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덕수궁의 밤, 조선의 시간을 걷다. [중앙일보] 입력 2018.09.14 00:00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댓글 0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화이트보스 2018. 9. 14. 15:13


덕수궁의 밤, 조선의 시간을 걷다.

  
  
덕수궁 중화문 /20180912

덕수궁 중화문 /20180912

짙푸른 이내가 궁을 덮습니다. 
서양에선 이즈음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어스름한 궁에 조명이 바닥에서 오릅니다. 
하늘이 지은 푸름과 사람이 지은 붉음이 한데 어울리는 시간으로 걸어갔습니다. 
  
  
  
덕수궁 중화전 /20180912

덕수궁 중화전 /20180912

손톱 같은 달이 가녀리게 떴습니다. 
그러고 보니 음력 3일(9월 12일)입니다. 
초승달입니다. 
  
  
  
  
덕수궁 중화전 /20180912

덕수궁 중화전 /20180912

덕수궁 중화전 팔작지붕의 처마를 올려다봅니다. 
조선 궁궐의 마지막 정전입니다.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하며 황제 양위식을 했던 쓰린 시간을 알기에 
짙푸름이 더 아립니다. 
  
  
  
덕수궁 석어당과 석조전 /20180912

덕수궁 석어당과 석조전 /20180912

요즘 화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그렇습니다. 
덕수궁은 그 시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공간입니다. 
  
  
  
  
  
덕수궁 석조전 /20180912

덕수궁 석조전 /20180912

멀고, 낯설며, 두려웠던 조선의 시간을 따라 걸었습니다. 
석조전은 무엇보다 낯섭니다.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석조 건물입니다.   
  
  
  
  
  
덕수궁 배롱나무 /20180912

덕수궁 배롱나무 /20180912

석조전 앞 배롱나무가 피운 꽃은 붉디붉습니다. 
오래도록 피기에 '목백일홍'이라고도 합니다. 
어스름에서조차 도드라진 붉음, 
조선의 시간에서도 피었을 붉음일 겁니다. 
  
  
  
  
  
  
덕수궁 정관헌 /20180912

덕수궁 정관헌 /20180912

정관헌입니다. 
‘조용히 내려본다’는 의미라 합니다. 
다과를 들거나 연회를 열고 음악을 감상하는 목적으로 지은 회랑 건축물입니다. 
유난히 가배(커피)를 즐겼던 고종황제가 쓴맛을 느리게 삼키며 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덕수궁 유현문 /20180912

덕수궁 유현문 /20180912

유현문입니다. 
고종황제는 예순에 딸 덕혜옹주를 얻었습니다. 
  
금지옥엽 딸 손 잡고 유현문을 통해   
유치원 길 바래다주었다는 해설사의 설명에 먹먹해졌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 다니라는 유현문,  
황제의 간절한 바람이 담겼을 문입니다. 
  
  
  
  
  
덕수궁 뒷길 /20180912

덕수궁 뒷길 /20180912

덕수궁 뒷길/20180912

덕수궁 뒷길/20180912

  
궁 뒷길입니다. 
저 길로 나아가면 미국, 영국, 러시아 공사관이 있었습니다. 
열강의 틈에 낀 그 시절의 이야기,   
아픈 역사를 지켜봤을 나무는 어느새 아름드리가 되었습니다. 
  
  
  
  
  
  
덕수궁 은행나무 뿌리 /20180912

덕수궁 은행나무 뿌리 /20180912

아름드리 은행나무 뿌리입니다. 
오죽 답답했던지 뿌리가 땅 위로 나왔습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 듯합니다. 
  
  
  
  
  
  
덕수궁 함녕전 /20180912

덕수궁 함녕전 /20180912

함녕전입니다. 
고종의 침전이기도 했으며, 예서 승하했습니다. 
  
오가는 이들이 하나같이 휴대폰을 꺼내 듭니다. 
너나없이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그들이 기록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이야기일 겁니다. 
  
  
  
  
  
덕수궁 석어당 /20180912

덕수궁 석어당 /20180912

석어당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 갔던 선조가 돌아와 임시로 머물렀던 행궁 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궁인데 단청이 없습니다.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단청하지 않았다는 게 해설사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멀고 낯설고 두려운 시간은 반복되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20180912

덕수궁 돌담길/20180912

덕수궁 전경 /20180912

덕수궁 전경 /20180912

궁을 나와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왼편에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이 있습니다. 
그곳 13층에 전망대가 있습니다. 
(궁의 야간개장이 9시까지이고 전망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궁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지나왔던 조선의 길과 이야기가 오늘의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덕수궁의 밤, 조선의 시간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