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반려 동물도 고령화 시대
![반려 동물도 고령화 시대](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5/10/2019051001950_0.jpg)
#2. '오전 10시 설탕(수컷·17) 경추 디스크→침 치료, 오전 11시 완두(암컷·15) 관절염→수중 치료….'
지난 8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VIP동물의료센터. 한방·재활의학센터 벽면에 적힌 진료 일정표다. 노견·노묘(老猫)들이 통증·재활 치료를 위해 찾는 곳이다. '체중을 11% 정도 줄이면 관절염 증상을 감소시킵니다'라는 글과 함께 고령 동물들의 비만 치료 현황도 적혀 있었다. 신사경 센터장은 "반려동물들이 나이를 먹으면 기본적으로 관절염, 치매 같은 증상을 조금씩 앓게 된다"며 "약물 치료와 함께 물리치료, 비만 치료로 동물뿐 아니라 보호자들도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20세 시대
과거엔 반려동물이 12세만 살아도 '오래 살았다'고 했다. 이제는 20세는 살아야 호상(好喪)이란다. 동물에게 12세는 사람 나이로 64~74세(개·고양이 기준), 20세면 100세쯤 된다. 인간의 100세 시대와 함께 온 '반려동물 '20세 시대'다.
국내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은 약 1000만명으로 추정된다. 노견·노묘 비율은 약 30%로 업계는 보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3% 정도에 불과했다. 대한수의학회는 7세 이상을 노령견, 10세 이상을 고령견, 13세 이상을 초고령견으로 분류한다. 질 좋은 음식과 생활환경, 의료 기술 발전 등이 평균 수명을 대폭 늘렸다. 2000년대 초반 '반려동물 확산 열풍' 때 태어난 동물들이 최근 노견·노묘가 됐다.
![반려 동물도 고령화 시대](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5/10/2019051001950_1.jpg)
'반려동물 20세 시대'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동물들의 '고령성 질환'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반려동물이 아프면 함께 사는 가족의 삶도 크게 바뀐다.
사람이 그렇듯이 고령성 질환의 대표는 '치매'다. 현재 13세 이상의 노견·노묘 중 10% 이상이 치매를 앓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기억력 저하로 가족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식욕은 엄청나게 증가해 사료를 먹고 또 먹는다. 밤낮 주기가 바뀌어 잠자는 시간도 뒤죽박죽이다.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본다. 벽을 보고 앉아 있거나 갑자기 울부짖기도 한다. 조서현 수의사는 "노화로 반려동물의 뇌기능이 떨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암'에 걸리는 노견·노묘도 늘어나고 있다. 개가 사망하는 원인 1위는 암이다. 사람처럼 유전적 요인이 있어 동물 가족 중 한 마리가 걸리면 다 같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정모(54)씨가 키우던 웰시코기 세 마리(엄마와 새끼 둘)도 이런 경우다. 5년 전부터 '웰시코기 형→엄마→남동생' 순으로 소화기 림프종이 발병했다. 그중 10세인 형 웰시코기는 두 차례 항암 치료로 증상이 개선됐고, 15세인 엄마는 암 수술 후 사망했으며, 8세인 동생은 많이 전이돼 손도 못 쓰고 사망했다. 정씨는 "비슷한 시기에 반려견들이 다 암에 걸려 가슴이 아팠고 돈도 많이 들었다"며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가족 모두 매달렸는데 두 마리나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했다. 이 밖에도 판막·부정맥 등 심장 질환, 고혈압, 당뇨 등이 고령 동물에게서 자주 발생한다. 고양이의 사망률 1위 질병은 신부전이다.
병원들의 대형화·전문화
반려동물 고령화로 병원들은 점점 커진다. 위 병원만 해도 300평(약 992㎡) 규모에 18마리가 입원할 수 있는 중환자실, 40마리가 입원할 수 있는 입원실과 두 수술실을 갖추고 있다. 신장병을 치료할 수 있는 혈액 투석기, 복강경 수술, CT 등의 장비도 있다.
서상혁 VIP 동물의료센터 원장은 "동물용 혈액투석기가 개발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용 투석기를 이용해 영·유아 환자를 치료하듯이 혈액 투석을 하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반려동물 신장 이식 수술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대한제분 같은 대기업도 2011년 '이리온 동물병원'을 서울 청담동에 개원한 후 현재 수도권 10여 곳으로 지점을 확장하고 있다.
수의사의 전공도 세분된다. 미국처럼 공식적인 전문의 과정이 있는 건 아직 아니지만 수의사 대부분은 대학원에 진학해 외과·내과·영상의학과 등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또 심장·종양·신장 등 주력 분야를 키운다. 일반적으로 수의사 30명이 넘는 동물병원은 '원장~과장~일반 수의사~인턴' 등의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조서현 수의사는 "동물들의 고령화로 동물 의료 기술도 세분·전문화한다"며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최근 동물병원들은 '1차 지역병원→2차 대형병원→3차 대학부속병원'으로 체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큰 수술이 늘어나면서 의료 분쟁도 잦아지고 있다. 수의사가 수술 위험을 알렸는데도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발생하거나 사망한 경우 보호자들이 항의하거나 소송을 제기한다.
동물 보험 상품도 많아지고 있다. 삼성화재·메리츠화재·롯데하우머치를 비롯해 대부분의 보험사에서 상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동물 보험 가입률이 높은 편은 아니다. 코트라 미국 무역관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반려견의 10%, 반려묘의 5% 이상이 동물 보험에 가입돼 있다(2016년 기준)"고 말했다.
노견·노묘가 투병하다 사망할 경우 보호자가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느끼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기도 한다. 동물 나이로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돼 죽은 것이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최근 이 증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투병 중인 반려동물의 증상이 악화돼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고 진통제에도 반응하지 않을 경우 보호자 동의 아래 수의사가 안락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사람과 달리 동물 안락사는 현행법상 합법이다.
일본에는 반려동물 요양원도
사람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우리보다 빨리 경험한 일본은 '노견·노묘 사회'도 우리보다 앞서 있다. 일본펫푸드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일본 반려견과 반려묘의 평균 수명은 각각 14.36세, 15.04세였다. 개와 고양이의 약 50%가 고령이었다.
일본에서는 나이 든 보호자가 나이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대신 돌봐주는 간병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 재택 간병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동물 간호사나 펫 시터가 집으로 방문해 치매 등을 앓는 반려동물을 대신 돌봐준다. '펫케어'라는 업체는 현재 도쿄·나고야·오사카·후쿠오카 등을 중심으로 100여 점포를 운영 중이다.
반려동물들을 위한 요양원 '노견홈'도 있다. 현재 일본에 약 150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견들을 위한 기저귀, 영양제 시장도 커지고 있다. 야노경제연
시니어 반려동물 시장은 한국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017 반려동물 양육 실태 조사' 보고서에서 "일본은 새로운 반려동물 입양 수가 적지만 국내에선 입양 증가로 반려동물 시장이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