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터키의 톱카프 궁전박물관에서 그들의 찬란한 영광을 떠올렸다. ‘잘나간 조상들’이 물려준 역사 유산 덕분에 세계인들을 끌어들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역설적으로 그 여행은 내 나라 대한민국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해외에서 재발견한 ‘내 나라’
세 나라 모두 과거는 화려했지만 현재는 부럽지 않았다. 이집트는 곳곳에서 빈곤이 묻어났고 터키의 생활수준도 한국에 못 미쳤다. 그리스 역시 성장지향 국가와는 거리가 먼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관광산업 외에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제조업과 기업이 드물다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냉정히 말해 한국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적이 없다. 국토는 좁고 천연자원은 부족하다. 제대로 내세울 만한 역사 유적도 드물다. 망국(亡國)으로 치달은 조선의 실패와 식민지의 아픈 경험에 이어 분단에 따른 내전까지 치렀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대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이런 나라가 준(準)선진국으로 변모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한국이 도약에 성공한 지난 50여 년이란 기간은 큰 역사의 흐름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짧았던 번영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국내 기업 총매출액 2년 연속 첫 감소, 내년 호황 전망 업종 전무(全無) 같은 우울한 통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연말 특수(特需) 분위기는 실종됐고 민생의 한숨은 깊어간다. ‘최순실 사태’에 따른 국가 리더십 공백과 전방위 기업 수사까지 겹치면서 기업과 공직사회는 어수선하다. 올 4분기 경제성장률은 충격적 수준으로 추락할 위험성이 높다. 해외발(發) 대형 악재가 터지거나 거대 야당이 법인세 인상과 상법 개정까지 밀어붙인다면 경제와 기업들은 회복 불능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냉철하게 경제 생각해야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퇴진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됐다. 대통령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국민이라도 국가 혼란이 길어져 어렵게 쌓아올린 한국의 성취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동향을 주목하는 지금 ‘정치 리스크’가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잠시 거쳐 가는 대통령과 정권은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와 후손들이 계속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이 추락하고 ‘빈곤의 시절’로 뒷걸음질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순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