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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8000명 도시에 농식품 기업·연구소가 1500개… 기초 연구는 공동으로 바헤닝언(네덜란드)=유진우 기자 010 입력 2019.03.01 03:00 기사 인쇄 이메

화이트보스 2019. 3. 8. 10:48


3만8000명 도시에 농식품 기업·연구소가 1500개… 기초 연구는 공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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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농업의 실리콘밸리… 바헤닝언을 가다

세계 최대 식품 클러스트 네덜란드 '푸드밸리' 르포

농업 관련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에는 끝이 없다. 농업과학과 생명공학은 식량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핵심 분야다. 생태계에 주는 피해는 최소화하고 농업 생산력은 높여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서 몰 바헤닝언대 총장은 "비옥한 땅도 계속 농사를 지으면 척박해지기 마련이고, 수확량이 적어지면 소비자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며 "네덜란드에서 혁신적인 토마토 재배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면 유럽인은 토마토를 송로버섯 가격으로 사 먹어야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식량 생산을 늘리려면 농경지 면적을 늘리거나,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 농경지가 줄어드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는 이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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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가 바헤닝언U&R에 새로 개장한 글로벌 푸드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과실류 담당 연구원이 토마토(사진 위)와 딸기(사진 중간) 종자를 살펴보고 있다. / 바헤닝언U&R
푸드밸리 종사자 4명 중 3명이 연구원

네덜란드 농업혁명 산실인 바헤닝언. 전체 인구 3만8000여 명 가운데 푸드밸리에서 일하는 식품산업 관련 종사자가 절반이 넘는 2만명에 달한다. 딸린 가족을 생각하면 이 도시 인구 전원이 푸드밸리 관련 종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만명 가운데 1만5000여 명은 연구·개발(R&D)에 종사하는 과학자나 기술자다. 농식품 기업·연구소가 1500곳이나 된다. 영국의 유력한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 (Quacquarelli Symonds)는 2017년 세계 대학 평가 농업 관련 분야에서 바헤닝언대를 세계 1위로 꼽았다.

지난달 WEEKLY BIZ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한겨울이었지만 푸드밸리에는 연구소와 온실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가득했다. 그저 말뿐인 열기가 아니었다. 농작물 생육을 위해 항시 실내 온도를 생육 발달에 맞춰 높여두기 때문이다. 유니레버가 지난해 새로 지은 '푸드 이노베이션센터'에서는 적정 온도의 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투명 파이프가 각 실험실 입구에서 나무 줄기처럼 갈라졌다.

천장과 벽면을 타고 설치된 급수 라인에는 실험실에서 키우는 작물에 맞는 비료가 자동으로 섞인다. 토양 질을 개선하려면 황산암모늄 비중이 높은 질소 비료를 물에 타고, 식물 성장을 빠르게 하려면 염화칼륨이 들어가는 식이다. 바헤닝언 U&R 식품연구소의 러베 캄프(Kampf) 매니저는 "바헤닝언은 지식 산업과 기업이 만나 농업과 식품 혁신이 진행되는 곳"이라며 "식품 과학자와 연구원 고용뿐 아니라 시설 면에서도 다른 국가에선 하지 못했던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클린룸 수준의 청정 연구 시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천혜의 농지가 펼쳐진 국가에도 교통이나 인력 수급 면에서 더 이상적인 도시가 많을 텐데 세계적인 기업들이 뭉칫돈을 들고 네덜란드 시골 마을인 바헤닝언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뭘까. 해답을 찾기 위해 푸드밸리 한편에 자리 잡은 TI 식품영양연구소를 찾았다. 1층에 들어서자 병원을 방불케 할 만큼 깨끗한 복도가 펼쳐졌다. 흙 한 점 용납하지 않을 만큼 깔끔한 관리에 놀라자 예로엔 오터스 푸드밸리 국제담당 디렉터는 "식물생리학뿐 아니라 광학과 기계공학을 포함한 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실험실은 반도체 회사의 클린룸 수준으로 청정도를 유지한다"며 "주로 종자회사나 식품회사들로부터 용역을 받아 일하는 경우 특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네슬레·유니레버·다농과 같은 글로벌 대형 식품 기업들은 개별적으로 연구·개발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이제 막 초기 단계에 들어선 첨단 기술 연구는 대학 인력을 활용한 별도의 전문 연구기관이나 회사에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서는 경쟁사지만 식품산업 발전을 위한 기본적 연구는 함께하는 것이다. 1886년 바헤닝언대가 문을 연 이후 오래 지켜온 산학 협력 전통이다. 오터스 디렉터는 "예를 들어 생육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마이크로 센서 기술은 모든 종자회사에 필요한 기술인데 이를 개별 기업이 각각 연구한다면 심각한 자원 낭비가 될 것"이라며 "전문 기업에 일임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도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농부들은 직접 가꾼 작물 해외로 수출

시작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네덜란드는 바닷물이 수시로 범람하고, 일조량이 부족한 편이라 비옥한 남유럽 국가에 비해 농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무역으로 이름을 날렸던 18세기가 저물자 1880년대에는 농업 위기가 찾아왔고, 급기야 전 국민이 식량 대란에 빠지는 처지에 이르렀다. 네덜란드 학계와 기업, 정부는 이때부터 농식품 품질 관리, 관련 교육, 공공 농업 기술 지도와 종자 연구에 자금을 대거 투자하기 시작했다. 바헤닝언대가 세워지고, 인근에 관련 기업이 모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된 이후에도 교육과 농업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런 연구와 투자, 100년 넘게 이어 온 협력 체제는 네덜란드를 농식품산업 선진국으로 만든 토대가 됐다.

이제 네덜란드에서는 농업 관련 사업에 종사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캄프 매니저는 "바헤닝언 지역에서 직접 가꾼 농식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농민들은 평균 수입이 대기업 임원을 웃돈다"며 "1920년대부터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장들을 통폐합해서 경작지를 대규모화하고, 살아남은 농장에는 병충해에 강하고 상품성이 좋은 종자를 국가가 공급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농가당 평균 경작 면적이 33㏊에 달한다.

국내 농가 평균이 1970년(0.9㏊)과 별반 다름없는 1.5㏊인 것에 비하면 20배 이상 넓은 셈이다. 미국이나 중국이 거대한 경작지를 기계의 힘을 빌려 운영하는 '규모의 농업'이라면 그보다 작지만 영세하지 않은 규모로 운영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농장 형태를 구축한 것이다.

세계 1위지만 도전자 정신 유지

통계와 리서치가 모두 이곳을 전 세계 최고의 농업 연구단지로 꼽지만, 푸드밸리와 바헤닝언대의 어떤 관계자도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world best)'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저 1600년 이후 400여 년간 네덜란드가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앞으로 닥칠 위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식물 종자 분야의 특허 절반을 보유하고, 단위 면적당 생산량 세계 최고치를 기록했음에도 네덜란드는 여전히 농업 부문에 있어 도전자에 가까웠다. 수백년간 끊임없이 자연재해와 전쟁, 인력 이탈과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며 잠깐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자세가 단단히 박힌 듯싶었다.

푸드밸리의 목표는 네덜란드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지금 당장 농식품을 많이 파는 것보다 세계적인 식량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가령 에버트 야콥슨 교수가 이끄는 '감자역병연구소' 연구실은 전 세계에서 재배 중인 감자 종자를 전부 분석해 감자역병에 대한 저항 유전자를 가진 감자를 개발한다. 이 연구실은 '전 세계적인 구황작물'인 감자의 명성에 맞게 북한에서 온 과학자 2명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연구원 국적이 다양하다. 감자는 생명주기가 7년이나 되기 때문에 확실한 새 종자를 개발하려면 50년 이상이 걸린다. 유전공학으로 세대의 간격을 짧게 하고 수분이나 양분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해 전 세계에 퍼뜨리는 것이 이 연구소의 목표다.

에른스트 반 덴 엔데 바헤닝언대 교수는 "이전에 없던 병충해가 계속 생기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종자 개발을 하지 않으면 인류는 이르면 5년 이내에 식량 부족 상태에 빠진다"며 "이런 장기적이고 전 지구적인 과제를 개별 기업이 하기에는 너무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산학 클러스터에서 공동 프로젝트로 연구를 진행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하페즈 가넴 전 FAO 사무차장은 "2050년 인류의 부양 능력을 조심스럽게 낙관한다"면서도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리는 일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많은 난관에 부닥칠 것"이라고 조언했다.

Knowledge Keyword

:스마트팜(smart farm)

농사 기술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온실 같은 농작물 재배 시설과 축사 등의 온도·습도·햇볕량·영양성분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 생산 효율 등을 향상시키는 첨단 농법을 말한다. 스마트팜이 보편화하면 생산량 증가와 맞춤형 재배는 물론,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부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호라이즌(Horizon) 2020

유럽연합(EU)이 회원국 연구 혁신을 위해 연합 차원에서 기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2014년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2020년까지 7년간 생명공학과 인공지능(AI), 5G 초고속통신, 로봇, 3D프린팅 등 차세대 기술 연구 분야에 총 786억유로(약 100조원)를 투자한다.

:네덜란드 대홍수

1953년 1월 31일부터 2월 1일까지 북해 인근 네덜란드, 벨기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대규모 피해를 준 홍수를 말한다. 바다와 강의 수면이 국토보다 높은 네덜란드는 다른 국가보다 피해가 컸다. 총 사망자 2551명 가운데 네덜란드인이 1836명을 기록했고, 네덜란드 농장 가운데 10%가 바닷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Micro Management)

관리자가 관리 대상의 세세한 사항을 직접 관리하는 경영 기법. 일반적으로는 고압적인 감독이나 지나친 간섭을 포함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농업 분야에서는 수확량과 직결되는 요소를 면밀히 통제하기 어려운 대규모 기계식 농업과 상반된 방식의 정밀한 농업 기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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