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2018년에는 전라도 역사를 재조명하자

화이트보스 2018. 2. 1. 14:35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의 남도일보 칼럼

기사승인 2018.01.09  17:25:35

공유

- 2018년에는 전라도 역사를 재조명하자

2018년에는 전라도 역사를 재조명하자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2018년은 역사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전라도 천년과 임진왜란 종결 7주갑(420년)이다.

먼저 2018년은 ‘전라도’란 이름이 붙여진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1018년(현종 9년)에 고려 현종은 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전주 지역 강남도와 나주 지역 해양도를 합치고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 ‘전라도’라 하였다.

전라도 천년 역사를 되돌아보자. ‘전라도 방문의 해’에 걸맞게 ‘천년의 시간 여행과 인물 여행’을 하자. ‘천년의 시간 여행’은 10대 사건을 재조명하는 일이다. 예컨대 삼별초 항쟁(1270년), 황산대첩(1380년), 기묘사화(1519년), 기축옥사(1589년), 임진왜란 7년 전쟁(1592∼1598년), 나주괘서사건(1755년), 동학농민혁명(1894년), 한말의병, 광주학생독립운동(1929년),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등이다.

‘천년의 인물 여행’은 아시아와 한국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 100명을 선정하여 답사하는 일이다. 중국과 일본 등에 이름을 널리 남긴 이들을 비롯하여 한국을 움직인 학자·정치가·의병·종교인·문인·예술가 등을 총 망라하자. 이로써 전라도가 의향·예향·문향임을 재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18년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지 7주갑(420년)되는 해이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으로 임진왜란 7년 전쟁이 종결되었다. 노량해전은 순천 왜교성 전투의 끝판이었다. 1598년 8월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일본특사는 왜군 지휘관에게 11월 15일까지 조선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첩보를 접한 이순신은 11월 9일에 고금도를 떠나 순천에 이르러 해안을 봉쇄했다.

그런데 순천 왜교성에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나라 육군 장수 유정에게 왜성을 고스란히 넘겨주기로 하고 철수를 보장받았다. 또한 고니시는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에게 뇌물을 바쳐 협상을 하였다. 이 와중에 일본 척후선 1척이 남해로 떠났다. 이어서 고니시는 이순신에게도 뇌물을 바쳤으나 이순신은 격분했다.

한편 고니시의 구원 요청을 접한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고성의 다치바나 무네토라, 남해의 소 요시토시와 함께 500척에 1만 명의 구원군을 급히 편성하여 순천으로 출발했다.

11월 18일에 이순신은 진린에게 출전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진린은 이순신에게 왜군을 그냥 보내자고 답했다. 이순신은 ‘원수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결연함을 보이고 단독 출전하려고 하자 진린도 별 수 없이 따랐다.

11월 18일 밤에 이순신의 예견대로 노량에는 500여척의 왜선이 집결해 협공할 위세를 보였다. 470척, 1만5천명의 조·명 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은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라고 하늘에 빌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전투는 19일 새벽 두시 경부터 시작되었다. 이 날의 전투는 근접전이었는데 거의 천 여척에 달하는 함대가 깜깜한 밤에 서로 엉켜 싸웠다. 시간이 흐르자 왜군은 조명연합군의 화기에 견디지 못하고 퇴각했다. 왜군은 포구 관음포를 큰 바다로 나가는 수로로 생각하고 도망쳤다.

이순신은 관음포로 도주하는 왜군을 끝까지 추격했고 왜군도 포위를 뚫기 위해 사생결단 했다. 이 와중에 왜군 한 명이 이순신에게 조총을 쏘았다. 치명상이었다. 이순신은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절명했다.

2018년은 정유재란 2년간의 전라도 실태와 1598년 9월부터 싸운 순천 왜교성 전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전라도는 임진왜란 초기에는 ‘약무호남 시무국가’였지만, 정유재란 때는 양민들이 무참히 살육 당하고 노략질 당한 비참한 땅이 되었다.

노량해전은 왜교성에 갇힌 고니시를 구출하기 위해 순천으로 오는 왜군에 대한 선제공격이지, 일본으로 철수하는 왜군을 끝까지 추격하여 일어난 전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018년에는 전라도 역사를 재조명하였으면 한다. 이로써 전라도의 정체성(正體性)과 자긍심을 찾을 수 있고 법고창신(法古創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