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4일 '특단의 대책'이라며 내놓은 A4용지 16장짜리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맨 뒤 페이지에 실린 공공부문 맞춤형 일자리(5만9000개) 계획안(案)이었다. 산(山)과 전통시장 화재 감시원 1500명, 불 켜진 강의실을 찾아 소등 업무를 하는 '국립대 에너지 절약 도우미' 1000명, 산업재해보험 가입 확대 홍보요원 600명,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부담을 없애주는 '제로(0)페이' 홍보원 960명 등이었다.
주로 하위직 공무원들이 도맡아 하는 많은 업무 가운데 전문성이 필요 없는 일거리를 떼어낸 것들로 대부분 연말까지만 운영하는 시한부 일자리였다. 제목에 달린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거리 나눠주기'란 표현이 더 어울려 보였다.
이번 대책은 '취업자 증가 수를 플러스(+)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일자리를 쥐어짰다'는 인상이 강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통계적 목적은 전혀 없다"고 부인하지만, 그 얘기가 공감을 얻으려면 땜질식 대책이 아닌 좀 더 근본적인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일자리 5만9000개'는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절대적인 수치는 적더라도 통계상 취업자 증가 수를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는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규모이다.
취업자가 1년 전보다 줄어들게 되면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렇기에 정부로선 단 1만명의 취업자도 아쉬운 상황이다. 올 상반기부터 각종 경기(景氣) 지표가 고꾸라지면서 '고용 참사'의 징후는 갈수록 뚜렷해졌다. 하지만 정부는 취업자 증가 수가 30만명대에서 10만명대로 떨어지는 동안에도 '고용의 질(質)'을 내세우며 "연말에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내년 상반기에나 좋아질 것"이라고 말을 바꾸더니, 연말이 가까워져 오자 부총리가 나서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민간에서 줄기차게 제기해 온 경고를 정부가 무시한 것이라면 직무 태만이고, 이런 상황을 정말 예측하지 못했다면 무능력한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성장률 둔화, 저조한 기업투자, 각종 규제 등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투자,
카풀·원격 의료 등 민간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규제 혁신은 여당을 설득하지 못해 담기지 못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25일 국감에서 "그것이 지금 우리 현실이고, 실력"이라고 했다. 스스로 실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한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믿을 수 있을지 답답할 따름이다.
입력 2018.10.27 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