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대북정책의 큰 그림을 보자. 우리는 좋은 통일과 비핵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이 중 하나를 포기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는 점진적·평화적 통일을 표방한다. 급진적·비평화적 통일은 남북 모두에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평화통일이 되더라도 그 과정이 급진적이라면 통일비용을 수천조원 쓰더라도 남북 주민 간 갈등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통일 이전에 북한 주민의 인적 자본 수준이 향상되고 그 가치관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친화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좋은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주민과 경제 수준이 통일되기 전에 이미 높아져 있어야 한다. 이는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북한 비핵화는 이제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다. 북한 핵 개발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진보정부가 문제를 키웠다면 미·중 외교로만 핵 도발을 억지하려는 보수정부의 정책은 문제 해결에 무력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 국면을 맞게 된 배경이다. 이제 핵 문제는 제쳐 두고 남북 관계부터 개선하자는 제안은 더 이상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그러나 남한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려 제재를 가하면 북한과의 갈등은 심화된다. 즉 좋은 통일과 북한 비핵화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려는 두 마리 토끼와 같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한 방향으로 나란히 뛰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철수라는 큰 대가를 치르면서 대북제재에 집중해 왔다. 대통령은 우간다와 몽골까지 가서 대북제재 동참을 요청했다. 미국은 행정명령, 자금 세탁 우려국 지정 등의 양자제재까지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제는 남한이 제재를 풀고 싶어도 북한의 변화가 없으면 풀기 어렵게 됐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할 수 없으며, 미국도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양자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다음 정부도 대북제재 일변도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대북제재가 성공해 북한 정권의 태도가 바뀌는 것이다. 그래야 비핵화와 남북 관계 정상화라는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결정 발표는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DA 300
중국의 대북제재 실효성 여부는 향후 수개월 내에 판가름 날 것이다. 그때 제재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다면 우리 안보를 위해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중국에 당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재의 실효성이 없는 데는 중국 책임이 크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내 여론을 설득하기도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 몇 개월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재에 역효과를 줄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하는 순간 동북 3성의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 행간을 읽고 북·중 교역과 투자로 바빠질 것이다. 사드를 몇 개월이라도 앞당겨 들여와야 하는 절박한 시급성이 없었다면 이 결정은 대북정책의 큰 그림과 디테일을 이해하지 못한 실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좋은 통일과 북한 비핵화의 교집합을 늘리고 이를 파고드는 정책을 펴야 한다.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북한의 경착륙 확률은 높아지고 좋은 통일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를 우려하는 중국이 대북제재를 희석시키고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 그러면 제재 효과도 사라지는 동시에 우리 주도의 통일은 더 어려워진다. 정치권도 사드 뒤에 숨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당은 좋은 통일과 비핵화를 어떻게 연결시킬지, 야당은 특히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정은을 만나 햄버거를 먹으면서 협상하겠다는 트럼프 수준의 이야기 말고 말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