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여지없이 퀸사이(Quinsai)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도시이다.”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中)
퀸사이는 지금의 중국 항저우입니다. 마르코 폴로가 방문하기 30년 전 남송의 수도로서 인구 100만이 살던 대도시였습니다.
14세기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의 발달상에 감탄했습니다. 동시기 유럽에서 상업이 가장 발달한 베네치아 출신이었음에도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은 훨씬 높은 단계에 도달한 선진국이었습니다.
![송나라 휘종(徽宗·재위 1100~1125) 시기 궁중생활과 미식문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회도(文會圖)’의 일부. 왕과 귀족들의 연회 장면. [사진제공=교양인]](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7/29/4c1033bb-b1bf-4ca0-972d-b28508f3d5e3.jpg)
송나라 휘종(徽宗·재위 1100~1125) 시기 궁중생활과 미식문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회도(文會圖)’의 일부. 왕과 귀족들의 연회 장면. [사진제공=교양인]
송은 원(몽골)·금(여진)·요(거란) 등에게 시달리며 돈으로 평화를 산 유약한 국가의 대명사 같은 존재죠.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언뜻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북송 시대 인구는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1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덕분에 상비군만 100만 명 이상을 유지했죠. 당대 세계에서 어깨를 겨룰 상대가 없는 대국임에 분명했습니다.

11~12세기 동아시아의 정세
요나라의 정예병은 약 10만 명이었고, 북송이 멸망했던 ‘정강의 변’ 사건 당시 수도를 포위했던 금나라 군사는 6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몽골도 마찬가지인데요. 세력이 가장 강력했을 때 전체 인구가 약 100만~20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송나라의 50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했던 거죠.
이런 압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국’이 건국 시기부터 일방적으로 주변 ‘소국’들에게 질질 끌려다닌 것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TV 드라마 '마르코 폴로' 시즌1. 몽골군은 송나라 군대보다 훨씬 적은 수로 공략했다. [사진=넷플릭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7/29/f2a4bf34-9f67-46fe-8287-db3d8833678c.jpg)
TV 드라마 '마르코 폴로' 시즌1. 몽골군은 송나라 군대보다 훨씬 적은 수로 공략했다. [사진=넷플릭스]
송나라의 산업 발전은 당대 유럽 어느 국가도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가령 1078년 송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12만5000t이었는데, 이는 1788년 영국 산업혁명 당시 철 생산량을 약간 밑도는 수준입니다.
![송나라시대 과학자인 소송이 1090년에 발명한 천문시계. 당대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7/29/e44628e5-9646-485c-b2c4-be379b0b3d07.jpg)
송나라시대 과학자인 소송이 1090년에 발명한 천문시계. 당대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중앙포토]
이같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강남 개발이었습니다. 송대부터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위에서 언급한 수차의 개발로 계단식 논을 통한 쌀의 집약적 재배가 가능해졌습니다.

북송의 수도인 개봉을 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의 일부.
옥스포드 너필드 컬리지의 스티븐 브로드베리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송나라는 1020년에 1인당 GDP가 1000달러(1990년 가치 기준)를 돌파했습니다. 영국이 1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로부터 400년 가량이 지난 1400년대 부터입니다.

송나라와 영국(잉글랜드)의 1인당 GDP 격차. Stephen Broadberry, Hanhui Guan, and David Daokui Li,『CHINA, EUROPE AND THE GREAT DIVERGENCE: A STUDY IN HISTORICAL NATIONAL ACCOUNTING, 980-1850 』에서 인용.
과연 무엇이 송나라의 산업혁명 진입을 막았을까요?
시내암이 쓴 『수호지』는 사회에서 이탈한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에 산채를 만들어 정부 관료층에 대항한다는 내용입니다. 하필 중국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풍족했던 송대를 배경으로 『수호지』가 탄생한 배경을 볼까요.

중국 CCTV가 제작한 드라마 '신 수호전'.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부러워한 지 약 500년 뒤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중국이 산업혁명에 진입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춘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중국이 500년 전에는 대단히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후 흐름을 지속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과 그렇지 못한 중국의 차이를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애덤 스미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7/29/bab5ee00-03d6-4774-a234-7ca469ce913f.jpg)
애덤 스미스 [중앙포토]
“중국은 사법정책의 집행에서 공정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결과, 성장 잠재력을 잃고 정체되고 말았다. 국민들이 재산의 소유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계약이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지불할 능력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채무를 변제하도록 강제할 수 없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상업과 제조업이 장기적으로 번성한다는 일은 거의 발생할 수 없다.”
“영국에서 선진적으로 상업의 자유와 형평성 있는 사법 집행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경제적 측면에서 경제 주체들에 의한 근면과 생산적 자원개발 노력을 자극할 수 있었으며, 이 점이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의 토대로 작용했다.”
이들은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를 도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도덕으로 법률을 대신하려는 경향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유재산 보호 같은 민법을 발달시키기보다는 천리와 인욕, 선과 악 등으로 모든 것을 구별했기 때문에, 실제 현실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송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
“상인들이 관리가 될 수 없도록 한 것은 탐욕스럽고 비루한 풍속을 방지하고 진실한 기풍을 북돋우기 위한 것(『염철론』)”이라는 관념은 오랫동안 중국 관료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사익 추구는 경계됐으며 최대한 억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경제 정책은 정확한 규정이나 법령에 의해 좌우된 것이 아니라 당대 정권의 도덕적 기준에 맞춰 재단됐습니다.
가령 남송 멸망 직전엔 재상이었던 가사도는 일정 면적 이상을 보유한 계층의 토지를 사실상 몰수해 국방비로 전용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듣기엔 달콤하고 명분도 그럴듯했지만, 지속가능한 정책은 아니었죠. 사유 재산을 뺏긴 민심도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결국 남송 정부는 가사도를 유배 보내고 정책을 되돌렸지만, 이렇게 우왕좌왕하느라 국력이 약화돼 5년도 버티지 못하고 몽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가사도는 지금까지 남송 멸망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송대의 3대 간신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국 CCTV가 제작한 드라마 '신 수호지'
경제는 유사 이래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서민들의 삶은 생활 여건은 갈수록 피폐해졌습니다.
왕안석의 변법 실패 등 의욕이 앞선 개혁안이 좌초돼 혼란을 가중시켰고,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울 뿐 현실 정책에선 무기력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레이 황은 송나라의 쇠퇴를 놓고 “도학가들의 사상은 좁게는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강조했고, 개인의 사적인 이익과 관련된 개념을 말살했다. 오늘날 중국의 민법 발달이 미진하고 도덕관념으로 법률을 대신하는 경향을 보이는 건 송대의 유학자들과 무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송나라 이후 중국은 약 700년간 같은 수준을 맴돌았습니다. 아니,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1인당 GDP는 오히려 뒤로 후퇴하지요. 그만큼 송나라의 도학 발달이 민생에 남긴 후유증은 컸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탈원전, 소득주도 성장론 등을 놓고 다시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도덕적, 당위적 목적으로 추진할 뿐, 경제적 타당성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 1년째, 원전 없이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하냐를 두고 양 진영의 대립이 첨예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7/29/6cf5187f-542e-4b5f-a3c5-403eceea79ef.jpg)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 1년째, 원전 없이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하냐를 두고 양 진영의 대립이 첨예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중앙포토]
그 연장 선상에서 참여연대 출신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통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간 갈등설도 끊이지 않고 있고요.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과 관계자들이 2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를 방문, 2018년도 최저임금 이의제기서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실제로 미국에서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그의 출신지인 ‘아칸소 사단’이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요. 조지 부시 정부 때는 소위 '네오콘'이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었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한 호프집에서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의 시간을 보내며 건배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청년 구직자, 경력 단절 여성, 중소기업 대표, 편의점 점주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학가들은) 자신이 과거에 외우고 익힌 시서(詩書)의 신념들을 증명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이 기사는 Stephen Broadberry, Hanhui Guan, and David Daokui Li,『CHINA, EUROPE AND THE GREAT DIVERGENCE: A STUDY IN HISTORICAL NATIONAL ACCOUNTING, 980-1850 』, 레이 황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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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산업혁명 500년 전 영국보다 잘 살았던 송나라, 왜 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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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ko**** 2018-07-29 23:28:58 신고하기
댓글 찬성하기80 댓글 반대하기5압도적인 경제력이 있다한들 자기나라 지키겠다는 애국심과 령이 서지 않으면 전쟁은 하나마나 결과는 백전백패지. 미 해병대 훈련 모습봐라, 얼마나 가혹한지. 인권따지고 가혹행위없애라는 말이 군대는 예외지. 국가의 군대는 적을 죽이는 맹견 사냥개를 키우는 조직이고 이들이 제역할을 못하고 패배하면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모두는 적에 손에 맡겨지고 학살당하는 비극을 맛보게되는거지. 지금 한국군 훈련이나 정신력이 과연 전쟁나면 목숨걸고 명령따라 적탱크에 맨손으로 기어올라 휘발유병 집어넣던 50년 한국전시 국군병사 나올수 있나? 군은 강군을 키우기 위해 군대에는 인권침해가 불가피한거다. 적을 단호히 죽이는 교육받는다는게 인권측면에서 맞아? 그게 싫다고 적당히훈련하고 항복하고 노예로 살고 학살 당할래? 군대서 고생한 제대군인 군가산점이 불법이라는 나라에서 무슨 강군 애국심 기대 하랴? 여성이나 법관이나 민초들 아들들 고생하며 나라지킨덕에 스펙쌓아 법관되고 사회생활한건데 그걸모르니 배은망덕하지
답글달기송나라 실제 문화적인 성리학 덕분에 상업, 과학, 정치재도등 크게 발전했고요. 프랑스 혁명의 사상가 볼테어도 배운것입니다. 송나라가 망한 근본원인은 문약함이라 할수 있고요. 몽고만 없어도 상당히 더 오래 갔을것 같습니다. 분배와 권력을 제한하던 성리학은 많이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동양문명의 상당부분은 송나라에서 나옵니다. 성리학은 그리 나쁜 학문이 아닙니다.
답글달기- wise**** 2018-07-29 22:57:22 신고하기
댓글 찬성하기27 댓글 반대하기1역사에서 배우고 생각할 거리를 다듬어 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지적 작업인데, 오랜만에 읽고 다시금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볼만한 기사입니다. 다만 같은 역사적 결과를 두고도 해석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많이 자극합니다. 이런 글 많이 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답글달기- sic0**** 2018-07-29 21:58:56 신고하기
댓글 찬성하기33 댓글 반대하기4정확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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