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은 꽃가루받이를 통해 생태계를 유지하고, 사람에게는 꿀도 준다.
꽃가루받이를 통해 꿀벌이 제공하는 경제적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50조 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 세계에는 2만 종가량의 벌이 있다.
그 중에서 밀랍으로 벌집을 짓고 꿀을 모으는 꿀벌은 아피스(Apis) 속(屬)의 10여 종뿐이다.
사람이 기르는 꿀벌로는 동양의 꿀벌인 토종벌(학명 Apis cerana)과 서양벌(Apis mellifera)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토종벌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 고구려 시대부터이고, 서양벌은 조선 시대 말 고종 때 독일인 선교사가 들여오면서 기르기 시작했다.
이런 꿀벌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0년 이어진 토종벌의 위기
하지만 농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벌통을 소각한 데에는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이 병에 대해 정부가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항의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뚜렷한 해법이나 예방책이 없어 농가는 완전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육각형의 벌방 속에서 자라는 꿀벌 애벌레의 소화기관에 바이러스가 침입해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벌방의 뚜껑이 쭈글쭈글해지고 감염된 애벌레는 부어오르면서 죽게 된다.
낭충봉아부패병은 토종벌 농가에는 끔찍한 재앙이다.
김대립 전국한봉협회 한봉 복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낭충봉아부패병도 제2종 법정 감염병이고,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살처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과는 달리 살처분해도 정부에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95%가 사라진 토종벌의 재앙
2008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고, 2010년 전국으로 번진 낭충봉아부패병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낭충봉아부패병이 퍼지기 전인 2010년 전국 토종벌 벌통 수는 42만여 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6년에는 전국 토종벌 양봉 농가들은 벌통 숫자가 1만개(2%)로 줄었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회복됐는데도 3만~10만 통 수준이다. 여름철에 10만 통 정도로 늘어났다가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면서 병이 퍼지고 벌이 죽어 3만 통으로 다시 줄곤 한다.
그러다 보니 토종벌 농가도 과거 2만 가구에서 이제는 300가구 정도로 줄었다.
반대로 벌통 하나의 값은 20만원에서 이제는 50만~70만원으로 올랐고, 한때 1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농식품부는 2010년 말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하고, 2014년까지 30만 통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토종벌 종 복원 사업도 추진했다. 2011~2016년에는 토종벌 보존을 위해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새로 토종벌통을 분양받는 농가에는 벌통 하나당 40만원을 지원했고, 농가에서는 10만 원 정도만 자부담하면 됐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사업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진행한 복원 사업이 오히려 질병 확산을 부추겼다는 비판마저 제기됐다.
양평군에서 토종벌을 기르는 홍정석(54·여·전 경기도의원) 씨는 “정부 지원과정에서 감염된 벌을 제대로 가려내지 않고, 보급만 장려하는 바람에 오히려 병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농민들 사이에서는 병에 걸린 벌통에서도 꿀을 얻기 위해 내버려 두거나, 감염된 벌통을 거래하기도 한다. 병을 근절하지 못하는 원인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는 토종벌 종 복원 사업도 중단했다. 워낙 토종벌 감염이 심해 분양을 받으려는 농민이 크게 줄면서 배정된 예산도 다 못 쓰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농가도 크게 줄었고, 피해도 더는 늘어나지 않고 만성 질병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농가에서 관리를 소홀히 하면 퍼지고,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토종벌 대신 서양벌 양봉 숫자가 2015년 말 현재 전국에 196만3000통(2만2000여 농가)이나 있기 때문에 토종벌이 사라져도 꽃가루받이 등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와 일부 전문가의 인식도 작용했다.
서양벌 양봉 농가의 밀도(단위면적당 숫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토종벌 사라지면 생태계도 '흔들'
서양벌보다 크기가 작은 토종벌은 꽃 크기가 작은 야생화, 멸종위기종의 꽃가루받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싸리꽃 같은 경우 토종벌은 꽃가루받이할 수 있지만 서양벌은 덩치가 커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토종벌이 전체 꽃가루받이의 25% 정도는 차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양벌에만 의존할 경우 꽃가루받이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면 토종벌 자체가 자칫 사라져버리게 되고 생태계에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안동대 식물의학과 정철의 교수는 “토종벌은 한반도 자연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야생 멸종위기 식물의 꽃가루받이에 기여하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종벌이 사라지면 꿀벌에 꽃가루받이를 의존하지 않는 식물 종이 더 늘어나면서 생태계가 바뀔 수도 있다.
정 교수는 “서양벌은 산림과 농경지 경계부에서 양봉이 이뤄지지만, 토종벌은 산속에서 이뤄지는 게 보통”이라며 “토종벌은 육식성 곤충과 새들의 먹이가 되는 등 산속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말벌이 도심에 자주 출몰하는 것도 먹이가 되는 토종벌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정 교수는 추정했다.
서양벌의 경우 경제성에 맞춰 장소를 옮겨가면서 양봉을 하지만, 토종벌은 보통 한 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기른다.
토종벌은 벌통 입구를 10㎝만 틀어놓아도 집을 못 찾을 정도라서 벌통을 옮겨 다니며 기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토종벌 살릴 방법 아직은 있다
낭충봉아부패병 청정지역을 지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청정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의 농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오염지역이란 낙인이 찍힐 경우 벌꿀 등을 제값에 팔지 못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양벌이 토종벌이 모아 놓은 꿀을 훔쳐가기 때문에 토종벌 벌통에서 반경 5㎞ 내에는 서양벌을 기르지 않아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낭충봉아부패병에 강한 토종벌을 보급할 계획이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이 지난해 개량한 품종은 감염 때 생존율이 79.1%로 일반 토종벌 생존율 7%보다 10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감염된 토종벌을 살처분이나 소각하고, 건강한 벌만 증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처분·소각하려면 소·돼지 구제역처럼 정부가 농가에 보상을 해줘야 하지만 정부는 검토만 하고는 시행은 하지 않았다.
김대립 대책위원장은 “토종벌을 지킬 방법이 아직 있다"며 "종 복원 사업이 문제가 많다고 중단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에서도 꿀벌 사라져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해마다 30~40%의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2035년쯤 꿀벌이 지구 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많은 학자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매달렸다.
바이러스나 곰팡이, 응애가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고, 전자파·농약 탓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또, 농경지에서 단일 작물을 재배하면서 잡초를 제거해 꿀벌들이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으로 제시됐다.
대기오염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대기오염이 심해지면 벌들이 꽃향기를 제대로 맡을 수 없고, 특히 한 가지 꽃에만 의존하는 벌의 경우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먹이를 얻지 못하면 벌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 수 있다. 집단 크기가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먹이 찾기와 알 기르기, 방어 등 다양한 역할 분담이 가능하고, 집단을 유지하기도 쉽다. 집단 크기가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집단 내 협력이 무너지고, 결국 집단이 유지되지 못하고 붕괴한다.
말벌의 공격을 받은 토종벌은 말벌을 에워싼 뒤 날개 근육을 움직여 열을 발산해 열로 태워 죽이는 방식으로 방어한다. 그런데 집단이 2만5000마리 이상은 돼야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세력이 좋은 집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파종하기 전에 종자를 처리하는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라는 농약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13년부터 네오니코티노이드 농약 3종을 꿀벌이 찾는 화초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했고, 지난 4월 야외에서는 이들 농약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올 연말부터는 벌과 접촉이 없는 온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군집 붕괴가 어느 하나의 원인에 의해 나타나기보다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하나하나는 영향이 적더라도 상승작용을 일으켜 꿀벌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미국 연방 기구인 '어류 및 야생동물국(Fish and Wildlife Service)'에서는 2016년 9월 말 꿀벌은 아니지만, 하와이 토종벌 7종을 미 연방 '멸종위기종' 리스트에 벌 종류로는 처음으로 포함했다. 개발로 인한 시식지의 감소, 산불, 외래 곤충과 식물의 유입, 가뭄·허리케인과 같은 기상재해 등으로 인해 토종벌들이 멸종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들 하와이 토종벌은 하와이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식물의 꽃가루받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보호가 필요하다고 미국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새 집을 찾는 꿀벌의 집단 지능
분봉의 준비 단계로 여왕벌이 낳은 알에 로열젤리를 먹여 딸 여왕벌을 기르는 일이다. 분봉할 때는 새 여왕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 여왕벌과 기존 벌 집단의 3분의 1 정도는 옛집에 남겨두고, 옛 여왕벌과 나머지 일벌이 떠난다.
새 여왕벌이 자라는 동안 어미 여왕벌은 일벌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몸무게가 25% 정도 줄어든다. 이 다이어트를 통해 비행이 가능한 몸매를 갖추게 된다.
옛집을 벗어난 벌 무리는 멀리 이동하지 않고 덩어리를 이룬 채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가까운 임시 거처, 즉 나뭇가지에 붙어 지낸다.
이 사이 수백 마리의 정찰대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집터 후보지를 찾아낸다. 후보지를 찾아낸 벌들은 나머지 벌들의 지지를 끌어낸다. 후보지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이 선택되면 함께 이동한다.
좋은 후보지를 발견한 정찰 벌은 임시 거처로 돌아와서는 숫자 8 모양으로 비행하는 이른바 ‘8자 춤’을 추면서 위치를 보고한다.
8자 춤은 목표지점의 방향과 거리를 동료에게 알려줄 때 사용한다. 후보지의 가치가 뛰어날수록 정찰 벌은 8자 춤을 더 많이 반복한다. 탐색한 곳이 마땅치 않으면 아예 보고하지 않는다.
벌들은 벌집 후보지를 결정할 때도 8자 춤을 추지만, 평소에는 꿀을 얻을 수 있는 꽃의 위치를 동료들에게 알릴 때 사용한다.
이렇게 8자 춤을 계속 추면 다른 정찰 벌이 그 보고 내용을 확인하러 후보지를 방문하게 된다. 후보지를 다녀온 벌들도 자신의 평가 결과를 표시한다. 지지할 경우 동일한 모양의 8자 춤을 추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특정 후보지에 대한 지지가 퍼진다. 결국 모든 정찰 벌들이 한 후보지를 가리키는 8자 춤을 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벌 집단 전체가 최종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 벌 집단이 유지가 되려면 여왕벌의 페로몬(pheromone)이 필요하다. 페로몬은 동물들 사이에서 번식 등 성적 행동이나 집합 등 다양한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호물질이다. 여왕벌이 분비한 페로몬은 일벌 전체로 계속 전달된다. 페로몬이 전달되지 않으면 일벌은 더는 무리를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 꿀벌 사회도 유지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