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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22 04:00
장어~ 어딨니
자연산 민물장어 잡기

덥다. 더우니 눈알에서 힘이 쉽게 증발한다. 오전부터 폭염주의보라니. 잠을 자도 졸리고 자고 있어도 졸린 것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비몽사몽 간에 녀석을 떠올린다. 기차를 집어탄다.
땡볕을 뚫고 4시간에 걸쳐 전남 광양까지 달려간 까닭은 여기 맨손으로 자연산 민물장어를 잡는 사냥꾼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박성모(48)씨는 직접 제작한 대나무 꼬챙이 하나만 들고 집 앞 개천에 나가 쑥쑥 장어를 뽑아 올리는 달인.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장어를 잡는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조작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장어를 잡았다는 박씨가 “주말마다 재미 삼아 친구들과 장어잡이를 다닌다”며 “대물 자연산 민물장어는 부르는 게 값이지만 절대 돈 받고 팔지 않는다”고 한다. 취미를 업(業)으로 삼으면 달인이 아니라는 것.

기운도 없는데 긴 말할 것 없이 곧장 광양읍 서천(西川)으로 간다. 남해 바닷물과 섬진강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이다. 가물어 물이 많이 줄어 있다. 물이 부족하니 바닷가에서 올라온 녀석이나 나가려는 녀석들이 오도 가도 못 하고 갇힌 형국이다. 다만 무더위는 장애 요소. 박씨가 “큰물 진 다음엔 하루 십수마리도 잡지만 요즘 같은 때는 장어가 흙 깊숙이 파고 내려가 잡기가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한다. 그래도 일단은 쑤셔 봐야 알 것이다. 장비를 꺼낸다. 장화와 목장갑. 그리고 대나무를 얇게 쪼갠 뒤 끝에 낚싯바늘 하나를 단 일명 ‘꼬챙이’가 전부. 야행성인 민물장어는 오후엔 종일 잔다. 꼬챙이 끝에 통통한 지렁이를 끼우고, 장어가 잠들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굴에 꼬챙이를 넣고 천천히 앞뒤로 움직인다. 포악한 잡식성이라 누가 자기 굴에 침입하면 일단 공격하고 보는 습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단 장어가 바늘에 걸리면 나머지 한 손을 넣어 몸통을 쥐고 밖으로 빼낸다. 도구가 단출하니 나머지는 전적으로 손기술에 달렸다.

놈은 얕은 물에 있다. 계곡이나 강기슭 큰 바위 밑, 물이 졸졸 흘러 내려가는 곳, 소용돌이가 일어 곤충이나 작은 물고기가 자연스레 밑으로 떨어지는 곳 등이다. 이런 자연 지형을 포착할 때마다 꼬챙이를 넣고 쑤시는 수색 작업을 벌이지만,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놈들이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요놈들 보게….”
속을 알 수 없는 이 족속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강바닥 진흙의 지렁이가 돌연변이한 것”이라 했을 정도로 예부터 신비의 괴물로 인지돼왔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미지(未知)에 있다. 장어가 어디서 태어나는지조차 1991년에야 일본 연구진에 의해 겨우 밝혀졌다. 국내 민물장어 연구의 권위자인 국립수산과학원 김대중 박사는 “바다에서 뭘 먹는지, 어떻게 강으로 오면서 성숙하는지도 아직 확실히 모른다”면서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인공 부화를 통한 완전 양식에 성공했지만 상업용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알을 얻어다 부화시키는 게 어려우니 보통 치어를 잡아다 양식하는데, 이것이 흔히 식당에서 파는 민물장어다. 고무줄만 한 치어가 마리당 2000~3000원 정도 할 정도로 비싸다. 양식도 이러할진대 자연산은 오죽 귀할까. 장어잡이 멤버 김종수(56)씨는 “자연산은 먹고 나면 다음 날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른다”고 엄지를 세운다.
허기가 지니 눈에 독이 바짝바짝 오른다. 사곡으로 이동한다. 오래된 돌다리 밑 물이 급낙하하는 틈새에 꼬챙이를 집어넣는다. 움찔. 빼 보니 지렁이 절반이 잘려나갔다. 박씨가 “장어는 먹이를 이빨로 무는 게 아니라 ‘훅’ 빨아들인다”면서 “이렇게 간만 본다는 건 녀석들이 매우 예민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20분 정도 사투를 벌인다. 결국 녀석이 이겼다. 이번엔 마산마을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입질이 없다. 박씨가 2㎏짜리 대물을 낚았다는 지난 6일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민물장어는 1.5㎏부터 대물로 친다. 2㎏급부터는 음식이 아니라 약의 반열에 오른다. 1000만원을 호가하는 놈도 있다 한다. 그러나 일단은 뭐라도 잡아야겠다. 다시 기수역으로 온다. 아까 봐둔 자리로 간다. 심기일전. 박씨가 바위 밑을 쑤신다. 정확히 3초 뒤 한 놈이 몸뚱이를 드러낸다. 구렁이 같은 놈을 잡아 올리니 배가 누렇다. 자연산의 상징이다. 시들어 있던 사냥꾼들이 환호성을 터뜨린다. 맨손으론 도저히 잡고 있기 힘들 정도로 미끄러운 데다 마구잡이로 몸을 틀어대니 팔뚝에 힘이 꽉 들어간다. 그러니 이 활어를 활력이라 바꿔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날 잡은 놈과 전날 잡은 놈 두 마리를 들고 근처 식당으로 가 소금구이로 구워먹고 매운탕으로 끓여 먹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장어 꼬리는 최연장자에게 먼저 권하는 게 인지상정. 이윽고 손질할 때 미리 떼어뒀던 청록색 쓸개를 꺼낸다. 엄지손톱만 한 그것을 소주잔에 넣고 터뜨린다. 술을 부으니 녹차 빛이 된다. 1남 3녀를 둔 박씨가 씩 웃으며 “한 번에 털어 넣으라” 한다. 아주 찐한 쓴맛이 전신에 요동친다. 마침내 놈이 몸 안에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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