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씨의 직함은 인천 동방초등학교 ‘탈북학생 전담 코디네이터’다. 수시로 최 씨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리코더를 가져오라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요?” “파일 속지를 준비해 오라는데 뭔지 모르겠어요.” 가정통신문을 받아든 탈북학생 엄마들이 가슴을 탁탁 치며 연락하면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도 최 씨의 업무 중 하나다.
이 밖에도 최 씨의 수첩에는 ‘1. 가정방문―부모에게 한국의 교육과정 및 학교에서 주로 쓰는 외래어 설명 2. 방과 후 학습지도 3. 학생 개인 상담 4. 학생들과 한국잡월드(청소년 종합직업체험관) 방문’ 등 그의 업무가 빼곡히 적혀 있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가정까지 찾아가며 이 학교 탈북학생 44명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2006년 사선을 함께 넘어온 아들(고진송 씨·21) 덕분에 얻은 직업이라 그런지 2013년 6월 이후 최 씨는 누가 직업을 물어볼 때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듯하다.
○ 친구 없는 탈북자 아들의 방황
이게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미 아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컴퓨터 게임을 못 하게 하려고 집에선 악을 쓰는 소리가 종일 들렸다. 컴퓨터를 숨겨버리자 오후 10시가 넘어 전화벨이 울리는 날이 잦아졌다. “여기 PC방인데 댁 아들이 낮부터 지금까지 계속 여기 있으니까, 어서 요금 내고 데려가요.”
PC방에 가보면 아들 자리엔 빵 봉지와 우유팩이 뒹굴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종일 게임에 몰두해 걱정이 된 주인이 준 것이라 했다. 입에선 긴 탄식이, 눈에선 한 줄기 눈물이 나왔다. 최 씨는 동네 PC방을 찾아다니며 “이렇게 생긴 아이가 오면 절대 받아주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이 돌아올 때 거실 시계는 여전히 자정 무렵을 가리켰다. ‘내년이면 너희도 고교 입시생’이란 말을 듣기 시작했을 때도 악순환이 계속됐다.
최 씨의 손가락이 힘겹게 ‘전문 치료병원’이란 곳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꼭 입원해야 하나요?” “좋아질 수 있는 거죠?”라는 질문이 전파를 타고 저 멀리 병원으로 건너갔다. 결국 ‘장기입원치료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철문이 쾅 닫히며 아이가 입원병동으로 들어간 순간 최 씨도 주저앉았다. ‘행복하려고 온 건데….’ 집에 돌아온 최 씨의 눈은 퉁퉁 부었다.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탈북학생은 2008년 966명에서 지난해 2475명으로 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학생의 학업중단율은 2.2%다. 2008년 10.8%보단 좋아졌지만 일반 학생의 학업중단율(0.8%)에 비하면 크게 높다.
아들은 다행히 두 달 뒤 다시 교복을 입었다. 무표정하게 가방만 메고 학교를 오가는 사이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 됐다. 아이의 표정을 바꾼 건 담임교사가 최 씨를 부른 날 이후였다. 담임교사는 “진송이를 예고에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고? 인생에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미술교사가 첫 달 치 학원비를 내줬고 이후부터는 학원에서 50%를 할인해 줬다. 엄마조차 몰랐던 재능을 알아봐 준 교사 덕분에 아들은 지난해 홍익대 회화과 합격증을 손에 쥐고 펄쩍펄쩍 뛰었다.
○ 아들 같은 아이들 없도록…

탈북 직후 최 씨의 경력을 들은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서 최 씨의 초등학교 교단 경력은 8년. 한 달 월급으로 고작 쌀 1∼2kg을 살 수 있었지만 출퇴근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다들 쳐다보는 게 일상이었다. 남한에 들어오기 직전 머릿속에선 ‘북한에선 상위 1%만 가는 대학을 졸업해 교사로 오래 일했으니 남한에서도 교단에 설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원을 나온 뒤 그의 손에는 생활정보지가 들려 있었고 눈은 ‘아파트 입주 청소 하실 분 구합니다’라는 공고만 찾고 있었다.
기회는 우연히 왔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코디네이터’라는 사람이 가정방문을 왔다. “저도 북한에서 선생님이었어요”라는 그의 말에 최 씨의 귀가 커지는 듯했다. 아들 같은 아이들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절차를 밟아 코디네이터가 된 뒤 최 씨의 이름이 적힌 자격증도 사회복지사 미술치료상담사 자살예방상담사 등 여러 개 생겼다. 아이들을 정말 열심히 돕겠다는 욕심에서였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최 씨 같은 탈북학생 전담 코디네이터는 현재 전국 21개 학교에 21명이 근무하고 있다. 모두 북한 교사 출신이다.
“코트 선생님.” “코치 선생님.” 탈북학생 엄마들은 외래어가 낯선 탓에 최 씨를 이렇게 부른다. 하지만 언제든 전화를 걸어 상담할 수 있는 최 씨가 있어 든든하다고 한다. 최 씨는 올해 3월 ‘탈북학생 교육지원 사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도 받았다. 최 씨의 꿈은 통일 후 ‘남북 통합교육’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천=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