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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遺産

화이트보스 2016. 11. 16. 13:37



박근혜 대통령의 遺産

입력 : 2016.11.16 03:12

이 정권의 안보 영역까지 분노에 무너지는 순간 격랑이 밀려들 것이다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기고 싶다면 뒤로 물러서야 한다

선우정 논설위원
선우정 논설위원
국내 정국이 아무리 혼란해도 우리 일상까지 달라지지 않는다. 당장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도 우리의 오늘은 어제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내일이 오늘과 달라진다면, 우리의 삶이 갑자기 큰 변화를 요구받는다면 그 회오리는 어디에서 몰려오는 것일까.

우리의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 것, 대통령이 기능을 상실하고 정치가 극단을 달려도 변함없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안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랬듯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당장 실시해도 수많은 사람이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칠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도 한·미 동맹에 대한 믿음,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믿음이 지금 우리가 꽃피우는 광장 민주주의의 실질적 기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이것은 타당한 믿음이 아닐 수도 있다.

주미 대사를 지낸 어느 인사는 한·미 동맹을 "완성을 향해 가는 동맹"이라고 말했다. 동맹의 역사를 공부할수록 정확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한·미 동맹은 미국의 다른 동맹과 달리 미국이 원해서 맺은 동맹이 아니다. 북진(北進)과 반일(反日) 데모로 협박하면서 떠나는 미국을 한국이 필사적으로 붙잡은 결과다. 동맹 후 60여년 동안 북핵과 중국의 부상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미 동맹은 한국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키워 균형에 다가가는 미완성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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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모든 것이 부정되는 현실은 극적이다. 빨간 딱지가 잔뜩 붙은 파산 가정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4년이란 시대 공간에 '최순실 딱지'가 붙고 있다. 아무리 붙여도 그동안 이 정권이 검찰과 친박 집단을 동원해 타인에게 붙여 대던 범죄자 딱지보다는 덜 가혹할 것이다. 아직 멀었다고 한다. 최순실 딱지는 문화·체육에 이어 경제 영역까지 삼켰다. 그렇게 무너지는 시대를 보면서 나 역시 "자업자득"이라고 대통령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 불안하다. 넘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선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외교·안보 영역에서까지 거칠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부 당국자가 어제 고개를 저은 사안이 오늘 결정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관료조차 나라의 하루 앞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그 결정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한·미 동맹에 필요한 결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만이 아니다. 지금 논란이 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비롯해 작년 일본군위안부 합의까지 한·미 동맹의 틀에서 움직인 사안들이다. 지금도 나는 이것이 이 나라에 물려줄 박 대통령의 의미 있는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정권을 향한 분노는 국민적이다. 이념의 구분이 없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외교·안보 영역에 최순실 딱지를 본격적으로 붙일 때 미묘한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 선을 넘겠다는 세력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세력이 좌우로 갈릴 수 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동맹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이 국면을 기다리는지 모른다. 친박도 이 국면을 기다리기 때문에 저렇게 몸부림치는 듯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친박이 버티는 한 동맹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도 그가 남길 수 있는 한정된 업적까지 영원히 날려버릴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번영했다. 이 동맹을 미국의 예측 불가능한 새 대통령이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회오리가 우리 안에서 몰려올 수 있다. 박근혜 시대의 외교·안보 영역까지 분노의 파도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보면서 누군가 "목가(牧歌)적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단지 '혈맹'이란 이유로 이런 나라를 동맹의 파트너로 대접하는 낭만적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달라진 세상에 적응해 생존할 수 있도록, 오늘의 일상이 내일도 이어질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은 뒤로 물러서야 한다. 그래야 보수도 결집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야당의 누군가가 대통령을 향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했다. 다른 누군가는 아침 약속을 저녁에 뒤집고도 정당성을 주장한다. 지금 대통령은 아무리 모욕하고 할퀴어도 괜찮은 존재인가. 그들은 우연히 손에 쥔 조각 권력조차 남용하고 있다. 좌파의 트럼프에 비견되는 어느 인물은 이번 사태를 통해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에 튀어올랐다. 이것이 그 세계의 현실이다. 함성이 잦아들면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결단한, 그다음 일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