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단기간에 고도성장하는 과정에서 재벌이 기여한 공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성장의 과실이 재벌에 집중되면서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고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정경유착의 고리까지 드러났다.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해소해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문 전 대표의 주장은 시장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군사정권 이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벌개혁을 검토하지 않았던 정부는 없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기업 활동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거나 정경유착의 대가로 개혁 과제를 후순위로 미루기 일쑤였다. 문 전 대표는 재벌의 경제범죄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2015년 4월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두 차례나 사면했던 정부가 바로 노무현 정부다. 문 전 대표는 백화점식 정책 가운데 실제 입법화할 수 있는 정책을 분명히 밝히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재벌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외국의 대기업과 달리 총수 일가가 기업을 소유하면서 경영까지 장악하는 한국 특유의 경영 모델이다. 몇몇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개혁안은 정치적으로 통할 수는 있지만 근본 문제를 방치하는 임시방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경유착을 풀려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듯 정권이 기업에 손 벌리는 관행부터 뜯어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