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현대의 십승지다. 핵 분쟁이나 테러리즘, 소요 등의 위험이 거의 없다고 자랑한다. 빼어난 자연 경관과 평온한 분위기에 이끌려 뉴질랜드를 자주 찾는 해외 부호들이 많다. 이들은 아예 현지 주택을 구입해 별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 대표적이다.
뉴질랜드 전체 주택거래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다. 일부 대도시 부동산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오클랜드 도심지역 주택의 20%, 퀸스타운 주택의 10% 정도가 외국인 소유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오클랜드 집값이 75%나 뛰어오른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집값 폭등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뉴질랜드 성인의 자가소유율은 1991년 50% 수준에서 최근 25%로 뚝 떨어졌다. 셋집도 구하지 못해 노숙하는 홈리스(homeless)가 크게 늘어났다. 돈 많은 외국인들 때문에 뉴질랜드 국민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식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정부가 나섰다. 뉴질랜드 의회는 지난 8월 비거주 외국인의 기존 주택 구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뉴질랜드 노동당 정부는 "더 많은 뉴질랜드인들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뤄야 한다"며 "우리가 우리 땅에서 세입자로 살 수는 없다"고 했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주기는 했다. 중국에 이어 두번째 ‘큰 손’인 호주는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이웃 나라와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다. 대규모 신축 아파트에 대해서도 전체 물량의 60%까지 외국인이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신축 아파트 구입을 막으면 당장 공급 절벽이 나타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완화되기는 했지만 선진국에선 보기 드문 강력한 규제다. 정책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외국인 직접투자와 신규 주택 건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애초 엉뚱한 과녁을 겨냥했다는 비판도 있다. 뉴질랜드 집값 폭등에 외국인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주원인은 아니다. 세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집값 급등의 근본 원인은 저금리 체제로 돈이 넘쳐나는 데 있다. 하지만 집값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국 부동산 정책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서울 집값을 놓고 말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오를 만 하니까 오른 것이다. 서울 아파트 값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크게 하락했다가 박근혜 정부 때 서서히 올라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지역과 평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8~9년 정도 제자리 걸음을 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경제는 꾸준히 2~3%대 성장을 했고, 소득도 늘어났다. 사회 전체적으로 고가 주택 구입 여력이 커졌다. 그런데 강남 아파트값은 8~9년전 수준에 머물러 상대적으로 값이 싸졌다. 계기만 주어지면 수요가 분출하고, 값이 오를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아니었더라도 서울 집값은 상당히 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정부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 정부도 주택 가격 상승은 거의 전적으로 ‘투기적 수요’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돈줄 조이고, 세금 올리며 ‘가수요’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공급은 뒷전이었다.
집값 상승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소득 증가에 따라 새 집, 좋은 집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외면했다. 1주택자가 더 큰 집으로 갈아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집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무시했다.
노무현 정부 때 찔끔찔끔 대책을 내놓았다가 내성(耐性)만 키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처음부터 강공으로 나왔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과거 정책으로 보란 듯이 성공해 참여정부의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투기 대책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 양질의 주택 공급이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비롯해 더 근본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 엉뚱한 과녁을 겨냥한 것이다. 정책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실수요자들을 자극했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공포와 조바심이 ‘미친 집값’으로 폭발했다.
정부는 최근 내놓은 9.13 대책에서 공급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정책 기조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투기적 가수요 차단에 집중하고 있다.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단기적으로 먹히더라도 장기 효과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허깨비와의 싸움’으로 힘만 빼면서 또다른 위기의 불씨를 키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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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7/2018091702332.html#csidx42726b0565c2666885c58e9abc619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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