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8.11 07:30

시위에 참가한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학 사명을 밤새워 토론하고 농성으로 이를 관철한 열정을 높이 사서가 아니다. 입학 정원을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정원을 늘리는 교육부의 한심한 행태를 가르쳐 주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학생들 시위가 학위 장사와 '쩐(錢)'의 늪에 빠진 한국 대학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새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이대 집행부 판단은 그르지 않았다. 140여 명을 정원 외로 받으니 등록금 수입이 늘어나 좋다. 이들 4년 등록금을 합치면 30억 재정 지원은 덤이다. 타 대학과 달리 학생 모집에 문제없다. 이대 간판이면 넘치고도 남는다. 정원 감축이라는 향후 대학 구조조정에도 신축적 대응이 가능하다. 정원 외로 받은 학생이 있어 걱정을 덜어준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한 사람들에게 최고 고등교육을 제공한다는 공명심도 생긴다. 이미 시작된 대학 구조 개혁이라는 광풍을 고려하면 선택 가능한 결정이었다.
엄친딸들 농성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 '이대가 이 정도라면 다른 대학은?'이라는 의문을 갖게 해 주었다. 특히 '서울 상대'들에게 말이다. 대학을 3개 군(群)으로 나눈다는 우스개가 있다. 서울에 있는 '서울대'와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서울 약대'와 상당히 떨어진 '서울 상대'가 그것이다. 필자의 대학은 맨 후자에 속한다고 한다. 이대 사태는 정부 재정 지원과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작금 '서울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한국 최고의 여성 고등교육 기관인 이대마저 이런데 '서울 상대'는 오죽하겠는가.
이대 집행부 판단은 그르지 않았다. 140여 명을 정원 외로 받으니 등록금 수입이 늘어나 좋다. 이들 4년 등록금을 합치면 30억 재정 지원은 덤이다. 타 대학과 달리 학생 모집에 문제없다. 이대 간판이면 넘치고도 남는다. 정원 감축이라는 향후 대학 구조조정에도 신축적 대응이 가능하다. 정원 외로 받은 학생이 있어 걱정을 덜어준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한 사람들에게 최고 고등교육을 제공한다는 공명심도 생긴다. 이미 시작된 대학 구조 개혁이라는 광풍을 고려하면 선택 가능한 결정이었다.
엄친딸들 농성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 '이대가 이 정도라면 다른 대학은?'이라는 의문을 갖게 해 주었다. 특히 '서울 상대'들에게 말이다. 대학을 3개 군(群)으로 나눈다는 우스개가 있다. 서울에 있는 '서울대'와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서울 약대'와 상당히 떨어진 '서울 상대'가 그것이다. 필자의 대학은 맨 후자에 속한다고 한다. 이대 사태는 정부 재정 지원과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작금 '서울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한국 최고의 여성 고등교육 기관인 이대마저 이런데 '서울 상대'는 오죽하겠는가.

'서울 상대' 여건은 실제로 열악하다. 지역 발전에 기여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건학(建學) 이념을 들먹이는 것은 사치다. 우수 인재의 서울 싹쓸이는 역사가 됐다. 학위 장사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했고 정부 재정 지원이 없으면 연명조차 힘든 대학이 많다. 대도시 소재 대학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중소 도시에 있는 대학들 처지는 안타깝다. 문제는 '서울 상대' 부실이 초래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대학 부실은 지역 경제 침체를 넘어 지역사회를 붕괴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어 그렇다.
'서울 상대'를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 지방에 강소(强小)형 대학을 여럿 만들어야 한다. 중소 도시에 있는 대학이면 안성맞춤이다. 그래야 젊은 인재들이 서울과 대도시로 몰리지 않고 지방에서 공부하고 취업해 지역사회를 일궈 갈 수 있다. 지역 청년과 인재를 붙잡는 데 대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검증됐다. 대학 구조 개혁에서 지방대에만 정부 재원을 쏟으라는 요구가 아니다. 청년들을 정주시켜 지방을 살릴 강소형 대학 육성의 해법을 이 과정에서 찾자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방에 괜찮은 대학이 다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된다. '서울 상대'들이 살아나야 지방이 살아난다.
'서울 상대' 앞길은 험난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을 수 없다. 이들 대학을 살리는 것이 지방 도시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묘책을 암시할 신선(神仙)과 접속을 위해 영험하다고 소문난 영암 월출산에라도 올라야겠다.
'서울 상대'를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 지방에 강소(强小)형 대학을 여럿 만들어야 한다. 중소 도시에 있는 대학이면 안성맞춤이다. 그래야 젊은 인재들이 서울과 대도시로 몰리지 않고 지방에서 공부하고 취업해 지역사회를 일궈 갈 수 있다. 지역 청년과 인재를 붙잡는 데 대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검증됐다. 대학 구조 개혁에서 지방대에만 정부 재원을 쏟으라는 요구가 아니다. 청년들을 정주시켜 지방을 살릴 강소형 대학 육성의 해법을 이 과정에서 찾자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방에 괜찮은 대학이 다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된다. '서울 상대'들이 살아나야 지방이 살아난다.
'서울 상대' 앞길은 험난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을 수 없다. 이들 대학을 살리는 것이 지방 도시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묘책을 암시할 신선(神仙)과 접속을 위해 영험하다고 소문난 영암 월출산에라도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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