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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보스 2018. 11. 2. 12:08


이런 군대

조선일보 
  • 권선미 기자
  • 입력 2018.11.02 03:02

    사고 책임에 겁먹은 지휘관들, 나약한 병사, 간섭 심한 부모들 
    마음이 힘들다 하면 훈련 열외, "민감 피부라…" 야간위장 거부, 적보다 무서운 부모들의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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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최근 3년간 육군 신병교육대가 수류탄 투척 훈련을 안 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됐다. 2015년 9월 육군 50사단 신병교육대 훈련장에서 난 수류탄 폭발 사고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자, 육군은 사고 3일 만에 모든 신병교육대의 수류탄 훈련을 금지했다. 수류탄 불량 가능성을 조사했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한 육군 중대장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류탄 한 번 안 쥐어보고 제대하는 병사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군 내부에서는 "수류탄 훈련 중단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군에서 사고가 나면 원인과 관계없이 중대장, 대대장으로 이어지는 지휘 계통 전체에 책임을 묻다 보니 "위험한 일은 무조건 피한다"는 기조가 부대 운영 전반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안전사고 예방을 넘어선 보신주의(保身主義) 행태가 우리 군의 전투력을 약화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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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육군의 한 부대는 공용화기(共用火器) 사격 훈련을 했다. 첫 번째 사수(射手)가 유탄 발사기를 쐈지만, 탄이 발사기 안에 걸렸다. 응급조치를 해 탄은 발사됐지만 지휘관은 곧장 3시간으로 예정됐던 공용화기 훈련을 중단했다.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한 육군 대위는 "요즘 훈련을 나가보면 '피부가 민감해 위장(僞裝) 크림을 바르지 않겠다'는 병사도 있는데, 지휘관들이 바르라고 강요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병사들이나 병사 부모들이 여러 곳에 민원을 넣기 때문이다.

    군은 병사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 하지만 보호가 지나쳐 훈련에 방해되는 일도 있다. 병사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전시(戰時)를 대비해 완전 군장(軍裝)으로 해야 하는 훈련을 간소화하는 일도 잦다.

    육군 중대장 이모 대위는 최근 참가한 야외 기동 훈련 내내 병사 2명을 데리고 다녔다. 상담 과정에서 "요즘 마음이 힘들다"고 답한 병사들이다. 이 대위는 "병사들 돌보느라 훈련 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심리적 이유로 훈련하기 어려워하는 병사들은 열외시키라는 상부 지시가 있어 병사 5명은 아예 부대에 뒀다"고 했다.

    육군 간부들 사이에서는 "군인이 아니라 유치원 교사가 된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병사들에게 약을 나눠 주는 일도 중대장, 소대장이 매일 직접 챙겨야 한다. 병사들이 약을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먹는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침 때문이다. 한 육군 소대장은 "자기 전에 약을 먹는 병사도 있어, 퇴근했다가 약을 먹이려고 부대에 다시 들어간다"고 했다.

    최근 육군 부대에서는 한 간부가 개인적인 이유로 비극적 선택을 했다. 훈련과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부대장은 그날 이후 예정된 야간 기동 훈련을 실내 교육으로 대체했다. 또 다른 인명 사고를 예방한다는 취지였다.

    군 내에서는 "인명 사고가 생기면 이유를 막론하고 지휘관에게 사고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운전병이 차량을 몰다 가벼운 사고라도 나면 부대 차량 운행을 모두 금지하기도 한다"고 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 인명 사고가 나면 집중 감찰 대상이 된다며, 순방 기간 야외 훈련을 취소하거나 야간 부대 차량 이용을 제한하기도 한다.

    일선 육군 간부들은 "사고가 나면 이유와 상관없이 모든 책임을 지휘 선상에 있는 상급자에게만 돌리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했다. 한 육군 중대장은 지난해 중징계를 받고 현재 전역을 준비하고 있다. 중대장 부임 한 달 만에 병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감찰에서 '병력 관리 소홀'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한 육군 간부는 "도박 빚같이 개인적 일로 인명 사고가 나도 무조건 '부대장이 힘들게 한 것 아니냐'고 추궁당한다"고 했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부대 운영에 간섭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육군 부대는 병사 부모와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네이버 밴드나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병사들의 훈련 사진을 올린다. 부모들은 중대장에게 "아들 사진 좀 찍어 올려달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한 중대장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부모들 성화에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훈련 사진을 본 부모들이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훈련을 살살 시켜달라"고 민원을 하기도 한다.

    한 육군 대위는 "병사가 아프면 부모가 지휘관에게 전화해 '우리 애가 아픈데 좀 관리해달라' '외부 병원 보내달라'고 한다"며 "상부에 보고하면 '부모와 연계해서 병력을 관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온다"고 했다. 부모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잘 설득하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군대는 전투력보다 안전이 우선"이라고 했다.

    2015년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으로 부모 민원이 이어지자 육군 한 공병 부대가 지뢰 제거 작전에 투입될 장병 부모에게 사전(事前) 동의서를 받고, 동의하지 않은 병사는 작전에서 제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국민에게 현재 군이 충분히 안전하게 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며 "인명 사고가 났을 때 소대장부터 군단장까지 연대 책임을 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간부가 막을 수 없는 사고였다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충분히 해명할 기회를 주고 나서 처벌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02/20181102002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