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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속 흙집서 10년 소꿉놀이하다 하늘나라 간 남편

화이트보스 2018. 6. 10. 11:50



깊은 산 속 흙집서 10년 소꿉놀이하다 하늘나라 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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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사진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
10년 전 단돈 10만원으로 샀던 깊은 산속 토담집. [사진 송미옥]

10년 전 단돈 10만원으로 샀던 깊은 산속 토담집. [사진 송미옥]

 
10년 전 나는 벽과 지붕으로 바람이 숭숭 지나가는 깊은 산속 촌집을 단돈 10만원에 사서 고쳐 산적이 있다. 부뚜막이 있는 부엌, 그 옆에 붙은 방, 또 그 옆에 붙은 작은방이 일렬횡대로 길게 늘어선  33㎡ 정도 되는 전형적인 초가삼간의 집이었는데,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10년 전 10만원 주고 토담집 사 신식으로 개조 
이웃의 말을 빌리면 아들의 분가에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준 토담집이었다. 농사짓고 자식 낳아 살면서 돈을 벌어 도시로 나가고 집을 비워 둔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심란한 마음만을 짊어지고 빈손으로 내려간 우리에겐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옹골지고 단단한 느낌으로 다가와 살살 매만지면 아프던 몸도 함께 치유될 것 같은 기대도 있었다. 1년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아무 욕심 없이 바라보니 그 집도 크게 다가왔다.
 
집을 고치는 남편의 모습. [사진 송미옥]

집을 고치는 남편의 모습. [사진 송미옥]

 
작은 컨테이너에서 몇 날 며칠을 숙식하며 세월의 도배를 다 걷어내니 맨흙 벽이 울퉁불퉁하게 나왔다. 옛날 아버지의 손길로 흙칠을 하며 방 한 개를 완성하고, 집 앞 개울에 나가 돌을 주워 날라 아궁이가 있는 부엌을 신식 주방으로 만들었다. 주방 한쪽엔 한평 정도를 덜어 화장실을 넣고 나니 이보다 예쁜 집은 없을 것 같았다.
 
수로를 파서 하수구를 만들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도 잡아 식수로 쓰면서 가을이 오기 전에 작은 방까지 완성했다. 이 모든 것은 남편의 병환으로 걱정과 근심, 그리고 아픈 마음만 끌어안고 내려가 잡념을 버리기 위해 함께 한 작업이었기에 더 감동이었다.
 
완성된 집. [사진 송미옥]

완성된 집. [사진 송미옥]

 
집을 고치는 봄 동안엔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보며 희망을 이야기하였으며 여름엔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초록의 풍성함에 힘을 얻어 그 모든 잡념과 애환을 잊고 살았다.
 
가끔 흙이 툭툭 떨어지고 밤이면 쥐들이 보초를 서주는 어수선한 집이었지만 내 아이와 친구들은 그 공간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창문이 없는, 문풍지로 내다보이는 어스름한 달빛, 문을 열면 확 안겨드는 싸한 공기, 거기에 쏟아지는 별을 밤새 세었다.
 
소꿉놀이같이 10년을 그렇게 살다가 그 사람은 떠났다. 그 집은 살아 있는 동안이면 언젠간 지나칠 슬픔의 정거장이었다. 삶의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정거장을 향해 등을 떠밀고 그렇게 이끌려 홀로서기의 다짐으로 경북 안동 근교에 작은 집을 손수 또 지었다.
 
삶이란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번엔 마치 수십 채의 집을 지어본 것처럼 재밌는 노동이었다. 작은 주방엔 크기가 다른 냄비 몇 개와 밥그릇 몇 개만 넣을 공간을 만들고, 방 하나와 작은 거실을 꾸며 놓았다.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켤 때의 느낌은 외로움도 사치가 될 것 같은 설렘으로 새로웠다.
 
남편 떠난 후 안동 근교에 다락방 있는 작은 집 지어
완성된 집 앞 남편의 모습. [사진 송미옥]

완성된 집 앞 남편의 모습. [사진 송미옥]

 
나이가 들고 혼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가볍게 살자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짐만 갖고 나와서인지 이곳도 작지만 옹골진 집이다. 그래도 이곳은 내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한 작은 다락방이 있다.
 
할머니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 꾸벅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쪼르르 기어 올라가는 모습이 다람쥐같이 이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는 참새같이 쪼잘 대는 목소리가 들려 올 때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거기서 아이들은 보물섬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가구 하나 없는 텅 빈 거실의 한쪽 벽면엔 내가 꼭 만들고 싶었던 나만의 갤러리가 있다. 스쳐 지나기만 해도 그 속의 이쁜 가족들이 “하하” “호호” 웃음을 짓게 해준다.
 
나이 들어 보니 경험은 좋은 대학을 나온 것과 같고, 가장 멋진 재산은 추억인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의 다락방이 그러했듯이 손주들에게 먼 훗날 어린 시절 숨어 있기 좋은 방에서의 이야깃거리가 추억으로 남길 기대해본다.
 
내 희망은 건강이 허락하고 로또 같은 재력이 생긴다면 방 서너개에 거실이 중앙에 있는 셰어 하우스를 지어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며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집을 한 채 지어보는 게 꿈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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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깊은 산 속 흙집서 10년 소꿉놀이하다 하늘나라 간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