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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꿈, 南柯一夢(남가일몽)이었나

화이트보스 2016. 8. 26. 16:17



김종인의 꿈, 南柯一夢(남가일몽)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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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뉴턴이 발견한 제1 법칙은 ‘관성(慣性)의 법칙’이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번 빠진 드라마를 끝까지 보거나 게임에 중독되는 현상도 이 법칙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속담이나 어른들의 경구를 보면 사람이나 집단의 속성이 바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맞는 얘기 같다. 어느 집단이든지 변화와 혁신을 얘기하지만 스스로 이를 이루기 어려운 것은 노력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대통령이 된 인물들은 나름대로 관성의 법칙을 이겨냈다. 노태우의 6·29 선언, 김영삼의 3당 합당, 김대중의 DJP 연합, 노무현의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 그리고 보수의 중도화라는 박 대통령의 ‘변화’ 키워드에 승리의 공식이 있다. 비록 짧은 민주주의 역사이지만 지금까지 형성된 국민의 정치적 경향은 변화하려는 사람, 관성을 부수려는 자의 손을 들어 준다고 볼 수 있다.

4·13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27일 새 지도부를 선출하고 그동안의 비상체제를 끝낸다. 지난 총선을 이끌었던 김종인 대표도 평당원으로 돌아간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의 연쇄 탈당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문재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영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만약 그대로 갔다면 분당은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지고 문 전 대표도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출신으로, 박 대통령 당선의 공신이자 적장(敵將)인 김 대표에게 전권을 준 것은 야당의 고질적인 관성을 깨는 혁명적 역발상이었다. 야당 분열로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총선 승리를 이뤄냈고 지지율도 수년 만에 여당을 앞섰다. 사드 문제도 예전 같으면 즉각 반대 입장을 당론으로 정하고 장외투쟁도 불사했을 텐데 안보 문제에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김 대표의 확고한 의지 때문에 반대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 친중(親中)론자들의 사드 비판에 맞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등 당 안팎에서 수권(受權)정당의 모습이 갖춰져 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희망이 허무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어떤 의원은 “자꾸 서울광장에서 텐트 치고 농성하는 악몽을 꾼다”고도 한다. 당장 25일 초선 의원 30여 명은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기간 연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광화문에서 가두 홍보를 하는 ‘장외투쟁’을 벌였다. 다시 ‘종북 숙주’ 노릇을 하려는 조짐도 보인다. 김 대표가 “(야당이 다수인데) 국회에서 할 일은 일단 다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려봤지만 마이동풍에 그쳤다. 

대표 경선에 나선 추미애, 이종걸, 김상곤 후보를 보면 누가 되든 김 대표가 돌려놓은 당의 중도·실용노선은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는 강경노선으로 전환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문 전 대표 측근인 최재성 전 의원 등이 지원하는 추 후보는 “김종인 지도체제를 빨리 끝냈어야 했다”며 김 대표 체제에서의 야당 정체성 훼손을 문제 삼고 나섰다. 또 “1등 후보를 흔들어선 안 된다”며 노골적으로 문 전 대표를 옹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 문구를 당 강령 전문(前文)에서 삭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후보들의 행태를 보면 더민주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시절로 돌아가려는 원심력이 아주 강할 것 같다. 김종인의 꿈은, 해피엔딩이 되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라, 결국은 헛된 일이 되고 마는 남가일몽 쪽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4·13 총선 결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을 야당이 비난하고 있지만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자질과 능력을 보여 달라는 메시지를 ‘투쟁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독(誤讀)하고 있는 듯하다. ‘이래문 (이래도 저래도 대선후보는 문재인)’ 현상이 현실화하고 당이 투쟁성 강한 야당으로만 남게 된다면 자칫 2012년 대선보다 더 못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정권교체가 지고지순한 목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어떻게 하겠다는 올바른 비전이 준비돼 있느냐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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