 국회해산권 있어야"

화이트보스 2016. 3. 30. 19:15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대통령에 국회해산권 있어야"

"다당제 실현을 통한 이원정부제가 바람직"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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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계의 원로 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조선DB

김철수(金哲洙83) 서울대 명예교수는 헌법(憲法) 학계의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은 존재다. 대한민국에서 법학(法學)을 공부한 사람치고 ‘김철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가 없으며, “그의 헌법학을 보지 않고 고시에 붙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회자(膾炙) 된 지 오래다. 평생 후진 양성에 힘써 온 김 교수는 은퇴 후에는 참된 원로(元老)의 길이 어떤 것인지 실천해 왔다.

그는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칼럼과 언론 기고문, 인터뷰 등을 통해 ‘쓴소리’ ‘바른소리’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최근 지난 십여년 간 언론에 기고해 왔던 시사평론과 기초연구 논문 등을 묶어서 《헌법과 법률이 지배하는 사회》(진원사)라는 책을 펴냈다.
 
언론 기고문을 엮었다고 해서 내용이 딱딱하거나, 한물간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이다. 김 교수는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듯이 모든 논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한 권의 ‘민주주의 교과서’처럼 구성했다. 딱딱한 법률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라,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정치현장에서 벌어진 수많은 이슈와 살아 있는 사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헌법과 법률,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한 것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평생 법치주의 실천을 위해 몸바쳐 온 원로 학자의 정치 발전을 바라는 진심 어린 애정이 묻어난다.
 
김 교수는 이 책의 발간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치개혁과 국정운영은 정치인의 독점 영역이 아니고, 주권자인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갖고 정치인, 공무원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개혁을 선도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상식이 필요하다.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을 바로 행사하여 이들 종복(從僕)들을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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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교수의 신간 《헌법과 법률이 지배하는 사회》
"국회선진화법은 '야당결재법'"
 
언론은 벌써 19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로 평가하고 있다. 19대 국회는 ‘식물국회’ ‘불임국회’라는 오명(汚名)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김 교수는 “여야(與野)의 극한 대립으로 안보(安保)는 뒷전이고 정치권이 노사(勞使) 간, 이념 간, 세대 간의 대립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며 “20대 국회의원 선거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런 후진적인 정치현실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헌정(憲政)의 길잡이가 되는 책을 엮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헌법과 입헌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의 대통령, 정부,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정당, 선거, 법질서와 통일 등에 대해 지난 10여년 간 벌어진 우리 현실정치의 이슈와 결부시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김철수 교수를 직접 만나 법치주의와 우리의 정치현실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교수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소위 말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은 지난 18대 국회 마지막 때 통과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의 선의(善意)를 믿고 만든 법인데 지난 4년간 보았듯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식물국회’로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국회는 다수당이 책임을 지는 대의(代議)기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선진화법은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법률 하나 통과시킬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반민주화법이고, 반책임정치법입니다.”
 
-이 법을 개정하고 싶어도 소수당이 찬성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야당의 의사를 존중할 수는 있으나, 소수당에 입법 결재권을 주는 나라는 없습니다. 어느 언론은 이 법을 ‘야당결재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아주 절묘한 작명입니다. 수많은 언론인, 정치인, 학자가 5분의 3 가중의결 정족수 제도는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에 폐지하거나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여당은 지난 1월 11일 선진화법을 일부라도 고치자며 의장의 직권상정 사유에 ‘국회의원 과반수’가 요구할 때는 가능하다는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의장 직권상정의 범위를 좀 넓혀서 숨통이라도 트이게 하자는 것인데, 야당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헌재(憲裁)가 ‘19대 국회의원 임기 말까지 이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저는 헌재 결정에 앞서 19대 국회가 먼저 이 법의 전부를 폐지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공직자는 선서 이후부터 자격 생겨"
 
김 교수는 “민주정치라는 것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다수가 정치를 하고, 책임을 지는 다수결의 원칙이 작동하는 제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수당이 책임을 질 수 없는 정치는 다수결에 위반되며 민주정치 자체에 위반됩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민 다수가 지지해서 다수당을 만들어주었는데도 야당이 반대하면 아무 법률도 못 만들게 한 민주주의에 반하는 법률입니다. 이는 결국 대통령의 국가 통치행위를 마비시키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국회의석의 40%만 가지면 법률제정을 마음대로 거부하게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제한해 놓았습니다. 이는 ‘신종입법독재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위헌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상임위원회(常任委員會) 의장직을 여야가 나누어 차지하는 것도 위헌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상임위원장직을 여야가 나누어 가지는 것은 독일 같은 연립정부제를 채택한 나라 외에는 없습니다. 대통령 책임제 국가에서는 의석이 한 석이라도 많으면 상임위원장직을 독점합니다. 그래야 국정을 책임진 다수당이 책임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도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임위원장직을 여야가 나누어 갖게 된 것은 1987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입니다. 당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되면서 국정이 마비되자 국회운영을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야당과 위원장직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 후로 관례라며 그렇게 해 오고 있는데 법률적인 근거도 없고, 대통령제에 위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즉시 시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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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오후 제 19대 국회 개원식이 열린 가운데 의원들이 국회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조선DB

-우리는 그동안 공직자의 취임선서에 대해서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하나의 요식행위라고 생각해 온 경향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취임선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19대 국회가 개원일을 한참 넘기고도 개원을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여야당이 일을 하지 않고도 세비(歲費)를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개원(開院)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세비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공무원의 취임은 취임선서와 동시에 시작됩니다.
 
대통령도 선거에 의해 취임하는 게 아니라 취임선서를 해야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임선서는 국회의원 자격의 출발선입니다. 대한민국헌법과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선서를 하지 않고, 세비를 받아 온 것이 관례라고 하겠지만, 이는 헌법과 법률에 어긋남으로 반드시 폐지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국회의원이 국회 개원에서 선서를 거부하거나 속임수로 선서한 의원이 선서를 준수하지 않으면 자격심사의 대상이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회법의 선서 내용인 ‘헌법준수, 국민의 복리 증진, 평화적 통일’에 반대해 선서를 거부하는 당선자나, 선서 후 이 내용에 반대하는 의원은 국회의원 자격이 없습니다. 현재 국회의원 퇴출방법은 자격심사와 제명 두 가지가 있는데, 선서를 위반해 헌법을 파괴하고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사람은 애당초 국회의원 자격이 없기 때문에 국회는 국회가 가진 자격심사권을 엄중히 적용해서 무적격자를 가려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소속의원의 자격을 박탈한 이유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무법과 불법이 판치고 사기가 증가하는 이유
 
-교수님께서는 좌파정부 출범 후 언론 기고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기본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많이 우려하셨습니다.
 
“맞습니다. 특히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이후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지 않으려는 아노미 현상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어 무척 우려됩니다. 특히 당시 대통령이 나서서 헌법을 모욕하고, 공직자들은 헌법과 법률 위반을 방치했습니다. 이후 한국은 갈수록 무질서와 불법, 탈법 행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에 최고 높은 교통사고율, 고소고발률, 최고의 소송제기율,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법천지의 집회 시위, 초강경의 노동쟁의, 공무원부패와 불법적인 정치행위가 만연합니다. 타인에 대한 욕설과 거짓말,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인격 살인을 하고 따돌림도 심각합니다. 국민의 대표자로 입법활동을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거리에 나와서 폭력시위를 조장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1988년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의 이념인 자유평등평화를 잘못 이해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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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서울광장을 비롯한 도심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인 반정부 집회가 열린 가운데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시위대들이 밧줄을 이용해 차벽 대열에 있던 경찰 버스를 끌어내고 있다./조선DB

-우리나라에 이처럼 무법과 무질서가 판을 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가장 먼저 법의 권위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경관이나 공무원, 수사와 공소를 맡고 있는 검찰의 권위가 엄정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둘째는 엄정한 법 집행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귀찮다고 시위 현장의 범법자를 검거하지 않거나, 검거해도 훈방하는 일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원의 온정주의 양형(量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간집회, 허위사실 유포, 상습시위꾼 등에 대해 툭하면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1심에서 중형을 받아도 2심에서 감형을 해주니, 항고가 필수적 절차가 되었습니다. 판사 중에는 법정 최저형만 선고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해서는 형벌의 예방적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특별법을 만들어 법정형을 올리는데, 결국 온정주의 판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국민이 기본 법질서 지키기부터 생활화 해하겠군요.
 
“맞습니다. 국민의 법의식을 높이고, 공권력의 권위를 찾아 법집행을 공정 무사하게 해야 합니다. 당연히 신상필벌이 확실해야 하고요. 우리 국민들이 ‘국민주권’과 ‘자유’라는 개념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권자가 국민이라고 할 때 국민 개개인이 주권자가 아니라, 전체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법은 국민의 대표자가 국민을 위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합니다. 정치권은 우리 현실이 남북이 대치하는 엄중한 안보 상황 속에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헌법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정권도 국민이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해 정권을 위임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슨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하라고, 특정 정당을 지지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판사들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생각해야"
 
김 교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전체 국민의 공공복리가 더 중요한데 이를 모르는 공무원과 검사, 판사들이 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를 방종이라고 생각하는데 헌법은 자유와 권리도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 있게’하고 있습니다. 국가나 사회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민의 권리도 빈말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판사가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것을 개인의 양심과 재량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법관이라는 직분에 대한 양심과 법률에 대한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관의 양형은 법에 따라 매우 엄중해야 합니다. 양심에 따른 판결이 마음대로 형량을 선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례로 요즘 사형선고를 회피하는 법관들이 많은데 형벌의 목적이 교육하여 재사회하는 데 있다고는 하지만, 교육이 불가능한 위험범에까지 교육형을 선고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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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0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다세대주택에서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살해한 서진환이 2012년 8월24일 오전 사건 발생현장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서진환은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조선DB

-사형을 선고해 봐야 어차피 집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형을 회피하는 판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굳이 원성을 살 필요가 없다고 하여 온정주의적 판결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인륜적인 극악범에 대한 사형은 필요악(必要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형제도의 존치 문제가 학문적 논쟁의 요소이기는 하지만, 실제에는 이를 사회의 안전보장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현행 헌법과 법률이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합헌성을 인정하고, 국민의 70%가 사형에 찬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관들이 사형선고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국회는 사형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정치범이나 양심수에 대한 사형제도는 폐지하되, 극악무도한 사형수의 집행은 독려하고, 정부나 법원 검찰이 사형제도를 적절히 운용하고 있는지 감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법론으로는 사형을 폐지하는 것은 좋겠습니다만 이 경우 200년형, 300년형으로 하여 감형하더라도 석방은 될 수 없게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형수의 행형(行刑)은 보다 엄중해야 합니다. 판사들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인권도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김 교수는 “법관의 신분 보장은 법관이 좋은 판사로서 직분을 다하고 있을 때에만 한정되는 것”이라며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고, 편향적인 판결을 일삼고, 법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경우 법관의 신분을 보장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제3의 중도정당 탄생을 위한 환경 마련해야"
 
-이제는 개헌(改憲)을 이야기할 때 아닌지요.
 
“이제는 해야죠. 대통령제에서는 야당이 다수로 국회를 지배하는 경우 국정이 마비됩니다. 국회가 개헌논의를 할 때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통일국방국민통합 문제를 담당하고, 내정(內政)은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이원(二元) 정부 형태를 함께 논의했으면 합니다. 내치에 있어서는 국회와 내각이 정권을 공동책임 지게 하는 것이죠. 다만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은 국민이 직선(直選)하도록 하여 국민의 확고한 지지를 받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외치가 분리되면 유사시에 국력 결집에 혼선이 오지 않을까요.
 
“이원정부제를 하면 대통령은 국회해산권을 가지고, 의회는 내각 불신임권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견제와 균형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국군통수권, 계엄권, 국회해산권, 중요공무원 임명권을 주면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이나 계엄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위기에서는 대통령제적으로 운영되어 국력결집에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이원정부제가 제대로 되려면 다당제(多黨制)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협상과 타협을 강조하는 제3정당을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형태와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선거 때마다 기존의 여야(與野) 정당 외에 다른 정당이 출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대통령제 정치현실에서 제3의 정당 출연이 쉽지 않습니다. 출현한다고 해도 ‘사꾸라’라고 비판되어 제3당은 결국 여야의 큰 정당에 흡수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대통령제는 결국 승자독식과 2대 정당제로 운영되기 쉽습니다. 문제는 양대 정당하에서는 야당이 차기에 집권을 하려면 대통령이 집권하는 정당을 때려 부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권당에 협조할수록 오히려 집권기회가 멀어지기 때문에 결국은 결사항쟁과 발목 잡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사생결단식의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서 대통령제 아닌 의원내각제나 이원정부제를 하여 다당제를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3당이 극우(極右)나 극좌(極左)를 배격하고 중도(中道) 정책을 추구하면서 제1당이나, 제2당과 정책연합을 통해 연합정권을 형성하면 극단적인 정책을 회피하는 민주정치가 발달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새 헌법 하에서의 선거제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선거제도는 국가마다 달라서 몇 백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토론과 타협을 중시하고 극단에 흐르지 않는 중용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인물과 정당에 대한 투표를 하여 비례대표제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이념과 정책을 가진 국민이 자기 마음에 드는 인물과 정당을 선택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독일식인 인물투표와 정당투표를 하여 정당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정당이 여러 개 생길 것이고, 국민들이 많이 투표한 온건보수중간파온건진보 정당들이 서로 연립을 하여 정권을 운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국회에 6개 정도의 정당이 존재하는데 이제까지 주로 온건보수와 중도파가 연립정권을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온건보수와 온건진보의 대정당이 대연정을 하여 어느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선거 후에 연립계약을 작성하여 정책의 방향에 타협하고 있어 4년은 정치가 안정되어 있습니다. 의원내각제이고 다당제이기는 하지만 정권은 안정되어 총리가 10년 이상 재직하여 정국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김 교수는 “그 어떤 경우라도 헌법개정의 목적이 정치인 국회의원의 권한 강화여서는 안 되며 국가의 안전보장과 통일실현, 국민행복 증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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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8월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애국단체총협의회 등 보수단체들이 '대한민국 건국 67주년 기념 국민대회'를 열고 건국절 제정을 촉구하며 북한의 군사도발 등에 대해 규탄했다. 참가자들이 건국절 제정을 촉구하며 '미래로!통일로!세계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선DB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일이 될 수는 없어"
 
-새삼스럽게 건국일(建國日)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헌법학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1919년의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삼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나뉘고 있습니다. 상해임시정부 건국일을 들고 나온 사람들은 주로 진보 세력인데 그들은 현재의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며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정통성이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건국의 주역으로 김구(金九)를 내세우고, 이승만(李承晩)을 분단의 원흉으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정통국가이고 북한 정권은 UN의 결의를 따르지 않고 소련의 지시에 따라 세워졌기 때문에 법적 정통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고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주장하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 되는지요.
 
“이념적 정통성으로 볼 때 우리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론(國家論)에 입각하여 실질적 건국으로 인정하려면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영토가 있어야 하고, 국민이 있어야 하고, 주권이 있어야 하는데 임시정부는 이 중에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망명정부였습니다. 엄격하게 보자면 망명정부라고 하기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임시정부는 대동단결하지 못하여 국제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고, 국민들의 실질적인 동의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전후(戰後)에 국제적 승인을 받아 통치행위를 한 프랑스 드골 망명정부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이 중경(重慶)의 임시정부를 지원하지 않았나요.
 
“안타깝게도 중경 임시정부는 정부로서 승인을 얻지 못했고, 광복군이 참전하지 못해서 망명정부로서 무게를 갖지 못했습니다. 환국(還國) 후에는 임정의 법통을 살려 미군정에게 행정권 이양을 요청했지만, 미군정뿐 아니라 미 본국으로부터도 승인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국제법으로 국가로 인정이 안 되고, 국내법적으로도 국가의 구성요소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망명정부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국가의 건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파 쪽은 상해임시정부 건국설에 대해 ‘결국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하기 위한 맥락에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설사 좌파들이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한다고 해도 이승만과 상해임시정부의 연결고리까지 끊을 수는 없습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해서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북한의 초대 내각은 민족반역자와 친일파를 많이 기용했지만, 이승만 정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제하에 일하던 공무원들을 건국 과정에서 참여시키기는 했지만, 그 자체를 놓고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식으로 매도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더구나 당시 공산당과 진보세력이 극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90%가 자유롭게 투표에 참여하여 건국을 이루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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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식.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가 넘치는 새 나라 건설을 다짐했다./조선DB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가 아니다"
 
-좌파들은 분단의 책임까지 이승만 대통령에게 덮어씌우고 있고, 이를 국사교과서를 통해 교묘하게 학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는데요.
 
“명백한 것은 김일성이 대한민국 건국 2년 전에 이미 소련의 지시에 따라 우파인사를 숙청하고, 인민위원회를 만들고 실질적인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일당(一黨) 독재국가를 건설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행정권이양 요청을 거부하고 협력하지 않았으니 임정(臨政)의 법통성 계승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미소(美蘇) 공동위의 합의에 따른 것도 아니고, 유엔 결의에 위반하여 1948년 8월에 부정선거를 통해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웠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형식적인 것이고, 정통성을 상실했고, 주요 국가의 승인도 얻지 못했음으로 불법정부라 하겠습니다.”
 
-많은 젊은들이가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북한은 오히려 초대 내각에 친일파를 많이 등용했지만, 우리는 헌법에 임정의 정신을 계승하기로 했고, 임정요인이 국회의장, 부통령, 국무총리, 장관으로 취임했습니다. 1950년 530 선거에서는 단선단정(단독선거 단독정부)이라고 반대했던 정치인들까지 대거 선거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수립이 역사적 대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남북 대치나 긴장, 625가 없었으면 친일파 숙청과 민족정기 부활이 더욱 철저하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친일파 척결을 잘하지 못한 근본 이유는 긴장을 고조하고, 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자들을 막기 위하여 일제의 경관이나 공무원을 쓰게 되었기에 그들의 죄책이 더 크다 하겠습니다.”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해 주시면요.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여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고, 일본 어부를 체포하여 한국영토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좌파들 주장처럼 소위 ‘미국의 주구’ 노릇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항일독립투쟁을 했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닌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더구나 단독정부라도 만들어서 북한과 소련이 기획한 남북한 공산화를 막았던 것은 그가 당시 냉전의 방향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또 625 남침 이후에 미국과 유엔에 요청하여 나라를 지켰으며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한미(韓美)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등 외교에는 천재적이었지만 내정에는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가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이승만이 625 이전에 농지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농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라를 지켰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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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통일을 대비한 개헌 필요
 
-개헌을 하더라도 통일을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통일은 우리 헌법의 지상명령입니다. 북한은 무력통일을 획책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서독식인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도리도 법률도 모르고 핵무기로 장난을 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우리는 북한인권법을 만들어 북한인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내부적으로 북한이 민주화되어 시민혁명으로 통일의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핵무기 폐기와 세계로의 개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책에서 통일 후의 독일의 발전을 소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통일 이후의 헌법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통일한국은 민주적 기본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복지국가가 되어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통일과 같은 방법이 이상적인데 북한이 흡수통일이라 하여 결사반대하고 있어 문제가 많습니다. 북한이 민주화되고 법률과 계약을 지킬 줄 알아야 진정한 통일이 되겠는 데 걱정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중국처럼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채택한다면 우선 국가연합을 하여 동질성을 회복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이룬 뒤에 연방제로 통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 내에서 이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여 흡수통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북한에 돌발사태가 있거나 시민혁명이 있는 경우에 통일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통일비용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통일의 이득이 훨씬 많을 것이기에 통일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국민 모두가 동포인 북한주민을 노예상태와 기아상태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평화적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헌신하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