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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09 04:00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 만에 라부안 바조(Labuan Bajo)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시골 버스 정류장 같은 조그만 공항은 금세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짊어지고 온 서양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플로레스 섬 끝에 있는 라부안 바조는 전 세계 다이버들에게는 꿈의 다이빙 포인트로 불리는 곳이다. 배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갖가지 산호초와 형형색색의 열대어로 가득한 신비로운 수중세계를 만날 수 있다. 라부안 바조 인근 바다에는 다이빙 지역이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다이버들은 리브어보드(Liveaboard)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스쿠버 다이빙을 즐긴다. 리브어보드는 말 그대로 배에서 며칠씩 머물며 다이빙을 즐기는 프로그램. 배 여행의 낭만과 스쿠버 다이빙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인기가 높다.

라부안 바조는 코모도 섬(Komodo Island)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코모도 섬은 코모도 도마뱀이 사는 곳. 코모도 도마뱀은 전 세계에 5000여 마리만 남아 있는 희귀동물로 세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도마뱀이자 공룡과 가장 가까운 유전자를 가진 파충류다.
코모도 섬 여행은 크루즈로 하기로 했다. 2박 3일 동안 코모도 섬 탐방을 비롯해 파다르 섬 트레킹과 핑크비치 스노클링을 즐기는 일정이다. 크루즈는 피니시(Phinish)라는 전통 목선을 개조해 만들었는데 커다란 돛이 달려 있다. 돛을 펼치면 한층 멋지겠지만 아쉽게도 일정 내내 돛을 펼치지는 못했다. 선장을 비롯해 항해사, 요리사 등 10명 가까운 스태프들이 여행자들과 함께 승선한다. 지역 전문 가이드가 동행한다.
여행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배 위에서 먹고 자며 여행을 즐긴다. 참가자마다 개인 방이 주어진다. 샤워실도 딸려 있고 에어컨도 달려 있다. 식당도 마련되어 있다. 방 위에 자리한 갑판에서는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아예 이곳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도 많다. 포구를 빠져나온 크루즈는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가끔 갈매기들이 날아와 돛대 위에 한참을 앉았다 사라진다. 스마트폰 안테나는 아예 뜨질 않는다. 물론 인터넷도 되지 않았다. 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거나 갑판에 누워 맥주를 마시는 일이 전부다.
저녁이 오자 배는 엔진을 끄고 정박했다. 볶음밥과 새우요리로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노을이 내려 세상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식사를 마친 후 빈탕 맥주를 한 병 챙겨 갑판으로 올라갔다. 머리 꼭대기에 별이 하나둘 돋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찼다. 손으로 밤하늘을 쓸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 바다는 잔잔하고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를 어루만졌다.

이튿날 아침 크루즈에서 내려 작은 보트로 갈아타고 찾은 곳은 파다르(Padar) 섬이다. 1시간 정도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섬의 정상은 겨우 해발 200m밖에 되지 않는다. 30분이면 닿는다. 운동화를 신고 손에는 물병 하나를 달랑 들고 섬을 오른다. 트레킹이라기보단 소풍이다. 여행객들과 스태프들이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들며 걷는다. 몇 발짝 걷다 뒤돌아볼 때마다 섬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해발 50m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70m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감동적이다. 이 세상을 다 품은 것 같다.
섬에서 돌아와 잠시 크루즈에서 휴식을 취한 후 아침을 먹고 코모도 섬으로 향한다. 코모도 섬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 3m가 넘는 덩치를 자랑하는 코모도 도마뱀은 전 세계에서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과 플로레스 일부 섬에서만 서식한다.
코모도 도마뱀은 몸무게가 100kg에 달할 정도로 크다. 강한 독도 가지고 있어 한 번 물리면 살아남기 힘들다. 덩치 큰 물소조차 3~4일 만에 죽일 수 있다. 평소엔 느리게 엉금엉금 기어 다니지만 한 번 사냥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목표물을 덮친다. 시속 20㎞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코모도 섬은 반드시 전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가이드는 Y자형으로 생긴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 달려드는 코모도 도마뱀의 머리를 누르는 데 쓰인다. 가이드는 "코모도 도마뱀을 만나면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말고 갑자기 뛰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얼마 전에도 가이드가 낮잠을 자고 있다가 팔 한쪽을 잃었다고 한다. 실제로 작년에 미국 관광객 한 명이 사라졌는데 얼마 뒤 머리카락과 배낭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탐방로 입구에는 코모도 도마뱀의 먹이가 된 동물들의 뼈가 진열되어 있다. 버펄로와 사슴, 심지어 원숭이도 있다.
탐방객들은 가이드의 뒤를 일렬로 따라가며 코모도 도마뱀이 있는지를 살피며 걷다가 커다란 구덩이와 만난다. 코모도 도마뱀이 알을 낳는 구덩이다. 암컷은 구덩이를 여러 개 판 후에 이 중 몇 개 구덩이에만 알을 낳는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도중 갑자기 수풀 한쪽을 가리킨다. 나무 덤불 사이로 커다란 코모도 도마뱀 한 마리가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어슬렁거리고 있다. 코모도는 눈을 껌뻑거리며 이방인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요즘은 짝짓기 시즌이라 보기 힘든데 여러분은 운이 좋네요." 이날 코모도 도마뱀을 세 마리나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녀석들이 배가 부른 상태라 기념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다.

코모도 섬 크루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핑크비치(Pink Beach)였다. 코모도 섬 동쪽에 있는 해변인데, 이름 그대로 해변이 핑크빛이다. 지구에는 그리스 크레타섬의 발로스 베이, 필리핀 산타 크루즈섬, 카리브해에 위치한 버뮤다 제도 등 모두 일곱 군데의 핑크비치가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 코모도 섬에 있다. 눈에 띌 정도로 선명한 분홍색은 아니지만 파도가 쓸려나갈 때마다 핑크색이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부서진 조개껍데기와 산호의 색소를 만드는 미생물이 뒤섞여 핑크색을 낸다고 한다. 핑크비치에서는 스노클과 고글 그리고 오리발을 준비해야 한다. 바닷속에는 수백 종의 산호와 수천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파도가 세지 않아 초보자들도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좋다.
핑크비치에서의 여유롭고 신나는 시간을 마치고, 배로 돌아왔다. 요리사는 땀을 흠뻑 쏟고 온 여행자들을 위해 시원한 칵테일을 만들어주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맥주를 들고 갑판으로 나갔다. 밤하늘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별이 떠 있었고 크루즈는 우리가 떠나온 라부안 바조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 인천에서 발리까지 직항을 타고, 발리에서 라부안 바조 공항까지 국내선을 타는 것이 코모도 섬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라부안 바조로 가는 국내선 가격은 20만~30만원 정도다.
■ 라부안 바조에는 호텔과 레스토랑, 외국인이 운영하는 다이빙숍이 많다. 크루즈 프로그램은 시모어 파푸아 선사(http://seamorepapua.com)에서 운영한다. 2박 3일 패키지 가격은 1인당 600달러부터. 라부안 바조 전통시장에서 원주민들이 직접 짠 직물과 코모도 조각, 진주 액세서리 등과 같은 수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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