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구혈대(嘔血臺)와 비운의 명장 원숭환(袁崇煥)

화이트보스 2017. 10. 14. 18:52



구혈대(嘔血臺)와 비운의 명장 원숭환(袁崇煥)

 

영원성(寧遠城) 동쪽에 구혈대라는 곳이 있는데 가운데가 불룩한 작은 언덕이다. 과거 누르하치가 심양(瀋陽)을 점거하고는 호시탐탐 중원을 노려보면서 수만의 정예병을 모아놓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때 원숭환이 와서 영원을 수비하자 오랑캐는 평소 그의 위명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군대를 주둔시킨 채 꼼짝도 않으면서 계속 사람을 보내 명군을 정찰하였다. 원숭환은 짐짓 본모습을 감추고 날마다 막료들과 장기나 두면서 군무를 다스리지 않았다. 오랑캐는 원숭환이 하는 짓을 계속 듣게 되자, “저자는 허명일 뿐이다.” 하고는 기필코 원숭환을 섬멸하고 서쪽으로 진군할 각오로 군대를 총동원하여 출격하였다. 영원성은 심양에서 670여 리 떨어져 있었는데 급보가 끊임없이 날아들었지만 원숭환은 듣지 못한 것처럼 태연하였다.
오랑캐 군대가 10리 밖에 이르자 비로소 호위병을 배치하고 성 위에 버티고 앉으니 위엄이 늠름하여 아무도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 못하였다. 순식간에 오랑캐가 이미 성곽에 달라붙어 외성이 대번에 격파되고 오랑캐 기병이 모두 성안에 들어오자 군중이 모두 두려워하며 떨어 성이 금방이라도 함락될 듯하였고, 오랑캐 역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원숭환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쳐다보면서 다만 성가퀴의 사졸들에게 솜을 뭉쳐 불씨를 싸서 밖으로 마구 내던지게 하니, 오랑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다만 대오를 정돈하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지뢰가 사방에서 터지고 포환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사람과 말이 함께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피를 뿌리며 떨어지더니 철기(鐵騎) 수만이 일시에 모두 섬멸되었다.
연기와 화염이 조금 잦아든 뒤에 원숭환이 동쪽을 바라보고 놀라서 말하기를,
“내 오랑캐를 다 죽였다고 여겼는데 여전히 저 언덕에 모여 있는 자들이 있으니, 필시 그 추장일 것이다.”
하고는 사자(使者) 편에 술 한 동이와 돼지 네 마리를 보내 위로하였는데, 누르하치가 과연 수십 기를 거느리고 탈출한 것이었다. 추장이 원숭환의 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술 한 사발을 들이켜더니 피를 몇 되나 토하고는 통곡하고 떠나자 원숭환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하늘의 뜻이다. 추격하지 말라.”
아마 원숭환이 영원진에 와서는 은밀히 지뢰포(地雷砲)를 외성(外城)에 묻어 놓고 오랑캐가 이르기를 기다렸는데 좌우의 막료 역시 알지 못한 듯하다.
누르하치가 심양으로 돌아가 울분 끝에 병이 났는데, 임종할 무렵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중원을 끝내 도모할 수 없는 것인가?”
아홉째 왕자 다이곤(多爾袞)
“우리의 장수 중에 원숭환만 한 자가 없으니 그를 제거한 뒤에야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자, 누르하치가
“네 말이 맞다. 내 뜻을 이룰 자는 바로 너로구나.”
하였다. 홍태시(洪太始 청 태종 )가 그 뒤를 이어 즉위한 뒤 수만금을 가지고 이간계를 써서 원숭환은 끝내 살해되고 천하는 마침내 청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다이곤이 군대를 이끌고 북경(北京)에 입성한 뒤에 그 언덕에 비를 세우고는 ‘구혈대’라고 이름 지어 창업의 자취를 나타냈는데, 이로 인해 명나라의 실책이 더욱 드러나 후세의 경계가 될 뿐이었다.
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명사(明史)》에 영원성의 승리를 기록하기는 했으나 사관이 청나라 조정 때문에 꺼려서 전투의 전말을 다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투가 있을 당시 우리나라 사신이 마침 영원에 이르렀다가 그 대첩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전하여 원숭환의 공적이 그 덕분에 사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구혈대가 남아 있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주-D001] 아홉째 왕자 다이곤(多爾袞) : 
다이곤은 누르하치의 열넷째 아들이다. 여기서 아홉째 아들이라고 한 것은 청성이 잘못 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