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조선왕릉을 가다③

화이트보스 2016. 8. 4. 15:26



조선왕릉을 가다③

숙부에게 끈질기게 자살을 강요당한 왕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고유의 유적이다. 
왕릉 개개의 완전성은 물론이고 한 시대의 왕조를 이끌었던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왕릉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가 있다.

  • 구성=뉴스큐레이션팀

입력 : 2016.08.04 08:18 | 수정 : 2016.08.04 08:24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고유의 유적이다. 왕릉 개개의 완전성은 물론이고 한 시대의 왕조를 이끌었던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왕릉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가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보존되어 있는 조선왕릉을 찾아 떠나보면 어떨까.
[조선왕릉을 가다 ①]남편이 왕이 된 지 8일 만에 쫓겨난 조강지처
[조선왕릉을 가다 ②]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조선의 왕
조선왕릉 분포도-수도권외
영릉

역대 군왕 중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의 '영릉(英陵)'
조선 제4대 왕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세종대왕은 1397년(태조 6) 음력 4월 10일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스물두살 되던 1418년(태종 18) 양녕대군이 폐세자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해 9월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 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영릉은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이자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무덤 배치는 『국조오례의』를 따랐다.

북벌을 국시로 내세운 효종의 '영릉(寧陵)'
17대 효종과 부인 인선왕후의 능이다. 효종은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636년의 병자호란으로 이듬해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8년간 있었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돌아와 1645년 갑자기 변사하자 세자에 책봉되어 1649년 왕위에 올랐다. 효종은 청나라에 대한 원한을 품고 북벌을 추진하였으나, 1659년 5월 4일 효종이 급서하며 북벌정책도 소멸하였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배치한 것이 아니라 아래위로 배치한 쌍릉 형식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 왕릉 중 최초의 형태인데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주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 산83-1 ㅣ 전화 (031) 885-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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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영월)

정치적 야심에 희생된 단종의 '장릉(영월)'
단종은 1441년(세종 23) 7월 23일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승하하면서 1452년 11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1453년 그를 보필하던 황보 인 ·김종서 등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제거당한 뒤, 1455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1456년 단종의 복위 시도가 실패하며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끈질기게 자살을 강요당하다가 1457년(세조 3) 10월에 영월에서 사사됐다.

주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ㅣ 전화 (033) 370-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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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릉

즉위 2년 만에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준 정조의 '후릉'
조선 제2대 왕 정종과 정안왕후의 쌍릉이다. 정종은 성품이 인자하고 용기와 지략이 뛰어나, 고려 때 아버지를 따라 많은 전공을 세웠다. 조선 개국 뒤 영안군에 책봉되었고, 제1차 왕자의 난이 수습된 뒤 1398년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즉위한 지 2년 만에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인덕궁에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1419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능인 공민왕릉을 모방하여 만든 능으로, 조선시대 왕릉의 특징도 두루 갖추고 있는데 특히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인 헌릉과 아주 유사하다.

주소 개성시 판문군 영정리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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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릉

조선 태조의 첫 아내 신의왕후의 '제릉'
조선 태조 이성계의 비 신의왕후 한씨의 능이다. 1351년 한씨 나이 15세때 당시 신분이 비슷한 17세의 이성계와 가례를 올리고 방우, 방과(정종), 방의, 방간, 방원(태종), 방연과 경신, 경선의 6남 2녀를 낳았다. 이성계가 정계의 1인자로 부상하기까지 고향에서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등 내조가 지대하였다. 신의왕후는 이성계가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 9월 12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소 황해북도 개풍군 대련기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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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화재청 조선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