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남에 맛난 막걸리가 있다더라.." 언제인가 술자리의 누군가로부터 스치듯 들려왔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사실 흘려 들었다. 술자리에서 흘려 말 할 정도의 막걸리라면,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 음료로써의 맛남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으므로. 막걸리 주도가 순례를 시작한지 3개월 가까이.. 남부 지방의 막걸리 주도가들은 꽤 이 곳 저 곳 다녀온 셈이 되었지만,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막걸리들이 맛을 쉽게 생각하는 음료 같은 막걸리들 일색인 터라... 합성감미료 범벅인 달달한 막걸리, 새콤달콤한 음료수 같은 막걸리가 마트 가판대를 온통 장악하고 있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이 이런 술을 즐거워 하기 때문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저렴한 가격에 적당히 쉬운 단 맛, 적당한 접근성... 삶을 대하는 자세가 흔히들 그렇듯 그 마음 갖음이 술에도 담겨 내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저런 이유로.. 오히려 해남이면 남도권이라 내가 사는 곳에서 넉넉잡아 두시간 정도면 닿을 거리에 위치에 있음에도, 전남권 막걸리에 별 희망을 갖기 어려워 우선 순위를 뒤로 밀어버리고 굳이 먼 부산까지 주도가들을 더듬었던 것이다. 그러던 일주일쯤 전 전주의 막걸리 주도가를 다녀오다가 동사할 뻔 했던 트라우마로, 혹한기엔 전남권을 벗어나진 말자는 다짐을 했던 터라.. 그렇담 어디를 가 보지? 하며 궁리를 하던 중 문득 언젠가 술자리에서 들었던 그 말이 떠오른다. "해남에 맛난 막걸리가 있다더라.."
토요일 아침.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한다. 오전은 1도 정도이나, 오후엔 12도까지 오른다는 반가운 소식! 소드피쉬의 시동을 건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의 감각적인 키온 세레모니에 이은, 645cc 브이트윈 엔진의 기분 좋은 고동감... rpm에 심장박동을 동조시킨다. "해남에 맛난 막걸리가 있다더라.." 브이스트롬을 달려 해남 즈음에 이르자 널찍한 벌판과 시선의 끝자락에 널리듯 둘러 친 산이 풍경을 이룬다. 해남 언저리는 평야와 산의 조화로 인한 원경(遠景)이 제법 예쁘다. 그나저나.. 오늘 미세먼지 작렬이다. 전주 주도가들을 다녀와 심하게 앓은 감기로 아직 회복되지 않은 기관지에 미세먼지 어텍으로 투어 내내 콜록여야만 했다능.. 해남의 관문. "한반도의 시작 땅끝 해남" 가만있자.. 시작과 끝이라.. 양립할 수 없는 단어 두개를 붙여놓다니.. 해남군수의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이다. 시적 허용인가? ^^;; 먼저 해남의 초입에 위치한 송우종명가 라고도 하는 옥천주조장엘 들른다. 옥천면사무소 바로 근방에 위치한 이 곳은 3대째 이어 내려오는 전통 있는 주도가라고 한다(인터넷에서). 주도가의 외견은.. 막걸리보단 식초에 더 주안점을 둔 듯 한 느낌인데.. 바이크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도가 한켠에 판매장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문이 잠겨있어 유리 너머로 들여다보니.. 역시.. 막걸리 보다는 식초 라인업을 더 중요시 여기는 느낌. 막걸리를 베이스로 하는 다양한 제품군을 생산하는 듯 하고 제품들의 포장 또한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닫힌 문에 적힌 휴대전화로 전활 걸어 막걸리 구입코자 한다고 하니 소량 구입이면 근처 가게에서 구입하라신다. 해서 바로 앞 점포에서 구입한 옥천생쌀막걸리. 한병은 시음용. 한병은 물론 아버지 드릴 생각. 흐흠... 이 막걸리가 예의 '맛난' 막걸리일까? 정오가 지나자 기온은 무려 15도에 이른다. 감격적인 따스함에, 농진한 미세먼지에도 불구.. 온몸으로 흐믓함을 외치는 도파민홀릭!
인터넷 지도 검색 결과 해남에 양조장은 방금 다녀온 송우종명가와 해창주조장 두 곳이다.
해서, 해창 주조장으로 향하던 중 미황사 라는 사찰에 들른다. 해남에서 가볼만 한 곳을 검색하면, 땅끝탑에 이어 두번째 쯤으로 연관검색이 되는 곳인데.. 내 생에 땅끝탑은 두번다신 없으므로.. 해남 송지면의 달마산 자락에 위치한 미황사는..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나, 서기 749년에 창건된 천년고찰로.. 사찰 내부의 모습이 달마산의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데.. 달마산자락에 있어선지 범종 바로 아래에 대웅전을 바라보는 달마상이 서 있는게 흥미롭다. 달마산의 주상절리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미황사(美黃寺)의 대웅전.. 여타의 절들관 달리 단청이 생략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론 단청이 없는 수수함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저 조화롭다는 생각이다. 매우 아름다운 사찰. 미황사를 내려와 20분쯤 달려 해창주조장에 도착한다. 어랏? 이 담장 양식은.. 일본의 고택에서 자주 보는 양식인데? 살짝 의아한 생각으로 바이크를 멈추고 들어가보니.. 역시.. 일본 양식의 고택. 약 100년 전쯤 일본인이 거주했던 고택을 해방 후 인수하여 양조장을 차렸다고 한다. 이런 느낌 역시 일본 색체가 강한데.. 주인 되시는 남자분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뒷쪽에 정원이 있는데, 정원 둘러보시고 시음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해창주조장의 정원. 솔직히 놀랐다. 자연의 일부를 뒷마당에 옮겨 놓은듯 한 정갈한 모습은, 700년 수령의 백일홍과 다양한 식물.. 그리고 그 곳에 깃든 새들의 지저귐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정원 한켠엔 이렇게 오래 된 종이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백제에서 일본으로 술 빚는 법을 전파한 수수보리를 모신 사당이라고 한다. 종을 세 번 치면 바라는 바가 이뤄진다는... 고택과 고요한 정원의 풍경에 여운 긴 종소리가 더해지자, 100년 전 한가로운 정원에 서 있는 듯 한 착각마저 든다. 몹시 만족스러운 도파민^^ 정원에서 한참 머무르며 거닐다가.. 시음장 쪽으로 향해본다. 사실 우측의 고택은 사장님 내외분이 거주하시는 공간이고, 양조장 건물은 좌측의 작은 건물인데.. 상당히 깊은 우물.. 사진엔 담기지 않았지만 실지로 바닥에 물이 차 있다. 양조장은 직원을 두지 않고 내외분 두분만이 운영하시기에 규모가 작다. 좌측부터 재료실, 제국실, 발효실.. 사실 우측 마지막 한칸의 공간만이 실제 술이 빚어지는 곳이다는.. 시음장의 내부는 문화공간 같은 개념이다. 오래 된 영사기와 전축, 그림, 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해창양조장의 모습을 벽화로 남겨 재능기부한 부분이 흥미롭고..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이 남기신 글귀도 눈에 띈다.
해남이라 대흥사 해창막걸리를 겻들이니 그 취기가 득도 아니랴
여기서는 알콜 도수 6도, 9도, 12도의 막걸리를 생산하는데.. 찾아주는 손들에게 시음장에서 도수 12도의 막걸리를 내주신다. 바이크를 타고 왔기에 마실 수 없어 살짝 입을 댄 그 맛과 향이 놀랍다.
"각 도수별로 두병 씩 사 가고 싶습니다!!!" 이 곳 막걸리는 다소 고가이다. 도수별로 3천원 6천원 1만원.. 사장님과 한참동안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감미료로 쉽게 맛을 낸 막걸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자.. "한병에 천얼마면 요즘 파는 생수보다 싸잖아요. 그 막걸리에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하시는 말씀이 무겁게 와 닿는다.
구입한 막걸리를 사장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동안 정원의 한가로운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20마리쯤의 고양이들이 함께 있는데.. 이 아이들을 대하는 주인분의 세심함을 보니 막걸리의 맛과 질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사장님께서 준비 해 주신 막걸리들..헛뜨! 생각보다 많은걸^^;; 들고 가기 편하도롣 손잡이까지 만들어주시는 센쓰^^ 부산과 서울에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내가 간 날도 부산 등지에서 찾아오신 분들이 정원을 구경하고 술을 사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주도가로써의 느낌도 그러하지만 문화 공간 으로써도 좋다는 생각이다. 이 곳을 목적지로 하여 여행을 떠나도 좋을만 한 주도가라는 생각. 오늘 구한 막걸리들을 사이드박스 한 쪽 가득 옮겨담는데 배웅 해 주러 나오신 사장님께서 박스가 몹시 든든해 보인다며 즐거워 하신다. 알고 봤더니 젊은 시절 바이크 라이더셨더라는^^ 오늘 역시 해남을 통째로 식탁 위로 옮겨온 도파민홀릭 먼저.. 송우종명가의 옥천생쌀막걸리부터 시음에 나선다.
달콤한 바닐라의 아로마. 효모취는 전혀 없다. 한 모금 해 본다. 청량한 정도의 탄산미.. 헌데 뭔가 밍밍하다. 그리고 단촐하다. 달콤한데.. 달콤한게 전부인 듯 하다. 맛있다 맛없다는 개념이 아닌.. 맛에 레이어가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묽다. 후수를 너무 많이 타서 그런가? 몇 모금을 더 해 본다. 알 것 같다. 그렇구나.. 누룩의 풍미와 감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때문인 듯.. 효모취와 알콜의 묵직함을 싫어하나 술을 마셔야만 하는 유저라면 선택할지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술로써는 물론 음료로서의 접근도 그닥이라는 생각..
쌀(국산 80%, 수입 20%), 정제수, 정제효소, 종국, 아세설팜칼륨, 효모...
그러하다. 농진한 아로마... 진하다. 쌀막걸리 특유의 바닐라의 향도 농진하고.. 진한 효모취 마저 거북하지 않고 예쁘다. 지금껏 마셔온 막걸리들 중 효모취를 예쁘게 포장한 듯 한 느낌의 막걸리들이 간혹 있었으나.. 이 효모취는 다르다. 효모취 자체가 예쁘다. 밀도감이 느껴지나 은근하다.
한모금 한다. 미끄덩 하다. 몰입이 되게 하는 준수한 밀도감. 탄산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하고, 신맛, 짠맛, 쓴맛이 차례로 지나가고 달콤함이 남는다. 그리고 강한 바디감의 킥!
단맛이 매력적이다. 인위적이지 않다. 은근한.. 여성이 은근히 웃는 듯 한 미소같은 단 맛이다. 이거 정말 훌륭하다. 깜짝 놀랐다.
성분표를 살핀다. 정제수, 맵쌀(국내산)50%, 찹쌀(국내산)50%, 국, 누룩(밀), 무감미료
어떠한 감미료도 첨가치 않았음에도 자연스런 달콤함이 존재하는건 당도 높은 찹쌀을 사용해서이기 때문..
맵쌀만을 사용한 태인막걸리가 단맛이 전혀 없는 다소 마니악한 막걸리라면, 해창 막걸리는 당도 높은 쌀을 사용하여 마니악함에 달콤함의 레이어를 더한 느낌. 태인막걸리와는 또 다른 의미로 사랑스럽다.
거두절미. 맛나다. 이 막걸리에 별점 두개 준다. ★★☆ 잔에 따르는 느낌부터 힘이 있다. 묵직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시큼함에 어우러진 임펙트 있는 바닐라의 향. 그리고 예쁜 효모취. 해창의 효모취는 정말 사랑스럽다.
한모금 해 본다. 기분 좋은 상큼한 산미감과 당도. 당도는 작진 않지만 역시 자연스럽다. 신맛 짠맛 쓴맛의 복잡미묘함의 조화가 매우 좋다. 벨런스가 좋은 고급스러운 맛과 향기의 향연. 입 안에 머금으면 꽉 찬다. 꽉 차는 힘이 느껴진다. 바디감도 힘차다. 자사의 도수 6도짜리 막걸리보다 좀 더 밀도감이 있다. 당연한 예긴가?
성분표는 6도짜리와 같은 비율이다. 맵쌀과 찹쌀의 비율이.. 5대5.. 방금 전 시음한 6도짜리 막걸리를 다시 한 번 모금 해 본다. 아하 그렇군.. 9도짜리 막걸리에 후수를 좀 더 가미해 6도짜리 막걸릴 만든 듯 하다. 느낌이 그러하다.
6도의 막걸리가 마치 당당한 여성 같은 느낌이라면, 9도의 막걸리는 위풍당당하다. 제대로 매력적이다. 당찬 여성이 내 앞으로 성큼 한 걸음 내 딛는 느낌. 야! 이건 물건이다.
별 세 개 준다. ★★★ 잔에 따르는 느낌부터 남다르다. 뭔가.. 따르는 느낌 보다는 옮겨지는 느낌이다. 걸쭉하다.
향은 좀 더 은은하다. 시큼함은 잘 절제되어 있고 특유의 바닐라 향도 절제되어 있다. 어랏? 6도와 9도짜리 막걸리완 태생이 다른 느낌인데? 단순히 12도짜리 막걸리에 후수를 좀 더 넣어 9도짜릴 만든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목적으로 독립된 레시피로 만든 술 같다.
아로마는... 폭발하기 직전의 임계치에 이른 아슬아슬한 느낌.. 터지면 어떤 힘이 느껴질지 두근거리게 하는 느낌이다.
진중하게 한 모금. 묵직하다. 술이 혀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고급스런 신 맛이 우선 폭발한다. 굉장히 당당하다. 당당하게 신 맛. 짠 맛 쓴 맛을 내어놓는다. 당도도 상당하다.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고 고급지게.. 역시 당당하게 단맛을 내 놓는데. 좋다.
쌀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쌀가루와 누룩이 만들어 치환된 무언가가 주욱 밀려들어오는 느낌. 알콜 도수 12도.. 칼을 들고 겨누는 듯 한 날카롭고 무거운 알콜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술은 라이트하게 즐기는 막걸리가 아니다.(병 당 1만원 하는 가격도 그러하지만..)
성분표를 살핀다. 정제수, 맵쌀20%, 찹쌀80%, 국, 밀누룩, 효모.. 물론 무감미료..
역시 그렇구나.. 찹쌀의 비율을 자사의 9도 및 6도짜리 막걸리보다 더욱 높게 한.. 엄연히 다른 계보의 술. 찹쌀의 비중이 높은 만큼 더 당도가 높은 듯 하다.
고급스러움이 술로 태어난 듯 한 느낌. 별점 3개가 아깝지 않다. ★★★
해남엔 맛난 막걸리가 있다.
※ 도파민홀릭의 막걸리 시음 평은 매우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그야말로 개취에 따른 것이므로, 어떠한 공신력도 신뢰성도 없다는 점을 이 지면을 통해 밝힌다. 금일 순례 거리 276Km.. 흠.. 해남도 가까운 거린 아니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