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산업 패러다임 변동
한반도 군사 균형의 불안정화
주변 강대국들 구조 변동 등이
동시에 덮쳐오는 역사적 분기점
정치인들의 용기·지혜·판단력과
무지·무감각 시험하는 시간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50년 전 미국-소련 간의 핵전쟁 위기를 새삼스레 돌아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1)필자는 오늘날이 우리가 누려 온 평화와 안정이 지속될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결정적 분기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2)평화와 안보, 산업 경제, 강대국 관계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동하는 역사적 시간 앞에 서 있지만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大)분기점 앞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무감각과 더불어 그날그날의 이슈에 따라 부유하는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다.
지난 며칠간 이어진 당 대표의 단식 소동과 그 이전 몇 주간을 장식한 새누리당 일부의 핵무장론은 집권 여당이 멀리 19세기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현대판 고립주의 세력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당 대표의 단식은 국회의장의 ‘정치’를 정치로 상대하기보다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제압하려 했기에 폭넓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국회와 정당의 본질은 여러 세력이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지루한 과정이라고 알고 있는 시민들에게 당 대표의 ‘최후의 수단’은 생소한 것이었다. 단식은 비장한 승부수였지만 3당 체제의 협치를 기대하던 시민들에게 비장한 승부수가 의회정치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집권 새누리당이 안팎으로 고립의 길을 가려는 요즘, 바깥 세계에서는 경제 패러다임과 안보, 강대국 관계가 새로운 갈림길에 서는 역사적 대분기가 빠르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봄 홀연히 서울에 나타나 이세돌 9단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 알파고의 등장은 우리가 포스트산업화 시대로 성큼 빨려 들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인공지능은 단지 좀 더 똑똑한 자동차, 기계의 등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날로 똑똑해지는 인공지능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우리의 교육·언론·미디어·법률·의료뿐 아니라 정부와 정당의 역할은 혁명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DA 300
또한 북한 핵무기의 실질화는 지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의 균형추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북핵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은 전면적으로 새롭게 재설정돼야 하는 과제를 우리는 안게 됐다. 한·미·일 삼각 협력 역시 북핵 억지라는 관점에서 리셋돼야만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중국·러시아와의 협력에도 대담한 신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1997년 국가 부도 직전의 외환위기, 72년 석유 파동과 8·3 긴급경제조치, 71년 미국-중국의 비밀 교섭과 그에 따른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불안감 등 숱한 위기를 헤쳐 왔다. 그러나 100여년 만의 산업 패러다임의 변동, 수십년 만의 한반도 군사 균형의 불안정화, 주변 강대국 관계의 구조 변동이라는 거대한 파도들이 동시에 우리 삶을 덮쳐 온 적은 없었다. 역사적 분기점은 마치 쿠바 미사일 위기처럼 정치인들의 용기·지혜·판단력과 아울러 무지·무감각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정부 주도의 경제 발전, 세계화 개방 등을 주도하며 세계적 흐름에 나름대로 대응해 왔던 보수 정당은 지금의 결정적 분기점 앞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