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장은 늘 그랬듯 “아직은 괜찮다”다. 흘러간 레코드판을 틀듯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들이대는 것도 같다. 지난해 OECD 국가채무 평균은 115.2%다. 이에 비하면 아직 양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디 단순 비교할 사항인가. 이들 국가 상당수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기축통화국이거나 유로존의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처럼 이제 막 복지를 시작하는 나라가 아니다. 되레 복지 구조조정 단계에 들어선 ‘복지 성숙국’들이다. 복지 수요가 급증하게 돼 있는 데다 저출산·고령화로 재정 적자가 고착화하는 우리와는 애초 비교불가다.
그나마 두 가지 긍정적인 신호가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세수가 늘어나 세계잉여금이 2011년 이후 4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더 고무적인 것은 그동안 매년 50조~60조원씩 늘어나던 연금충당부채 규모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금충당 부채는 16조3000억원 늘었는데 이는 2014년(47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수급자 연금액을 동결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등 반쪽짜리지만 공무원 연금 개혁이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DA 300
지난해 국가부채 1284조원 중 연금을 갚기 위한 충당부채는 659조9000억원(51.1%)으로 절반을 넘는다. 늘어난 규모는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이 각각 약 8조원, 8조3000억원으로 비슷했다. 군인연금의 규모는 공무원 연금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쏟아 부어야 할 국민 세금은 같아진 것이다. 반쪽이라도 개혁했던 공무원 연금과 전혀 개혁이 없었던 군인 연금의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 결과다. 고령화와 맞물려 연금 부채는 앞으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 공무원·군인 연금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고는 나랏빚을 줄일 수 없다는 얘기다.
나라 살림은 이렇게 어려워지는데 4·13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여전히 ‘돈 드는 공약’에 여념이 없다. 공약 실천에만 더불어민주당은 119조원, 새누리당 56조원, 국민의당은 37조원이 든다. 그나마 보수적으로 따진 것이고 복지공약 42개 중 절반이 넘는 26개는 돈이 얼마나 들지 추산조차 안 된다고 한다.
나라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연금을 개혁하고 정부가 아껴 쓰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어떻게 곳간을 채울지 지금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당은 ‘증세 없는 복지’의 동굴에서 걸어 나와야 하며 야당은 부자 증세의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