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띠 가방 멘 울산 십리대숲 속의 박근혜 대통령

화이트보스 2016. 7. 31. 17:21

띠 가방 멘 울산 십리대숲 속의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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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여름 휴가 일정을 발표했을 때 나는 솔직히 많이 실망했었다. 대통령이 25일부터 닷새동안 청와대 경내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정연국 대변인이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실망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대통령의 휴가는 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북악산 밑 청와대 경내라는 발표에 너무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생활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고 재충전도 필요하다. 일부 사람들은 우병우 민정 수석의 비위 논란이 고조되고, 경북 성주군민이 땡볕에 사드 배치 결정 반대 시위를 하는데 대통령이 한가하게 휴가를 가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도 휴가를 가야 한다는 쪽이다. 다만 대통령의 휴가는 좀 특별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뭔가 유의미하고 메시지가 담긴 방식의 휴가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가족들과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휴가는 아니지만 아무리 국정이 바빠도 딸의 졸업식에 참석해 진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내가 실망했던 둘째 이유는 휴가 일정 발표를 보면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소통 노력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7월13일 김기현 울산 시장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기사는 7월19일자 중앙일보 사회면 톱기사로 보도됐다. 조선산업 불황과 구조조정으로 우울한 울산이 관광산업으로 활력을 찾겠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미국의 시애틀이 항공산업 불황 와중에 관광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으로 거듭난 것 처럼 말이다. 시애틀은 울산의 롤모델이다. 
  인터뷰 기사에는 판사 출신의 김기현 시장이 양복이 아니라 등산레저 차림으로 울산 태화강변의 십리대숲에서 힐링하는 듯한 파격적 표정으로 찍은 사진이 실렸다. 김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조선업 불황 타개의 일환으로 관광산업을 강조하면서 국민에게 여름휴가를 보낼 곳으로 심리대숲을 추천하셨다. 박 대통령께 이곳으로 휴가 오시라고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카톡을 수십번 보냈는데 아직 회신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김 시장에게 "직접 휴대폰으로 통화하시면 어떠냐"고 물었다. 김 시장은 "휴대폰 번호를 모른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정의화 19대 국회의장이 전화해도 안받는 것이 대통령 휴대폰이니 오죽하겠나 싶었다.

기자는 당시 인터뷰에서 김 시장의 말을 듣고 역시 청와대는 소통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한편으로는 이 인터뷰 기사를 통해 청와대의 소통이 진짜 어느 수준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반응이 있는지 살피기로 했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가 박 대통령이 올 여름에 청와대 경내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했을 때 내가 느낀 실망감은 좀 남달랐다. "역시나"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깜짝 반전이 있었다. 28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박 대통령이 울산 십리대숲 길을 걷는 사진이 올라온 사실을 발견했다. 지극히 개인적 소감이지만 작지만 진한 감동을 받았다. 사진 속의 박 대통령은 흰색 블라우스와 치마 차림이었다. 피서지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눈에 띄는 장면은 띠 있는 가방을 멘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볼 수 없는 모습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1급수로 깨끗해진 울산 태화강변의 대숲길을 걸으면 힐링을 받은 듯 밝아보였다.
  이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나는 아직은 작은 소통 가능성의 희망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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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올 여름 휴가는 29일 끝난다. 울산 십리대숲을 찾았지만 거제도 해금강을 가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움이다. 내년 여름에는 꼭 거제도 해금강을 여행하시길 권하고 싶다.
대통령의 휴가 동선은 중요하고 각별하다.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느냐에 따라 지친 국민에게 작지만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세정 중앙일보 내셔널 데스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