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2000억 투입한 원자로 APR+
발전 용량·효율, 안전성 높은 평가
도입 계획한 천지 1·2호기 백지화
국내 시공 안 되면 해외수출 어려워
기업 사업 철수, 생태계 붕괴 우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발전기 침수로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냉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더 커졌다. 그러나 APR+는 중력 등 자연력에 의해 냉각수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사태에 대비했다. 특히 원전 설계의 핵심 코드와 계측 제어 설비 등 핵심 기술도 100% 국내 기술이었다. 이전 모델인 APR1400의 경우 원천 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가 기술 유출 가능성을 두고 반발하는 바람에 중국 수출에 실패한 바 있다.
![위 사진은 APR+ 발전소 조감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10/26/d56e5fff-dcd0-4f29-99aa-86a271e09e44.jpg)
위 사진은 APR+ 발전소 조감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수원 관계자는 “오랜 기간과 비용을 들여 개발한 APR+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수준의 기술이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사장될 수순을 밟고 있다”고 토로했다.
애써 개발한 기술을 함부로 버린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원전 기술의 해외 수출을 보완책으로 꺼내 들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에 도입하지 않은 원자로를 구입할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국내에서 충분한 운영 경험을 쌓지 않은 원자로는 국제시장에서 신뢰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수원과 APR+를 공동 개발한 한 중공업사 관계자는 “원천 기술이 있으면 원전 수출 시 건설부터 운영까지 일괄 수주하게 돼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미국과 영국이 APR+에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정부의 원전 건설 중단 결정으로 빛을 못 볼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국내 수주와 수출이 틀어막히면 원전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 원전은 1956년 원전 1세대의 미국·영국 유학을 시작으로 6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기간 동안 구축된 정부 발주, 공기업의 개발 및 운영, 대기업의 건설, 중소기업의 부품 공급으로 이어지는 생태계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의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신규 원전 공사가 모두 취소되면 영국·사우디아라비아·체코 등 해외 사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 2022~2023년, 2026~2027년은 발주가 없어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 일부 부품사는 “원전 사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푸념한다.
DA 300
원전에 들어가는 열풍기 부품을 납품하는 J사 관계자는 “작은 회사는 대기업이 발주하는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산업이 사라지면 경영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서는 중국 수요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충격에 빠진 것은 중소기업뿐만이 아니다. 원자로를 만드는 두산중공업이나 전선을 납품하는 LS산전, 건설사인 현대건설·삼성물산 등 대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주력 제품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곳도 있다.
이런 식으로 생태계가 무너지면 국제 경쟁에서 도태돼 그 격차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70년대 세계 원전 시장을 장악했던 미국은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30년간 자국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주도권을 일본·러시아 등에 내줬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담당 교수는 “시공 능력이 없으면 기술자도 사라지고 기술자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산업이 죽는다. 5년만 지나도 세대가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