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티베트

세계의 지붕’ 티베트 변신 현장을 가다 ‘세계의 지붕’이란 별명이 붙은 티베트. 중국에선 ‘시장(西藏)’으로 불리는 곳이다. 우리 인식 속 티베트

화이트보스 2018. 9. 18. 10:34


세계의 지붕’ 티베트 변신 현장을 가다
‘세계의 지붕’이란 별명이 붙은 티베트. 중국에선 ‘시장(西藏)’으로 불리는 곳이다. 우리 인식 속 티베트는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갈등의 땅’이다. 간혹 터지는 민족 분규가 국내 언론에 비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먼 ‘부처의 땅’ 티베트, 그곳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한중우호협회(회장 박삼구)가 주관한 협회 방문단의 일원으로 티베트의 중심 라싸(拉薩)를 찾아 그 변신을 살펴봤다.   
  

라싸에 등장한 창업·혁신 슬로건
대학에는 최첨단 빅데이터 센터

인도와 네팔로 뻗는 칭장철도
라싸는 일대일로 첨병 도시로

가정 거실에 걸린 시진핑 초상화
신의 땅에 스며드는 중국을 상징

3박 4일의 일정.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포탈라궁도, 부처님의 12세 등신불이 있는 대조사(大昭寺)도, 거리를 채우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인파도 아니었다. 필자의 뇌리에 강렬한 충격을 안긴 건 마지막 날 방문한 시장(西藏)대학이었다. 
  
‘신(神)의 땅’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 장족 티베트인의 정신적 고향인 라싸 포탈라궁(위)의 모습이다. 시장(西藏)대학에 빅데이터 센터(아래)가 구축되는 등 티베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다. [한우덕 기자]

‘신(神)의 땅’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 장족 티베트인의 정신적 고향인 라싸 포탈라궁(위)의 모습이다. 시장(西藏)대학에 빅데이터 센터(아래)가 구축되는 등 티베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다. [한우덕 기자]

학교 담당자는 방문객 일행을 전산센터로 이끌었다. 벽면에는 대형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었고, 스크린에는 수치가 계속 바뀌고 있었다. 원형 그래프가 나타나는가 하면, 막대 그래프가 뜨기도 했다. “무슨 숫자냐?”라는 질문에 학교 담당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티베트의 현 관광 상황을 보여주는 빅데이터 시스템이다. 관광객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각 관광 사이트별로 몇 명의 여행객이 있는지, 이들은 어디서 왔는지, 성별은 어떤지, 어디서 묵는지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렇게 모인 자료는 빅데이터로 축적된다.” 
  
이는 마치 인터넷 쇼핑회사인 징둥(京東, JD.COM)의 베이징 빅데이터 센터나 세계 제2위 온라인 여행 예약사이트인 씨트립의 상하이 전산센터를 연상케 했다. 물론 규모는 차이가 있었지만,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구조는 다르지 않았다. 순간 티베트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필요해 이런 빅데이터 센터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국 ICT 기술의 현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놀랍기만 했다. 중국의 오지 중에서도 오지에 있다는 시장대학에 제4차 산업혁명의 총아라는 빅데이터 센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요 여행지에 관광객이 몇 명이나 있는지, 외국 관광객은 주로 어디에 모여 있는지,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아무런 실시간 정보도 갖고 있지 못한 한국의 상황과는 너무 대비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라싸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도로변 입간판에 익숙한 표어가 버스 창을 지나간다. ‘大衆創業 萬衆創新(대중창업 만중창신)’. 리커창 중국 총리가 창업과 혁신을 주창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라싸 경제개발구의 페이강 부국장은 “개발구 내 기업 약 5200개 중 3분의 2 정도가 기술 관련 벤처기업”이라며 “중국의 다른 지역 못지않게 라싸에서도 창업 붐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중앙정부의 정책은 이렇게 티베트에 파고들고 있고, 티베트의 경제지도를 바꿔가고 있었다. 
  
라싸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바로 중국 지도자들의 사진이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의 얼굴이 함께 나와 있는 대형 간판이다. 이렇듯 당은 티베트인들의 의식마저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당의 이념은 돈과 함께 내려온다. “중앙정부는 티베트의 재정에 손대지 않는다. 여기서 거둬들인 세금은 티베트에서 다 쓰도록 한다. 장족 학생들에게는 학비를 면제해주고, 기업 대출금리는 기준금리보다 2%포인트 싸다. 심지어 시진핑 주석은 베이징 시 정부 조세수입의 1000의 3을 티베트로 보내도록 특별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쥐젠화 시장자치구 외사판공실 서기). 
  
돈의 흐름을 알려면 부동산 시장을 보면 된다. 라싸는 지금 건설 중이다. 문물 보존지역을 제외하면 여지없이 크레인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시내에서 나와 개발구로 가는 길에서는 승용차로 3분 정도를 달려도 끝나지 않을 정도로 건설현장이 이어지기도 했다. 아파트가 신축되고 있고, 사무실이 올라가고 있다. 아파트 분양 사무실이 있어 들어가 봤다. 직원에게 ‘잘 팔리느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평방미터(㎡)당 8000위안 정도 한다(우리 식으로 치자면 평당 440만원꼴). 아직 싼 수준이다. 티베트에 돈이 몰리면 갈 곳은 라싸밖엔 없다. 지금 사두면 무조건 오른다. 외지인이 몰려들면서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신(神)의 땅’ 티베트에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진 것은 2006년 7월부터다.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에서 라싸에 이르는 전장 1956㎞의 칭장(靑藏)철도가 뚫린 것이다. 해발 2261m인 시닝에서 출발한 기차는 최고 해발 5231m의 고지까지 오른 뒤 3700m의 라싸에 이른다. 말 그대로 천로(天路)다.
  
지금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도시에서 라싸로 연결되는 철도가 운행 중이다. 올 7~8월 여름 휴가 때만 약 286만 2000여 명의 여행객이 칭장철도를 타고 라싸를 방문했다. 현재는 제2의 ‘천로’가 건설 중이다. 시닝으로 돌아오지 않고,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라싸로 올라오는 길이다. 그 길이 뚫리는 날 ‘관세음의 땅’은 더 빠르게 속세로 변할 것이다. 
  
철길은 이제 티베트를 넘어 네팔과 인도 등 남아시아로 뻗어 나갈 기세다. 티베트가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의 첨병으로 등장한 것이다. 원래는 불경(佛經)이 전해지던 길이었다. 당(唐)나라 시절 승려들이 천축(天竺)국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갔던 옛길을 뜻하는 ‘唐竺古道(당축고도)’는 이제 일대일로로 바뀌고 있다. 
  
라싸까지 온 철길은 이미 왼쪽으로 달리고 달려 중소 도시 르카저(日喀则)에 이르렀다. 거기서 조금만 더 왼쪽으로 가면 네팔이요, 아래로 내려가면 인도다. 중국과 네팔은 이미 칭장철도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연결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라싸는 중국-남아시아 경제 회랑(South Asian Economic Corridor)의 출발점이다. 남아시아 국가의 무역을 위한 종합 보세구역이 라싸에 조성되고 있다. 우선은 네팔이 주요 목표다. 르카저-카트만두 철도 건설은 이미 기본 조사가 끝난 상황이다. 이 지역 수력발전도 함께 건설할 계획이다.”(페이강 부국장) 
  
시진핑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는 ‘하늘 아래 최고의 고원 도시’ 라싸를 국제도시로 탈바꿈시킬 기세다.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 시내 외곽의 한 민가를 방문하게 됐다. 집주인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하다(티베트인들이 환영의 뜻으로 선사하는 기다란 흰색 천)’를 목에 걸어준다. 그들의 안내로 들어간 거실. 멀리서 온 손님들을 맞은 건 중앙에 걸린 시진핑 주석의 초상화였다. 
  
‘장족 가정에 시진핑 초상화…’ 중국은 그렇게 티베트인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겸 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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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차이나 인사이트] 티베트-인도의 ‘당축고도’에 철도가 깔리는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