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안의 슈퍼컴퓨터(스마트폰)가 등장한 지 10년째인 올해 초 또 다른 도술을 보았다. 알파고다. 혜성처럼 등장한 인공지능(AI)은 세계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을 무너뜨렸다. 학습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이 ‘신기(神器)’는 변신술까지 부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소설가, 의사, 회계사 등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니 현대의 손오공이나 마찬가지다.
변수가 무한에 가까워 최고의 응용 술수학(術數學)으로 꼽히는 풍수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풍수를 습득하려면 두 가지 유파를 섭렵해야 한다. 풍수학 이론이 크게 형세파(形勢派)와 이기파(理氣派)로 나뉘기 때문이다. 형세파는 산세, 지형, 물줄기, 모양 등 주변의 형세를 살펴 길지(吉地)를 찾는다. 이기파는 주로 사방팔방의 방위를 따져 길한 곳을 가려낸다. 방위에 길흉(吉凶)이 스며 있다고 여긴다.
먼저 인공지능은 형세파 풍수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빅데이터를 쉽게 축적할 수 있다. 답산가, 만산도, 명당도 등의 이름으로 명당 그림은 널려 있다. 명당으로 알려진 왕릉 등 묘지와 명문 고택들도 실물 형태로 각지에 산재한다. 중국과 일본의 풍수 명당까지 보탠다면 인공지능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빅데이터와 위성사진을 통해 길한 터를 정교하게 짚어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형세파 풍수 중 산 모양을 짐승이나 사람 형체에 비유해 명당을 찾는 물형론(物形論)은 인공지능의 뛰어난 판독 능력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기파 풍수는 더 쉽다. 주역 팔괘, 북두칠성, 음양오행 등을 이용해 길한 방위를 찾아내는 이기파에는 그 나름의 법칙과 규칙성이 있다. 인공지능이 이를 익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지금도 프로그램만 정밀하게 짜면 주택의 최적 위치와 방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풍수 인테리어 비법을 단 몇 초 만에 제시할 수 있다.
생기를 인공지능이 찾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로서는 기를 과학적, 객관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수단도, 데이터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풍수인 입장에서 생기는 실재하는 에너지이자 기운(氣運) 덩어리다. 호흡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기를 감지하듯, 오감(五感)을 통해 생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풍수인도 더러 있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생기는 방향과 크기라는 벡터(vector)의 성질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천기(天氣),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지기(地氣), 수평 혹은 사선으로 흐르는 기 등 운동성을 보인다. 힘의 세기인 밀도도 상태에 따라 제각각이다.
알파고의 등장을 계기로 나는 풍수와 인공지능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혈압, 심박수, 감정 상태, 피로도 등을 데이터로 축적해주는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기기로 생기 터와 수맥, 살기 등의 흉당 터에서 생체리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해 보고 있다. 건강정보를 토대로 좋은 터를 찾는 빅데이터가 쌓이면 ‘풍수대가 알파고’가 태어날 수도 있다. 풍수인의 밥줄이 끊어질지 모르겠지만 누구도 호기심까지 막을 수는 없다. 알파고도 호기심의 산물 아닌가.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