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회장은 최근 한국 방문단에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북한이 서울을 위협하면 미국은 함께 걱정합니다. 미국이 위험에 처하면 한국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이 진정한 동맹입니다.”
실제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고위 관리들은 “동맹을 공격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얄팍한 이해타산이든 굳건한 믿음이든, 그렇게 동맹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때 우리는 어땠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북한이 괌을 위협한 직후 청와대를 방문한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에게 “북핵이 엄중하고 실재하는 급박한 위협”이라며 “한반도 및 세계 안보를 흔들고 있다”고 규탄했다. 다 맞는 말이지만 뜯어보면 ‘우리’라는 개념이 빠져 있다. 프랑스나 독일 대통령이 한 말이라고 해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최근 만난 국무부 관리는 우리 정부의 800만 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 소식에 고개를 저었다. “Moon(문 대통령)의 대북 철학은 알겠지만 전 세계가 북한의 돈줄을 틀어막겠다는 시점에 그런 결정을 했어야 했나.” 필자 역시 동맹을 손익계산으로 보는 데 익숙해졌던 걸까. ‘우리 정부도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국 정부가 일본처럼 독자 제재를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받아쳤다.
미국은 언제부턴가 우리 정부의 액션(Action)과 진심(Sincerity)을 구분하려 애쓰고 있다. 어제는 대화를 주장하다 오늘은 제재를 말하는 모순이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개성공단 재개 주장이나 북한과의 대화 강조, 전술핵 재배치 반대는 ‘진심’으로 여긴다. 문 대통령이 의원 시절부터 했던 일관된 주장이다.
반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 대응 훈련을 하거나, 러시아에 원유 공급을 중단하라는 것, 대화 시점이 아니라고 하는 건 미국과 국제사회를 의식한 액션으로 본다. 모두 대통령이 된 뒤 처음 하는 말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때도 “제재 일변도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양비론과 함께 대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정은은 핵을 완성하기 전까지 ‘진짜 대화’에 나설 맘이 없다.
애석한 일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동맹인 미국과 동족인 북한을 모두 가질 수 없는 운명이다. 모든 게 북한 핵 탓이다. 고통스러운 선택의 시간이다. 지금은 진심을 다해야 동맹을 지킬 수 있다. 다행히 한미 정상은 지금 뉴욕에 함께 있다. 아직 시간이 있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