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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융프라우 만년설 찍고, 깎아지른 절벽따라 `구름위 산책

화이트보스 2016. 10. 5. 11:06


스위스 융프라우 만년설 찍고, 깎아지른 절벽따라 `구름위 산책`

  • 이창훈 기자
  • 입력 : 2016.10.04 04:01:05   수정 : 2016.10.04 11: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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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휘르스트 정상의 클리프 워크. 까마득한 절벽 아래가 보이는 철제 난간을 걷는 일은 스릴 만점이다. [사진 제공 = 융프라우 철도]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프스 산록을 감상하는 데 가장 좋은 자세는 뭘까. 앉아서? 혹은 서서? 아니면 날면서? 뒤에 답하기로 한다. 일단 알프스로 떠나보자. 스위스 여행은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다. 그 진수를 꼽는다면 단연 융프라우(Jungfrau)다. 우리말로 '젊은 처녀' 융프라우는 험준한 아이거 북벽을 목숨 걸고 올라야 그 순결한 자태를 보여주기에 더 눈물겹다.

해발 고도 3466m의 융프라우에 오르기 위해 스위스로 날아가 인터라켄을 출발했다. 인터라켄은 우리로 치면 속초쯤 되는 도시. 전문 산악인들에게만 접근을 허용했던 융프라우를 만인의 연인으로 만들어준 이가 아돌프 가이어 젤러다. 1893년 아이거 북벽을 관통해서 융프라우 산마루까지 이어지는 철도 건설을 구상한 이다. 총연장 9.34㎞, 16년이 걸린 대공사였다. 신령한 산, 알프스를 구멍 내는 것에 반대하는 시민 여론과 자금난을 돌파해야 했고 강추위와 폭발 사고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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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에서 산 아래 클라이네샤이텍역으로 이동하면 톱니레일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역 앞에 솟아 있는 1800m 바위산은 1년 내내 볕이 들지 않는 알프스 아이거 봉의 북쪽 사면,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다. 스위스 여행을 하다 돈이 떨어진 탐험가가 그 이름을 따서 등산용품 회사를 만들었고, 우리가 잘 아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됐다. 수직 3㎞의 산을 올라가는 기차는 레일부터 다르다. 양쪽 레일 안쪽으로 톱니바퀴가 설치돼 있고 중앙에도 톱니바퀴를 하나 더 장착했다. 산을 오르던 열차가 갑자기 아래로 미끄러진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열차가 운행된 이래 100여 년 동안 한번도 그런 사고가 없었다.

철도에 투입된 눈물겨운 노력과 고난도 안전기술을 생각하면 20만원 넘는 운임이 비싸게 여겨지지 않는다. 현재 환율 기준 23만5000원이지만 융프라우 철도 한국대리점인 동신항운(www.jungfrau.co.kr)을 통하면 16만3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열차는 서서히 산을 올라 10분이 지나면 웅장한 아이거 북벽과 묀히산 사이를 가로지르며 구름 위로 솟아오른다. 열차는 해발 2865m 아이거반트역과 3160m 아이스메어역에서 한 번씩 선다. 둘 다 바위산을 뚫어서 만든 동굴 속이다. 정차하는 5분간 구름이 미친 듯 춤을 추는 아이거 북벽의 빙하를 코앞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때부터 가슴이 울렁거리는 고산병 증세가 시작된다. 건강 체질인 사람도 고산병으로 고생할 수 있는데 이때 비아그라를 먹으면 즉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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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휘르스트 어드벤처 3종 세트 중 두 번째 코스인 마운틴 바이크.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도 즐길 수 있다. [사진 제공 = 융프라우 철도]
융프라우역에 도착하면 빙하 속 30m 깊이에 만든 얼음궁전을 만나게 된다. 빙질이 좋아 잘 미끄러지지 않는 얼음 위를 여유롭게 걸으며 환상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유럽의 천장(Top of the Europe)이라는 융프라우의 장관이 펼쳐진다. 감탄만 하고 서 있을 사이가 없다. 빙하 위를 걷는 트레킹 코스와 눈썰매에 도전해야 한다. 압권은 외줄 리프트를 타고 빙하 위를 활강하는 코스. 안전? 스위스 기술이다. 융프라우를 찾은 날은 스위스의 '국민 시계 브랜드' 티소(TISSOT)가 미국 NBA스타 토니 파커를 초청해 융프라우 빙하 위에서 스위스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열고 있었다.

123년 전의 대담무쌍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융프라우 철도 덕분에 매년 100만명의 여행객들이 젊은 처녀의 수줍은 속살을 감상할 수 있다.

아무리 멋진 체험이라도 달랑 융프라우 하나만 보겠다고 머나먼 스위스를 찾을 수는 없는 일. 인터라켄을 중심으로 알프스의 장관 속에서 산악레저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휘르스트'와 산꼭대기 환상의 성 '하더쿨름', 앙증맞은 야생화들의 천국 '쉬니케 플라테'도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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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융프라우로 가기 위해 야생화가 만발한 알프스 산록을 오르는 열차. 클래식한 디자인과 달리 최첨단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셋 중 하나를 고른다면 융프라우를 패러디해 '톱 오브 액티비티'를 자처하는 휘르스트의 어드벤처 3종 세트다. 케이블카로 30분 가까이 올라가 산마루에 서면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설치한 철제 난간 위를 걷는 '클리프 워크'의 아찔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산은 오르는 게 맛이라지만 휘르스트는 내려가는 맛으로 오른다. 케이블카로 올라온 코스를 3개로 나눠 어드벤처 코스를 만들었다. 먼저 정상에서 외줄 리프트를 타고 활강하는 '플라이어'다. 외줄에 매달려 3분 남짓 활강하면서 바라보는 알프스는 마치 품 안의 작은 동산 같아 보인다. 그다음은 앉아서 타는 산악용 세발자전거로 30분가량 꼬불꼬불 산길을 내려가는 '마운틴 바이크' 코스. 예상외로 쉽지 않지만 산록의 풀 냄새, 쇠똥 냄새 맡으면서 알프스의 품 속을 파고드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트롤리 바이크'라고 부르는 서서 타는 자전거로 산길을 내려온다. 이게 압권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곧추선 안테나가 돼 알프스의 웅장함에 감응한다.
두 바퀴 위에 선 채로 서서히 활강하는 것은 날아가면서 혹은 앉아서 감상하는 것과 다른 느낌의 입체적 감동이었다.

이런 여행기,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에겐 서러운 거 아니냐고? 스위스 자료를 검색하다가 마주친 블로그가 희망적이다. '벌어서 세계 속으로'.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